■ 인생 2막 도전하는 ‘N잡러’ 윤석구 씨

63세에 30여년 광고인생활 접고 은퇴

여행산악회 기획해 매주 다녀

‘윤석구’를 브랜드화해 여행 기획하는 게 목표

사진=정혜선


인생 2막 4년 차를 살고 있는 윤석구 씨는 최근 등단 배우가 됐다. 지난 2월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공연한 연극 ‘굿닥터’에서 ‘재채기’와 ‘겁탈’을 맡아 열연을 펼친 것. 그렇다고 그의 인생 2막 꿈이 연극배우는 아니다. 윤 씨는 인생 2막을 잘 살기 위해 다양한 도전을 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시니어 모델을 준비 중이다. 인터뷰 당일 빨간 뿔테에 체크 무늬 스카프를 매고 나타난 윤 씨는 당장 시니어 모델을 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그런 그가 궁극적으로 인생 2막에 하고 싶은 건 여행이다. 윤 씨는 은퇴 후부터 줄곧 산악여행을 기획해 다니고 있다. “여행은 곧 행복”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 산악여행을 ‘윤석구와 함께 하는 여행’으로 브랜딩을 할 생각이다. 이 사업의 목표는 ‘돈’이 아니다. 여행을 기획한 자신이 즐겁고 함께 여행하는 이들이 즐겁다면 그게 성공한 사업이라고 말하는 윤석구 씨를 만났다.

- 반갑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윤석구라고 한다. 40년 가까이 광고쟁이를 하다 은퇴하고 여행을 기획해 다니고 있다.”

- 최근에 연극 배우로 데뷔하지 않았나.

“맞다. 67세에 등단한 배우가 됐다(웃음).”

- 연극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우연히 광화문연가허깅(HUGGING)문화예술의 조정혜 대표를 알게 돼 인연을 이어왔다. 그러다 이 단체의 연극동아리를 통해 출연을 제안받았다. 연극배우는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고민 없이 바로 승낙했다.”

- 연극 출연 제의에 고민 없이 승낙하다니, 원래 끼가 있었나보다.

“인생 2막엔 ‘윤석구’를 브랜드화해 브랜딩하려 한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 연극 출연 제의를 받았고, 이 도전이 나를 브랜딩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해 주저 없이 하게 된 거다.”

- 출연한 연극에 대해 설명해 달라.

“6개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굿닥터’란 연극이다. 이 연극은 미국의 대표적인 극작가인 닐 사미먼이 만든 작품으로 원작은 8개의 작품이 있는데, 시간상 6개로 줄여 공연했다. 첫 연극 출연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비중 있는 배역을 맡게 돼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 연극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있다면.

“대사를 외우는 게 쉽지 않았다. 당시 연극 준비만 했던 게 아니라, 다른 일도 병행하면서 했던 터라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데 한 번은 이 연극의 연출을 맡은 김종구 씨가 배우들에게 표를 판 이상 당신들은 아마추어가 아니라는 말을 하더라. 그 말을 듣고 이 연극을 보기 위해 3만원을 내고 표를 산 관객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 열심히 했다.”

윤석구 씨는 연극 ‘굿닥터’로 배우로 데뷔했다이미지=윤석구


- 배우로 무대에서 연기를 해보니 어땠나.

“‘굿닥터’에 출연한 배우 10명 중 3명은 전문배우였다. 그분 중 한 명이 연극은 마약 같아서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고 하더라. 그 말이 딱 맞다. 실제로 공연을 한 건 이틀이었는데, 금요일에 두 번 정도 실수가 있었다. 토요일엔 첫 번째 타임에 한 번 실수가 있었고 마지막 공연은 거의 완벽했다. 그때 기회가 더 있다면 공연을 완벽하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란 아쉬움이 남더라.”

- 인생 2막 연극배우로 데뷔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자아실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나처럼 은퇴 후 활동하는 이들을 ‘액티브 시니어’라고 하더라. 그런 액티브 시니어들은 은퇴로 인해 직장에선 물러났다고 해서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건 원치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 면에서 무대라는 공간에서 이뤄지는 협업은 곧 제3의 관계를 형성하는 터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현재 준비 중인 공연이 있나.

“올 11월이나 12월 즈음 공연이 있을 것 같다. 현재 2개 작품 중에서 고르는 단계에 있다. 하나는 희곡작가 오영진 씨의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로 일제 강점기 시대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꼬집으며 통렬한 고발정신을 담아낸 작품이다. 다른 하나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다리오 포의 작품으로 ‘안내놔? 못내놔?’가 그것이다. 이탈리아의 허름한 빈민가에서 시작해 특권층의 정치와 경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리얼 코믹연극이다.”

