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아직 먼 나라 얘기로 들리던 1986년 무렵, 나는 공부와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영동과 노량진 학원가를 오가며 재수생으로 생활했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미팅 한 번 안 해봐서 그랬나, 아니면 소년남자들한테 관심이 1도 없던 세월을 상쇄시키려고 그랬나 모르겠지만, 재수생 신분으로 감히(?) ‘연애’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헤엄을 잘 칠 줄 몰라 꽤나 허우적거렸다. 스무 살이 될때까지늘 선머슴 같은 아이, 폼 잡느라 솔직한 자기표현 따윈 묻어버리는 아이로 살았었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찾아온 사랑이라니? 왜 심장은 쓸데없이 나대는지, 책을 펼치면 왜 그 아이가 종이 위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렇다고 ‘가오빠지게’ 주변에 고민을 털어놓긴 싫었다. 그럴 즈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도우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아버지가 퇴근길에 들고오던 일간 신문 한쪽 구석에 실리는 카툰이었다. 오동통한 뱃살, 동글동글 짧막한 팔다리, 2등신의 임팩트 넘치는 몸매의 귀여운 남녀 커플이 날마다 “love is ...” 라고 말하는 그림이었다. 50+세대의 당신이라면, 아마도 기억할 것이다, 킴 카잘리의 카툰을. 카툰 속 커플은 말한다. 사랑은 인생의 꿀이며, 그녀의 짐을 들어주는 것이며, 늘 그의 가까이에 있는 것이며, 상대가 너무 좋아서 입맛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그녀가 점심을 먹었는지 알아보는 것이며, 온종일 그의 미소가 당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며... 사랑에 관한 수많은 그 표현들을 대할 때면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 말들이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과 내가 겪고 있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았으니까.

하지만 나이를 먹고 또 먹고 먹어서 쉰세 살의 어른사람이 되어버린 지금, 사랑이란 것을 바라보는 내 시각은 많이 달라졌다. 굳이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가슴 쿵쾅뛰고 좋아라~하는 이성애만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혹은 사람과 사람 아닌 어떤 것 사이에 오가는 아름다운 감정들은 다 ‘사랑’이지 않을까? 부모 자식 간, 스승과 제자 간, 친구 사이에, 혹은 일이나 예술활동에 대해, 특정 이념에 대해, 아니면 자기 자신이나 인류 전체를 향해, 사람은 빠져들고 설레고 아파하고 기다리고 원망한다. 때론 집착이 심해져서 문제를 일으키고 때론 차마 버리지 못해 고통스러워 한다. 그 모든 게 사랑이리라. 사람은 본질적으로, 그거 하려고 세상에 왔으니까.

아무튼, 그 내용이나 분류는 어찌되었든, 인류 대부분의 인생 화두인 ‘사랑’을 테마로 나의 영화 목록을 펼쳐보려 한다. 영화 편 수도 많을뿐더러 틈틈이 나의 인생 띵작들(★표 다섯 개 달림)도 끼워넣으려 하니, 아마도 10회차까진 이야기가 계속될 것이다.

 

1.<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제작년도 2017 제작국가 미국 등급 청불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출연 샐리 호킨스, 마이클 섀넌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14024

 

포스터의 강렬함에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푸르른 물빛 한복판에서 두 생명체가 간절하게 서로를 안고 놓지 않는다. ‘설사 심연 어디쯤까지 가라앉는다 해도, 이 세상이 아닌 그 어느 곳으로 낙오된다 해도, 우리는 이렇게 하나!’라고, 온 영혼으로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붉디 붉은 원피스를 입은 엘라이자와 맞닿아 있는 자는 남자일반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괴생명체∙괴물∙그것”으로 불린다. 엘라이자는 반문한다. “그를 사랑하는 나도 괴물인가요?”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인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시종일관 독특한 색채감으로 반짝인다. 그 색감은 일상 속 어딘가에서 불쑥 경계를 뚫고 솟아오를 것 같은 비일상의 세계를 표현해준다. 엘라이자의 일상은 사회 주류의 시선에서는 비일상적인 것이다. 가난하게 혼자 사는 언어장애 여성. 그 주변엔 청소부 흑인여성 젤다와 가난한 화가이자 성소수자인 자일스가 있다. 거기에 더 비일상적 존재가 결합된다. 엘라이자가 일하는 실험실에 온몸이 비늘로 덮인 괴생명체가 수조에 갇힌 채 들어온 것이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엘라이자는 그 존재를 ‘괴상하게’가 아니라 ‘신비롭게’ 바라본다. 물 속에 갇혀사는 그와 물 밖에서 바라봐야만 하는 그녀가 음악을 함께 들으며 교감을 나눈다. 복잡한 말 따윈 필요없었다. 그들은 말을 뛰어넘는 세계에서 뜨겁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시간은, 늘 그렇듯이, 강력한 악에 의해 위협받는다. 괴생명체를 해부해서 우주개발사업에 이용하려는 세력이 나타난다. 그에 맞서, 엘라이자는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 하고, 엘라이자의 이웃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돕는데...

관람 포인트 하나, 주연을 맡은 배우 샐리 호킨스에 입덕할 수 있다. 이토록 매력적인 캐릭터라니! 배우는 언어가 아닌 온 몸과 영혼으로 연기할 수 있음을 증명해준다. 포인트 둘, 스크린을 적시는 색채감! 포인트 셋,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긍정적 강점. 포인트 넷, 영화의 원제는 ‘물의 모양’인데 한국어 제목은 ‘사랑의 모양’이다. 둘 다, 영화 메시지에 딱 들어맞는다. 정확한 이유는...영화를 직접 만나보시길.

