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35도를 넘나들던 8월의 주말, 평창동의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노은님 전(2019. 7. 19~ 2919. 8, 18)엘 다녀왔다. 전시회 제목은 “힘과 시(Kraft und Poesie).”

노은님은 내게는 낯선 작가였다. 이름을 한두 번 들은 적은 있었지만 작품을 본 것은 처음이다. 작가가 주로 독일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간호보조원에서 세계적인 화가로

1970년, 노은님((1946~ )은 스물넷의 나이에 간호보조원으로 독일로 갔다. 그녀는 머나먼 타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아파서 결근한 노은님을 병문안하러 온 간호장이 노은님의 그림을 보고는 병원 사무실에서 전시회를 열어주었다. 그 소식이 실린 기사를 보고 찾아온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 한스 티만 교수의 추천으로 노은님은 4년 장학금을 받고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작가의 나이 서른 즈음이었다.

그 후 그녀는 자신의 모교인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에 교수로 임용되어 학생들을 가르쳤고 화가로서 명성도 얻었다. 노은님의 작품 “해질 무렵의 동물(1986)”은 프랑스 중학교 문학 교과서에 카프카의 소설 《변신》과 함께 수록되었다. 노은님은 칠순이 넘은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독일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몇 차례 전시회를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가나아트센터, 리움 등 국내 유수의 미술관에서 노은님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물고기 잡기, 1988, 종이에 혼합재료, 49.5×68.5cm

 

생명을 노래하는 화가 노은님

이번 전시에서는 노은님의 2019년 신작들과 1980~90년대의 회화, 테라코타 등 30여 점을 선보였다. 화랑은 노은님 작가를 ‘단순한 선과 원초적인 색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생명의 화가’라고 소개한다. 첫번째 전시장에서 만난 노은님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림을 그린 재료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었다. 닥종이에 먹물로 그린 작품도 있고 동서양의 재료를 섞어 그린 그림도 있었다. 그림의 재료뿐 아니라 평범한 소재를 단순한 선과 면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아이들 동화책에 실린 재미나고 유쾌한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생명의 시초, 1984, 종이에 혼합재료, 258×203cm

 

큰 붓으로 화살표와 선들을 그려놓은 “생명의 시초(1984)”는 마치 다른 작가의 그림을 보는 듯 익숙했다. 어느 시기에 비슷한 그림을 그린 작가들이 있었는데 노은님도 그런 경향의 그림을 그렸구나 생각했다. 나는 “나뭇잎배(1987)”라는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작은 곤충이 나뭇잎을 타고 있는 모습이다. 배에 탄 곤충들의 표정이 어찌나 신난 개구쟁이처럼 보이는지 ‘뭐가 그리 재미있느냐?’고 ‘어디로 가느냐?’고 묻고 싶었다.

 

나뭇잎 배, 1987, 종이에 혼합재료, 206×505cm

 

단순함과 소박함에 깃든 깊은 성찰

노은님 작가의 작품을 보면 볼수록 ‘단순한 선과 원초적인 색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생명의 화가’라는 화랑의 설명에 수긍이 갔다. 사람, 나무, 동물 등의 소재는 작가의 영혼을 거치면서 그 형태가 단순해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2층 전시장에 있는 “생각(2019)”이라는 작품은 토끼 같기도 하고 나무 같기도 한 검은 선이 화면을 차지하고 있다. 한때 오리와 토끼를 하나로 그려놓고 어떤 것이 보이는지 묻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생각”은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토끼가 보이고 또 한편으론 나무도 보인다. 작가가 일필휘지로 그림을 그려놓고 “이거 뭐게?”라고 묻는 것 같다. 그 발상이 천진하고 소박해서 유쾌하다.

 

꿈나라, 2019, 캔버스에 아크릴, 91×73cm(왼쪽) 생각, 2019, 캔버스에 아크릴, 91×73cm

 

꽃이 피어난 어느 봄날, 꽃을 배경으로 애벌레가 새싹을 갈아먹고 있는 모습을 그린 “어느 봄날”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 막 돋아난 새싹을 갉아먹는 애벌레를 표현했지만 밝고 산뜻하다. “뛰는 동물(1984)”, “큰 걸음(2019), 바다에 떠 있는 물고기라기보다는 UFO 같은 물체를 그린 ”큰 바다(1984)“ 같은 작품들은 작가의 자유분방함을 잘 드러내준다.

