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존엄한 노후를 위해 치매공부는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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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대 박여사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놓고 현장에서 일은 하지 않았다.

자격증을 갖고 밥벌이를 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저 가족을 돌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취득했다.

그러다보니 치매환자 인지프로그램 강사 일자리같은 것은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우연히 지인을 통해서 데이케어센터에 오는 어르신 말벗 자원봉사활동을 제안 받았다.

달랑 240시간 공부하고 취득한 요양보호사 자격증만 갖고 있고, 노인 가족과 함께 생활한 경험조차 없어서 제대로 말벗 역할을 할지 걱정이 되었다. 어렵지 않고 마음이 중요하다는 지인의 말만 믿고 명칭조차 생소한 데이케어센터로 갔다.

 

박여사는 센터장의 조언대로 첫날에는 특별한 활동 없이 관찰자로 하루 일정을 보냈다.

둘째 날부터는 어르신이 센터 교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고 잠시 숨을 돌리기를 기다렸다가 ‘잘 주무시고 오셨어요? 인사를 했다.

멀뚱멀뚱하는 어르신 모습이나 박여사 자신도 못지않은 듯 어색한 웃음을 띄었다.

인사를 하고 나서 어르신 요구 사항이 뭔지 궁금해 하며 몇 분 곁을 차례로 왔다 갔다 했다.

 

 

 

 

오전 11시가 되자 보드게임을 같이 하라고 담당 요양보호사가 말했다.

박여사는 네 명을 한 팀으로 정하고, 규칙에 따라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만큼 말을 옮겼다. 규칙에 어긋나지 않도록 주의를 상기시키기도 해야 했다. 서로 이기고 싶은 아이들처럼 금방이라도 치고 박을 듯 상기된 어르신 표정에 자신도 모르게 진행에 집중했다.

 

다음 날이었다. 사흘이 지나며 비로소 어르신들은 어색한 기색을 지우고 박여사를 대했다.

오전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박여사는 말벗 역할에 온 정성을 쏟았다. 그림동화책에 나오는 단어나 그림 관련해 어르신들한테 짧은 질문도 하고, 본인의 경험을 말하기도 했다.

김 모 어르신이 이야기 중에 일본말로 ‘스미 마셍’라고 말했다. 박 여사도 기회다 싶어서 얼른 생각해 낸 ‘아리가또 고자이 마스’라고 대답했다. 김 모 어르신은 치아가 다 드러나도록 크게 웃었다. 어떻게 일본말을 아냐고 묻더니, 자신의 할아버지가 서당 훈장이어서 자신이 어려서부터 어깨 너머로 천자문도 배우고, 일본말도 배웠다는 얘기까지 줄줄이 사탕처럼 끝없이 이어갔다.

 

 

 

 

한편 뒷자리에 앉은 이 모 어르신은 자기는 서당에 다녀오거나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 집에 들어오면 아버지가 대문 밖으로 나오며 저 멀리서 오는 자기를 알아보고 ‘아가’라고 불렀다고 했다. 아무도 묻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또 자기는 10남매 가운데 막내라서 늘 귀염만 받고 자랐다고 했다. 심지어 동네 사람들까지 자기를 ‘아가’라고 불렀을 정도라고 자랑을 한껏 늘어놓았다.

듣고 있는 박 여사도 흥미로운 듯 ‘그랬어요!, 그 옛날에 10남매가 다 살아 시집, 장가 갔으면 다복한 집안이었네요... .’ 연신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사흘 째 만나는 정 모 어르신은 교실에 들어오기 바쁘게 책상 딸린 의자로 가지 않고 한쪽 귀퉁이에 놓인 소파로 가 앉자마자 잠을 잤다. 자세히 보니 자다가 깨기도 하는 것 같았지만 어떻게 다가갈지 난감했다.

궁리 끝에 박 여사는 ‘어르신 피곤하세요?’ 말을 건네며 옆에 앉았다. ‘아니야’ 하며 실눈을 뜨며 고개를 돌렸다.

박 여사는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어르신 우리 쎄쎄쎄해요!’하며 두 손을 잡고 아래위로 살짝 살짝 흔들었다.

다행히 어르신은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박 여사는 조금씩 어르신들과 친숙해져 갔다.

 

나흘째 되던 날, 박 여사는 가자마자 담당 어르신 모두 한 번에 찾아 아침 인사를 했다.

책상 네 개 한 바퀴를 돌아 올 즈음에 일명 ‘아가’ 어르신이 뭐라 뭐라 하는 것 같았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긍정적인 내용은 아닌 듯 불길한 느낌이 스쳤다. 박 여사는 다시 돌아가 ‘제가 뭐 서운하게 해드린 거 있으세요? ’아가’ 어르신한테 물었다. ‘아니야!’ 어르신은 쌩하게 찬바람이 도는 표정을 지었다. 두 번 세 번 물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어쩔 수 없이 박 여사는 일정 내내 ‘아가’ 어르신 눈치를 살피며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박 여사는 집에 돌아와서도 ‘아가’ 어르신의 찬바람이 잊어지지 않아서 힘들었다.

‘아가’어르신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흘간 있었던 일들, 관찰한 정보를 종합해보았다. 몇 가지 정보로 ‘아가’ 어르신을 치매 초기 상태로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치매관련 정보를 검색하고, 관련 서적,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관 등도 알아봤다.

그렇게 시작된 박 여사의 치매 공부 과정에서 가장 도움이 홈페이지는 치매안심센터 ( https://ansim.nid.or.kr ) 이었다.

박 여사도 당장 치매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서 강의 안내를 찾아봤지만 코로나19로 대면 강의를 할 수 없는 형편이라 여의치 않았다.

 

 

 

 

그런데 비대면 시대에 맞는, 현재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모집 중인 온라인 강의를 찾았다.

주제는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인생 3막을 위한 나의 케어플랜 준비하기’다.

이 밖에도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홈페이지에는 온라인으로 전환된 치매예방 강사교육 등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치매예방 영상 등 정보가 다양하다. 치매협회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MOU를 체결하고 진행한 시민후견인 양성교육 프로그램도 만나 볼 수 있다.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인생 3막을 위한 나의 케어플랜 준비하기' 교육과정

 

 

 

현재 50+세대는 다가오는 초고령세대에 대비하여 자기돌봄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치매에 대한 인식개선이 없이는 ‘존엄한 노후’에 대한 개념조차 없을 것이고, ‘존엄한 노후’를 희망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치매는’ 50+세대의 배움 과제 중 필수 과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모집 중인 온라인 강의 담당 ‘원케어(커뮤니티)’ 소속 강사에 의하면 초고령 시대에는 부부 중 누군가는 치매환자가 되고, 누군가는 환자 돌보미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인데 앞으로 ‘치매 소통전문가’라는 직업도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증상이 심해질수록 치매환자는 일반인이 말하는 이상행동, 즉 비언어로 의사 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박 여사는 데이케어센터를 향해 집을 나서며 자기 점검을 한다.

노력 끝에 ‘아가’ 어르신이 삐친 이유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 어르신한테는 웃으며 인사했고, 자기한테는 그냥 표정 없이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박 여사는 앞 뒤 어르신을 차별해서 인사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가’ 어르신이 그렇게 느꼈다면 인정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치매환자라도 단기기억력과 인지력은 낮아졌을 망정 좋고 싫은 감정과 자존심은 일반인과 같다는 사실을 공부와 어르신들과 소통하면서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