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의 시대: 지역사회에서 본능에 응답하라

나는 알게 되었다. 요리가 나의 본능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없어지지 않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아야 한다. 그걸 찾는 유일한 방법은 본능에 기대는 것이다. 50대, 이제부터 본능을 향해 움직여야 한다. 단, 이 본능을 품어줄 수 있는 곳은 대기업이 아니다. 팍팍한 대도시의 빌딩 숲이 아니다. 공동체가 살아 있는 동네와 마을, 지역사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와 마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역사회를 공동체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도 본능을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임경수 
전주시도시재생현장지원 센터장

 

 

50세에 요리를 시작하다

요리를 시작했다. 그저 손님 접대로 삼겹살을 구을 때 이것저것 참견하면서 집사람을 도와주는 척 했을 뿐이다. 처음 시도한 일은 고기를 그냥 굽는 것이 아니라 미리 양념에 재어 놓았다가 먹는 것이었다. 가족들이 좋아했다. 시금치나물과 콩나물 무침을 만들고 미역국과 소고기국을 끊이고 파스타에 도전했다. 먹방 프로그램을 주로 보고 유튜브의 요리방송을 구독했다. 내친 김에 집사람에게 요구했다. ‘부엌 관리권을 나에게 넘겨라 !’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 3~4일 식단을 고민하면서 장을 본다. 아침준비가 가장 까다롭다. 아이들이 움직이는 시간에 맞추어 빠르게 부담스럽지 않는 메뉴로 상을 차려야 한다. 모두 출근과 등교를 하면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정리한 후 내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저녁식사 준비에서 해방된 집사람은 운동을 시작하여 점점 날씬해지고 스스로 만든 음식이라 버리기 아까워 내 허리 사이즈는 늘었다. 하지만 요리가 즐겁다.

 

일상이 환상이 된 시대

가짜 결혼을 하고 일부러 강아지를 분양받아 키우고 남이 농사를 지어놓은 것을 수확만 해서 세끼 밥을 해먹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TV에서 인기를 끌던 프로그램의 내용이다. 처음에는 이런 방송을 왜 재미있어 하는지, 왜 이런 방송을 만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이 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내가 직접 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을 터인데, 스스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문화전문가의 컬럼을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일상이 판타지인 시대가 되었다 !’ 일상적이던 일들이 이제 하지 못하는, 할 수 없는 환상이 되어 잘생긴 연예인들이 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이라 했다. 수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N포 세대에게 세끼 밥을 해먹는 것은 시간 없고 돈 없어 할 수 없는 환상이 되었다는 씁쓸한 내용이었다.

왜 청년들은 일상을 포기한 것일까. 다니엘 튜터는 2002년 한일월드컵이 벌어지던 때에 대학생으로 한국에 있었다. 한국에 매료된 그는 이코노미스트의 기자가 되어 2010년 한국특파원으로 다시 왔다. 하지만 기자의 눈으로 본 한국은 월드컵에서 질서정연하게 열광하던 한국이 아니었다.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그의 책에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경쟁이 가장 심한 나라라고 꼬집고 있다. 그나마 경쟁이 공정하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이미 운동장은 기울어져 있고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에서 출발한 사람은 중간에서 출발한 사람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없고 좋은 대학에 갔다 해도 좋은 직장에 갈 수 없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 해서 평생 일할 수 없고 평생 일한다 해도 행복해지지 않는 사다리가 걷어 차여진 그런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집과 학교, 학원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돌고 있다. 그 꽃다운 나이에.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좋은 대학에 간다고 그 이후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리 없다. 좋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만 쳇바퀴를 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학원에 보내기 위해, 대학등록금을 만들기 위해, 결혼하면 전셋집이라도 얻어주기 위해, 최소한 운동장의 맨 끝에서 출발시키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두 세대가 같이 쳇바퀴를 돌고 있지만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돌고 돌아간 쳇바퀴가 만들어낸 것이 무엇인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것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스위스의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불안』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불안을 느낀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 쳇바퀴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렇게 불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화폐적 발전모델의 한계