- 연극배우로 데뷔는 했지만, 인생 2막에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건 다른 거라고 알고 있는데 맞나.

“연극배우는 내가 인생 2막에 도전하고 자 하는 것 중 하나다. 이 도전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여행이다. 물론 은퇴 후 여행산악회를 기획해 매주 등산을 다니고 있다. 코로나19라고 해서 여행을 쉬어 본 적은 없다. 지금까진 이 여행을 동문들과 함께 다녔는데, 앞으론 나를 브랜드화 해 ‘윤석구와 함께 하는 여행’으로 기획하고 싶다.”

- 일반 여행도 아니고 등산을 위한 여행을 매주 하고 있다니 대단하다. 그런 기획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은퇴 전 광고 일을 하면서 인맥을 넓히기 위해 대학교에서 하는 최고경영자(CEO)과정을 3개 정도 들었다. 그런데 수료 후엔 특별히 남는 게 없더라. 같은 기수끼리는 종종 모임을 갔지만 동문들과는 교류가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 등산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을 했고, 그게 받아들여져 그때부터 여행산악회를 만들어 함께 다니게 됐다.”

- 그럼 그 여행의 기획을 모두 직접 하는 건가.

“맞다. 30여 년간 광고 기획을 해서 기획을 하는 건 어렵지 않다. 오히려 재미있다(웃음). 우리는 쉽게 갈 수 없는 산을 찾아다닌다. 이번 주에는 전남 완도에 있는 청산도에 간다. 청산도는 영화 서편제에 나와 유명해졌다. 지금 가면 유채꽃이 예쁘게 펴있어 등산하기 너무 좋다.”

- 완도면 당일 코스라 다녀오긴 힘들지 않나.

“우리 여행은 1박 2일 코스다. 완도 청산도의 경우 5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서 1시간 배를 타고 청산도에 들어가 바로 트랙킹을 한다. 내려와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돌아오는 일정이다.”

윤석구(오른쪽 두번째)씨가 ‘굿닥터’에 출연한 배우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윤석구


- 많은 이들이 인생 2막에 꿈을 이루는 데 있어 경제적인 부분이 걸림돌이 된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데, 노후 준비가 충분히 돼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지 않다. 내가 은퇴를 63세에 했다. 그때 당시 회사를 운영했는데, 부동산 광고 수주로 빚을 떠안게 돼 집과 부동산을 처분하고도 10년간이나 빚을 갚았다. 빚을 다 갚은 시점에서 회사의 지분을 직원들에게 다 넘기고 나온 터라 노후 준비를 할 수가 없었다.”

- 그럼 지금 하는 일에서 정기적인 수입이 발생하는 건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 나는 인생 2막엔 돈을 쫒아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수입이 발생하면 좋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인생 1막엔 돈을 벌기 위해 살아봤으면 적어도 두 번째 삶에선 즐거움을 위해서 살아도 되지 않겠나. 지금 나도 이렇게 웃고 있지만, 속으론 아쉬움도 많고 걱정도 있다. 그런데 어쩌겠나. 그게 우리 내 삶이다.”

- 정말 미소가 너무 편안해 보여서 그런지, 걱정이 없어 보인다.

“그런가(웃음).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게 내가 바라는 모습이다. 지하철 경로석에 가보면 거기 앉아 있는 분 중 표정이 밝은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나는 지하철을 타면 일부러 경로석에 앉아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라는 말처럼 액티브하게 살려면 먼저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마인드를 바꾸면 표정이 바뀌고, 표정이 바뀌면 삶도 조금씩 달라진다.”

- 인생 2막에 다양한 도전을 즐긴다고 했는데, 현재 준비하는 게 있나.

“현재 시니어 모델을 준비 중이다. 며칠 후 프로필 촬영을 하러 간다. 광고 일을 할 때부터 미소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한 광고가 있을 거로 생각해 도전해보려 한다.”

- 인생 2막 4년 찬데, 굉장히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인생 2막을 그려나가는 데 있어 어려움이 있다면.

“딱히 어려움은 없다. 어떤 분들은 경제적인 부분을 말하기도 하는데, 살아보니 돈이 있고 없음의 차이는 불편하냐 아니냐의 차이더라. 불편한 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제가 없다. 지금 하는 일도 큰돈을 들여서 하는 사업이 아니다 보니 어려울 게 없다. 오히려 좋아하는 일이라 즐거움이 크다. 생각해보라. 나로 인해 삶이 즐거운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 마지막으로 인생 2막에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얼굴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말해 준다고 하지 않나.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계속 네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을 듣고 싶다. 해피바이러스를 뿜어내는 사람으로 살려 한다.”

 

[상기 이미지 및 원고 출처 : 라이프점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