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 본다는 영화, 특히 천 만 관객이 본 영화라면 괜시리 외면하고 싶어지는 H.

그런 그가 최근에는 가족들의 성화를 받아들여, ‘압도적흥행 1위의 영화를 보러 극장 나들이길에 올랐다. 나이 오십을 넘으면 져주기도 해야겠다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H,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도 전에 볼멘 소리를 내뱉는다.

"어이가 없네? 이런 영화가 어떻게 천 만을?"

 

[이미지 출처 : naver.comkhdong901]


H씨의 어이없음에 공감된다. 아무리 '재미있다, 편히 즐길 수 있다, 가족용 코메디다' 등의 이유를 붙인다 해도 그렇지, 인구 오천백만 여명 중에서 천만 명 이상이 본다?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헌데 과연 그런 기록에 걸맞는 영화들일까? 회의적이다. ‘이게 뭐야? 내가 뭘 본 거지?‘ 같은 관람 후유증을 동반하는 영화들도 허다하다.

관객의 눈높이는 진화하는데, 진부한 스토리에 뻔한 클리셰들을 반복하는 영화들도 많다.

특히, 오디오상의 고질적 열악함을 드러내온 한국 영화들을 보자. 배우들의 발성이 문제인지 동시녹음 시스템의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배우들 대사가 웅웅거려서 당최 뭐라고 하는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사투리의 욕설인 경우엔 더욱 그렇다. 착한 중년층 관객들은 '내가 진짜 나이를 먹나? 잘 들리지도 않네...' 하며 오히려 자신의 노화를 탓하기 쉽다. 게다가 모처럼 개봉한 다양성 영화 좀 볼라치면 어느새 종영했거나 상영관이 너무 멀리 있는 경우도 잦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 휫수가 무려 4.5회에 이른다.

결국 우리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영화를 자주 보는 영화 소비자인데, 티켓값을 치루는 만큼의 대우는 받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당연하다. 소수의 거대 배급사들이 영화 시장을 독점하여 상영관 수와 상영 방식을 좌우한다. 관객은 다채로운 영화들을 접할 기회를 원천봉쇄당한다. 극장 상영표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몇몇 영화들이 황금시간대 상영 스케쥴을 장악해버린다. 세상엔 참 좋은 영화들이 많을텐데 수입영화들이라 하면 거의다 헐리웃산 영화들이다. 다양한 문화적 표현 통로로서의 영화를 만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이미지 출처 : naver.comkhdong901]

 

그럼에도 우리는 영화 보러 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인생 1막에서 미처 누리지 못했던 문화예술의 세계가 실은 우리네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 지 새롭게 배워가는 50+세대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욕망한다, 제한된 구조 속에서 주어진 영화들만 받아들이는 소극적 소비자 노릇은 그만두고 싶다고! 내가 만난 좋은 영화들을, 능동적 소비자 이웃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이웃들 중 나를 '영화 좀 볼 줄 아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이는 곧바로 이런 요청을 해온다. '좋은 영화 좀 추천해 주세요.' 혹은 '내가 이러저러한 상황인데, 이런 때엔 어떤 영화를 보면 좋을까요?' 그래서 10여 년 전부터 슬금슬금 나의 영화 리스트들을 건네주곤 했다. 동년배 이웃에 비해 영화에 접근하기 쉬웠던 덕분이다. 나이 서른에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단기 영화제작학교 과정을 밟았었다. 등록비가 부족해서 결혼 반지를 전당포에 맡기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그덕분에 "1502초"라는 단편영화도 연출했고, 아주 잠시지만 "창"이란 이름의 독립영화집단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감독을 하려면 먼저 온 세상 좋은 영화들을 섭렵해야 겠다는 생각에서 온종일 영화만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소소하게 영화 이야기를 칼럼 형태로 쓰기도 했고, 청소년들 대상으로 영화감상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계속 '좋은 영화'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대체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좋은 영화'를 따로 묶어낼 수 있는 것일까?

 

8년 전, 지방의 어느 대안학교에서 13-18세 사이 어디쯤의 아이들 삼십 여명을 대상으로 '토요 영화 교실'을 진행했었다.

그 중 "파워 오브 원"(1992. G 아빌드센 감독. 호주)”을 만나던 날이 떠오른다.

 

[출처 : DAUM 영화]

 

영화를 보기 직전, 나는 학생들에게 세 가지 감상 미션을 주었다.

첫째, 영화를 보면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경험하라, 영화가 여러분한테 말을 걸어올 수 있다.

둘째, 여러분의 가슴이 뛰는 장면이 있는지 보라.

마지막으로, 진짜로 이해가 안 되는데 뭔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장면이 있다면 기억하라.‘

 

물론 처음엔 다들 부담스러워 했다. 영화를 그냥 보면 되지 뭘 그렇게 어렵게 봐야 하냐고. 하지만 영화를 만난 직후이 피드백 시간에 학생들은 놀라우리만치 뜨거운 소감들을 토해냈다. '예상보다 재미있었다' 에서부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를 거쳐, '혼자인 나는 작고 약할 수 있지만, 깨어난 나는 크고 강할 거고, 그 힘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까지. 20분으로 예상했던 소감 나눔은 아이들의 계속된 질문과 고백으로 한 시간여 진행되었다. 그런 비슷한 시간은 후에도 여러 번 일어났다. 의식의 변화 차원에서 보면, 수십 번의 강의 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도구인 듯싶다.

 

아무튼,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이러하다.

어떤 영화이든 그 영화가 갖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이에게 질문을 던져주고, 스스로 영화 속 장치들을 해석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심장에 진동을 주는 영화. 그래서 우리의 삶을 더 넓고 깊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영화를 '좋은 영화'라 부른다.

전적으로 내 생각에 기준한 '좋은 영화'들을 아홉 가지 제목으로 분류해서, 나의 50+이웃들과 나누고자 한다.

1. 중년, 그 낯익고 낯선 시간을 걷는 이들을 위한 잔잔한 이야기들

2. 늙어감과 죽음에 관한 다채로운 시선들

3. 인간 의식의 깨어남과 성장에 관한 서사시들

4. 이토록 매혹적인 혹은 체제전복적인 여성의 삶이라니?

5. 잔혹한 복수와 슬픔에 젖어들다

6. 이런 사랑, 어떤가요?

7. 평등과 자유, 인권을 외치는 사회성 짙은 영화들

8. 색깔과 소리에 민감한 감성매니아들에게 권하다

9. 바람의 인생 영화

 

위의 각 제목 아래로 세 편에서 많게는 열 편의 영화들이 등장하고 그 영화들 중 몇 편은 보다 상세하게 다뤄질 것이다.

! 벌써 설렌다. 능동적 영화 소비자로 살아가는 나의 이웃들과 영화 이야기로 만날 생각에 엔도르핀이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