경제적이라는 말을 화폐적이라는 말로 바꾸어 쓰려고 노력한다. 경제적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용어로 쓰이지만 실상은 들어간 돈에 비해 산출되는 돈이 더 많은 경우에 적용하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폐로 계산되지 않는 비용과 이익은 고려되지 않는다. 단순히 더 많은 화폐가 생겼을 때 쓰는 용어이다. 그래서 나는 경제성장을 화폐적 발전이라 고쳐서 부른다. 경제성장은 경쟁력이 있는 산업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필요한 것을 사는 방식으로 화폐의 흐름 규모를 늘리는 것이라 할 수 있디. , 경쟁력 있으니 핸드폰을 수출하여 돈을 벌어 경쟁력이 없는 농산물은 수입하여 사먹으면 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화폐적 발전, 다른 말로 경제성장은 그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인구성장이 멈추었기 때문이다. 21세기 자본론』의 저자 토마 피케티는 선진국의 과거 300년 동안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1.6%였고 이 절반은 인구증가 덕분이었다고 분석하면서 인구감소 현상을 고려하면 3~4%의 경제성장을 기대한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메이지유신 이후 150년간의 일본의 경제성장은 인구성장과 그 추세를 같이 하고 있고 2000년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의 감소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연동되어 있다. 피케티는 노동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상태에서 경제성장율 1-2%를 유지하는 것을 어렵다고 예측한다.

두 번째 이유는 기업을 만들고 지원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교우위의 산업을 육성하여 기업을 만들어도 그 기업은 돈을 벌지 모르나 그만큼의 일자리는 생겨나지 않는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프레드릭 로르동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세계의 석학 30명의 논문을 모은 『르몽드 인문학』이라는 책의 '기업은 고용을 창출하지 않는다'라는 글에서 일자리는 기업이 창출하는 것이 아니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결국 기업의 수주 상황이고 기업의 수주상황을 결정짓는 것은 경기, 즉 돈의 흐름이라 불리는 지표들이다 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세 번째 이유는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라 가정했던 경제활동을 뒷받침하는 자원들의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저명한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는 그의 책 『상상 오디세이』에서 식량(Food), 에너지(Energy), 그리고 물(Water)이 부족해질 자원인데 흥미롭게도 이 세 영어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모으면 ‘FEW(거의 없다)’가 되어 FEWfew한 시대가 될 것이라 했다. 저자도 에너지와 자원의 문제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원의 한계에 따른 비용의 증가는 경제성장의 뒷다리를 잡을 것이다.

국가의 경제성장, 즉 화폐적 발전은 산업단지와 도시를 개발하면서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을 이 곳으로 이동시켰다. 토지가 필요하니 부모들은 토지를 팔아 자식을 교육시켰고 전문지식과 기술을 가진 노동자가 되어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그렇게 경제는 성장했고 일자리가 만들어져 가난에서 벗어났다. 이 기제가 작동하는 동안은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노동을 통해 화폐를 벌 수 있었다. 그렇게 화폐적 발전모델과 화폐적 직업모델은 맞물리면서 돌아갔다. 하지만 이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더 위태로워진 지역사회

여러 작은 도시에서 살았다. 춘천에서의 일이다. 큰 아이가 자전거를 탈 나이가 되어 자전거를 사야하는데 동네 자전거 가게의 자전거보다 대형마트의 자전거가 더 쌌다. 하지만 동네 자전거 가게에 손님이 북적되는 것을 보지 못했고 많은 날 허공만 쳐다보는 자전거 가게의 할아버지 모습이 눈에 밟혀 비싸지만 그 자전거를 샀다. 그 자전거와 함께 충남 서천군으로 이사했다. 큰 아이는 자전거로 등하교를 했고 어느 날 자전거 타이어의 코크가 빠져 동네자전거 가게에 수리를 하러갔다. 수리하는 아저씨는 내내 투덜거렸다. 자신의 가게에는 자전거 사러 오는 이는 아무도 없고 돈이 되지 않는 이런 수리만 하러 온다는 것이었다. 서천읍과 군산의 대형마트는 자동차로 불과 20분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싼 가격에 대형마트에서 자전거는 사지만 그 자전거를 고치기 위해 물건을 산 대형마트까지 가지 않는 것이다. 지역에서 자전거를 팔고 자전거를 고치던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아버지였던 지역주민의 일자리는 그렇게 위태로워졌다.