 

2.<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 제작년도 2005 제작국가 미국 외 등급 15세이상 감독 이안 출연히스 레저,제이크 질렌할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1247

 

 낭만이라든가 서정적 분위기라든가, 뭐 그런 것들과는 아득히 멀어보이는, 블루진 차림의 카우보이 촌놈 둘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그리워한다? 만나면 애틋하게 매만진다?... 이건 무슨 거북스런 상황이지?

살다보면...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결코 꿈꿔본 적도 없는 방식으로, 나를 사로잡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당황스럽고 거부하고 싶지만, 날 끌어당기는 힘이 너무 강해서 도무지 떨쳐낼 수 없는 상대... 그야말로 ‘임자’를 만난 것이다. 과묵하고 터프한 촌놈 에니스는 눈부신 만년설의 브로크백 마운틴 양떼 방목장에 일하러 왔다. 그저 여름 한 철 죽어라 일해서 돈 좀 벌면 그만이다. 그런데 가보니, 같은 일자리를 찾아온 잭이 있다. 에니스는 잭을 경계하고 덤덤하게 대하지만 잭은 부드럽고 기민하게 잭의 심장을 노크한다. 에니스가 ‘임자’를 만난 것이다. 깊은 산 속에서 그들의 우정은 서서히 익어가고 어느 순간, 친구 이상으로 발전한다. 그 낯선 감정의 정체도 모른 채, 그들은 여름의 끝과 함께 헤어진다. 그리고 4년 만에 두 사람은 재회하는데, 그제서야 서로를 향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확인한다. 하지만 두 사람 각자, 돌보고 책임져야 하는 가정과 일이 있다. 그 현실을 깨버릴 수 없다. 깨버리고 둘만의 삶을 살아간다 한들 그게 안전하겠는가? 에니스는 기억한다, 유년 시절에 동네 아저씨들이 동성애자를 어떻게 응징했는지를. 아무튼 그들이 선택한 최선은 1년에 한 두 번씩 브로크백에서 만나 잠시 함께 지내는 것.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기를 20년간 계속하는데... ‘동성애’라는 틀을 걷어내고 만난다면, 이 영화는 미치도록 애절하면서도 쓸쓸하고, 아프면서도 공감이 되는 사랑 이야기일 뿐이다.

관람 포인트 하나, 스토리는 둘째치고 화면을 장악한 자연풍광이 눈부시다. 둘, 에니스로 나오는 배우 히스 레저의 연기에 매료될 것이다. 선 굵은데 어쩜 그리도 섬세하게 표현하는지, 서른 살의 나이로 어이 하늘의 별이 돼버렸을까...

 

3.< 디 아워스The Hours > ★★★★★ 제작년도 2002 감독 스티븐 달드리 출연 메릴 스트립,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218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비록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스티븐 달드리가 이미 이뤄냈다. 별 다섯 개로 소개하는 첫 작품!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과 “세월”을 세련되게 연결시켜 재창조한 소설 “세월The Hours. written by 마이클 커닝햄)”이 이 영화의 원작이다.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 사는 세 여성이 보내는 하루의 이야기다. 전혀 무관해 보이는 그들의 삶은 실은 “댈러웨이 부인”을 매개로 서로 깊이 연결돼 있다. 그들은 여성을 사랑하지 않는 시대에 여성인 자기 자신을 사랑한 죄(?)로 가족과 이웃은 이해하지 못하는 근원적 외로움과 슬픔을 지닌다. 그래서 다른 시공간임에도 여전히, 참 닮은 세월을 살고 있다.

1923년, 영국 리치몬드 교외의 어느 하루가 흐른다. 버지니아 울프는 초췌하고 창백한 얼굴로 걷는다. 그의 머릿속은 집필중인 소설 <댈러웨이 부인> 생각으로 가득하다. 남들 보기엔 호강에 겨운 여자다. 오로지 아내를 위해 출판사를 차리고 줄기차게 아내의 집필 활동을 돕는 남편이 있질 않나? 헌데 그런 남편을 곁에 두고도 그녀의 얼굴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이전에도 몇 차례 자살 시도를 했던 버지니아, 오늘은 정말로 감행한다, 돌멩이들을 주머니 가득 채우고서.

1951년, 미국 LA의 어느 하루가 흐른다.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 빠져있는 로라(줄리안 무어)가 둘째를 임신한 채 세살난 아들(리차드)와 함께 남편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누가 봐도 단란하고 평온한 가정의 안주인 같은데 불현 듯! 무작정! 집을 나선다. 호텔방에 누워 자살을 꿈꿔보지만, 태중의 생명을 인식하며 둘째를 낳은 후엔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나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2001년 미국 뉴욕의 어느 하루가 흐르면,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출판인 클래리사(메릴 스크립)가 옛애인인 리차드(에드 해리스)의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파티를 준비하러 꽃을 산다. 유년기에 자신을 버린 엄마 로라(줄리안 무어)에 대한 상처를 가슴에 묻고 지금은 에이즈로 죽어가는 리차드. 그는 클래리사가 보는 눈 앞에서 5층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마는데...

관람 포인트 하나,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한 니콜 키드먼의 얼굴과 열연. 버지니아 울프의 외모까지 그대로 재현한 것 같다. 또한 아마도 그의 ‘인생연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캐릭터에 녹아들었다. 엄지 척! 포인트 둘, 서로 다른 시∙공간의 이야기들이 참으로 매끄럽고 아름답게 편집되고 연결되었다. 매혹당할 것이다. 포인트 셋, 세 여성과 한 남성이 그려내는 사랑의 다양한 빛깔과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