 

어느 봄날, 2019, 캔버스에 혼합재료, 161×225cm

 

 큰 바다, 1984, 종이에 혼합재료, 216×275cm

 

독일 표현주의와 동양의 만남

나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노은님의 작품에 빠져드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다가 독일의 표현주의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근대 이후의 서양 미술사는 그리스 로마신화나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그린 고전주의를 거쳐, 낭만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 입체파 등의 사조를 거쳤다. 그 사조들의 중요한 특징은 합리적 이성으로 외계의 사물을 표현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대두된 실존철학 등의 영향으로 예술가들은 비로소 인간 자신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독일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표현주의는 기존의 회화가 사실주의적 묘사에 집중했던 데 반해, 단순화된 형태와 강렬한 색으로 작가의 내면을 집중해서 표현했다. 노은님의 동양인 특유의 여백미와 자연친화적이고 단순한 화면 구성이 표현주의라는 사조와 맞물려 서양인들의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한줄기 샘물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제목 미상, 강렬한 색채가 그녀의 불같은 내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노은님에게도 창작의 고통은 적지 않았다. 전시장 중간 중간에 적힌 작가의 작품 일기를 읽으며 짠한 마음이 들었다.

“.… 화실에 들어올 때마다 사람들이 살다 버리고 떠난 섬에 온 것처럼 모든 것이 텅 비어 외롭다. 내가 그림을 그리려 할 때마다 빈 종이가 나를 두렵게 한다. 떠오름이 없어 벌 받는 사람처럼 고생한다. … 때로는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때로는 계속 임신한 여자처럼 느끼며, 때로는 배가 고파 먹이를 찾아 헤매는 날짐승처럼 느낀다. 나, 종이, 붓 우리 모두가 지쳐 있다. 내가 어디서 무슨 짓을 했는지 나도 모른다.”

그처럼 산고의 고통을 겪어낸 노은님의 작품은 우리에게 자유와 평화를 선물한다.

나는 노은님의 작품을 보면서 오랜 시간 전시장에 머물렀다. 그의 단순하고 자유로운 선이나 색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자유분방함을 넘어선 해학, 그것이 노은님의 매력이 아닐까.

 

제목 미상, 작가의 작품인 큰 걸음, 나무가 된 사슴 등을 한 캔버스에 그려놓았다.

 

이미륵과 노은님이 부르는 고향의 노래

노은님 전엘 가기 전 작가에 대해 알아보다가 ‘엄마’와 ‘타국에서의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보며 갑자기 이미륵이 떠올랐다. 전시회에 다녀온 후, 기억도 가물가물한 이미륵의 자전적인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다시 읽어보았다. 이미륵은 경성의전에 다니다 3.1운동에 참가한 후, 신변에 위협을 느껴 독일로 떠났다. 하지만 그는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에 머무는 주인공에게 고향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누나의 편지가 도착하며 끝이 난다. 이미륵에게 고향은 어머니의 품 속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부재하는 고향은 고향으로서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십대 때 결혼을 한 이미륵은 자식을 남겨두고 고향을 떠났다. 그가 독일에서 지인의 아이를 업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나는 그의 어머니가 자식을 그리워하듯 그 또한 고국에 남아 있는 자신의 아이들을 그리워했으리라 짐작했다. 이미륵과 노은님이 그리워했던 고향은 대체 무엇일까?

 

뛰는 동물, 1984, 종이에 혼합재료, 230×526cm

 

작가 이미륵이 일제의 경찰을 피해 독일로 갔듯이 1960, 70년대에 많은 한국의 청춘들이 광부와 간호사로서 독일로 향했다. 경제적으로 번영한 독일에서 돈을 벌어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미륵과 노은님들과 광부들의 독일 행은 독립을 잃고, 경제적으로 어렵던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꿈을 향해 모험을 감행한 그들의 용기와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나는 지금 어떤 꿈을 꾸며 살고 있을까? 과연 꿈이 있기나 한 걸까? 가만히 나를 들여다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