녹차밭이 많은 남도의 한 마을에서 마을발전계획을 만들던 때의 일이다. 녹차농사를 짓는 농부들을 인터뷰하다가 물어보았다. 첫 번째 질문, 혹시 술은 주로 어디에서 드시나요 ? 인근의 큰 도시의 번화가가 답이다. 가까운 읍내에는 좋은 술집이 없다고 한다. 두 번째 질문, 혹시 농사짓지 않는 농산물은 어디에서 구매하나요 ? 인근 도시 대형마트. 마지막 질문, 혹시 어디 살고 있나요 ? 인근 도시 아파트. 큰 돈만 농촌에서 도시로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다. 농촌경제가 침체되었기 때문에 구매할만한 물건과 서비스를 농촌에서 얻기 어려워 농촌주민들도 대부분은 도시에서 소비한다. 더 불편해지면 아예 도시로 이사한다. 이렇게 농촌의 인구감소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농촌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주의 한옥마을은 연간 천 만이 넘는 방문객이 찾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다. 또한 하루 평균 33800만원, 연간 1,234억이 넘는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성업 중인 가게 중에 하나는 한복대여점이다. 2017년 현재 200여개가 넘는 가게가 있고 대여점 사장들의 말에 의하면 아직도 수요가 충분해서 추가적인 창업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한복대여점의 한복은 어디서 만드는 것일까. 대여용 한복은 시간 당 만 원 정도의 요금으로 빌려주고 20~30회 정도 대여하면 쓸 수 없다고 한다. 저렴해야 하기 때문에 서울 광장시장에서 만든 한복을 사온다. 전주 남부시장에서 한복을 만드는 할머니들에게 이 대여용 한복을 만들 수 없겠느냐고 여쭈어봤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자존심이 상해서 만들지 않는다 하신다. 광장시장에서 만든 한복은 고무줄이 들어간 모양만 한복인 국적 없는 옷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관광객이 전주에서 쓴 돈은 외부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그 할머니들이 지켜왔던 지역의 자존심도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국가경제에 예속되고 파편화된 지역경제는 국가 전체의 경제성장에 문제가 생기면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이다. GM이 떠나간 군산처럼.

 

새로운 희망의 움직임

농촌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바로 홍성군 홍동지역이다. 홍성군 홍동면 일대는 1958년 개교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의 설립을 계기로 주민중심의 생협활동, 문화활동, 교육환경조성 등의 지역공동체 운동을 통해 활발한 농촌을 만들어왔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는 1970년대 유기농업을 도입하여 농촌에서 일할 수 있는 농촌지도자와 농촌지역 일꾼을 양성하면서 지역사회 운동의 확대를 도모하였다. 많은 풀무학교 졸업생들이 지역에 남았고 지역에 축적된 인적자원, 지역 잠재력이 신협, 생협, 주민주도형 어린이집, 여성농업인 센터 등 다양한 풀뿌리식 농촌 자치조직을 만들었으며, 이러한 풀뿌리 조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많이 더 다양해지면서 농촌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다양한 풀뿌리 조직과 이들의 느슨한 교류와 협력으로 만들어진 무정형의 지역공동체가 지역주민의 삶을 지속 가능하도록 해주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도시민이 이주가 일어나 인구가 줄어들지 않는 선순환적 지역발전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 다른 움직임은 내가 살고 있는 완주에서 일어났다. 완주군은 2008년부터 5년간 약속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로컬푸드와 커뮤니티비지니스를 중심으로 약 500억을 농촌지역에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농촌활력과를 신설하여 각 실과에서 산발적으로 추진하던 사업을 통합하였으며 마을회사육성센터, 로컬푸드지원센터,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도농순환센터 등의 중간지원조직을 통한 민관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했다. 완주군은 마을을 대상으로 단계별로 지원하여 400여개 마을 중에 100여개의 마을에서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6차 산업에 진입한 마을은 월 매출 수천만 원과 상시고용인원을 가진 회사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또한 커뮤니티비지니스사업은 사전 준비와 창업의 2단계의 지원을 통해 수십 개의 공동체사업의 창업을 지원하여 교육, 문화,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단의 창업이 일어났다. 로컬푸드 육성정책에 따라 전주, 완주에 8개의 직매장, 3개의 농가레스토랑, 3개의 농민거점가공센터 등을 조성하였고 어르신들의 복지농장인 두레농장과 로컬푸드를 생산하는 마을을 연계하여 안정적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그래서 완주군은 작은 규모의 농사도 가능한 지역, 다양한 농산물의 가공이 가능한 지역, 농업 이외에도 다양한 일자리가 있는 지역, 주민 스스로 지역을 바꾸어가고 있는 지역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많은 도시민들이 이주하고 있고 또 이주를 희망하고 있다.

 

내 본능은 요리, 지역사회에서 본능적으로

많은 청년들이 완주군의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하는 나를 찾아왔다. 그런 청년들에게 농사는 수천 년을 지속된 것이고 누구나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농촌에서 농사와 관련된 일을 찾아내면 평생 할 수 있다는 말로 희망을 주고자 했다. 왜냐하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기를 포기한 잉여로 불리던 그들은 내 눈길을 피할 만큼 자존감이 낮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인터넷 동영상에서 인공지능이 농사를 짓고 로봇이 농부를 대체하는 것을 보았다. 이제 농부도 없어지겠구나 ! 농촌을 찾아오는 청년들에게 이제 무엇을 하라고 해야 할지, 나는 나이가 더 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도통 혼란에 빠졌다. 스스로 집짓기 강좌를 하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강좌를 수강한 사람 중에 단 2%만 집을 스스로 지었다면서 집을 짓지도 않을 거면서 그걸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이유를 몰랐었는데 어느 날 깨달았다고 한다. ‘건축본능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무언가를 짓고 만들었던 경험이 유전자 속에 축적되어 있다는 것이다. 맞다 ! 우리에게는 본능이 있다. 경작본능, 목축본능, 요리본능, 공작본능, 가무본능... 본능으로 하는 일은 아마도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더 가치가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요리가 나의 본능이었다. 최근에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고산미소 시장에서 열리는 벼룩장터에 나가 한잔상담소를 운영한다. 나는 요리를 하고 우리 동네에 친구들이 술을 가지고 와 수다를 떨며 한잔씩 기울인다. 누군가 지나가다가 박스 종이로 만든 간판을 보고 상담을 청한다. 농촌에서 집짓기, 귀농하는 방법, 아이들 교육과 진학문제 등등. 상담에 만족하면 자율적으로 조그만 돈통에 알아서 돈을 넣고 가면 된다. 나는 그 돈을 모아 재료비를 제하고 우리 동네에서 청소년 활동을 하는 협동조합에 기부한다. 집에서 안팎에서 요리를 하면서 꿈을 꾼다. 지금하고 있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으면 조그만 동네에서 심야식당을 하자. 좋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맛있는 요리와 한잔 술을 기울이며 훈훈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이 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행복한 상상이지만 불안하기도 하다. 손님들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식당이 망하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다. 우리 동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한 귀농인이 마당에서 모과를 따서 청을 만들어 귀농인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판매를 했다. 1키로그램에 오천원이었는데 이 모과청을 받은 사람들이 가격에 비해 양이 너무 많다며 걱정을 하더니 급기야 오천원만 받아도 된다는 만든 사람의 의견과 상관없이 가격을 담합하여 삼천원을 올렸다. 우리 동네는 그런 동네이다. 내가 만든 식당은 적어도 우리 동네에선 망하지 않을 거다. 나는 그렇게 내가 사는 지역사회를 믿는다.

노동만 일이 아니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도, 가치있는 일도 일이다. 사람이 태어나 돈을 버는 노동만 한다면 이 보다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의 진짜 직업은 언제 가졌던 직업일까. 청년 시절에 가졌던 직업은 아닐 것이다. 50대 이전에 가졌던 직업은 이후에 가질 진짜 직업,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준비작업일 것이며 인생의 마지막에 자신의 본능을 펼치기 위한 사전 과정일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없어지지 않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아야 한다. 그걸 찾는 유일한 방법은 본능에 기대는 것이다. 50, 이제부터 본능을 향해 움직여야 한다. , 이 본능을 품어줄 수 있는 곳은 대기업이 아니다. 팍팍한 대도시의 빌딩 숲이 아니다. 공동체가 살아 있는 동네와 마을, 지역사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와 마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역사회를 공동체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도 본능을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참고한 책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다니엣 튜더, 문학동네, 2013

『불안』,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2011

21세기 자본론』토마스 피케티, 중신출판사. 2014

『르몽드인문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휴먼큐브, 2014

『상상오딧세이』, 최채천, 다산북스,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