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대, 소통의 즐거움을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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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관계탐구 강좌 수강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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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관계에 목말랐을까?”
 

내겐 소통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 보다 밀접한 인간 관계를 원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 누구보다 밀접한 관계를 원했던 사람과 소통이 단절되고 관계가 끊기면서 관계와 소통이란 화두는 내 삶의 풀지 못한 매듭으로 남겨져 있다. 


난 내 인생을 태어난 후 10살까지와 죽기 전 마지막을 연산해서 각각 10년을 제외하고 20년씩을 연대기로 나눠서 전반기, 중반기, 후반기를 나눈다. 즉 10대와 20대를 내 인생의 전반기, 30대와 40대를 인생의 중반기, 50대와 60대를 인생의 후반기로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책이나 학자들이 말하는 것도 아닌 그저 나만의 내 인생 연대기 구분법인 셈인데 인생을 이렇게 나누는 것에는 나의 소멸과 죽음에 대한 나름대로(?) 기준과 소망이 반영되어 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나의 의지로 획득된 것이 아니지만 자연으로 돌아감은 나의 의지로 건강하게 자아가 깨어있는 상태로, 그렇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된 나의 바램이었다. 그리고 내가 목표로 하는 자연으로의 귀환은 80세이다. 내가 작성한 이 구분법에는 다분히 자아로서의 각성이 중요 기준인데 내 스스로 구분한 나의 삶 속에서 현재 나는 인생 후반기 1악장을 끝내고 있다. 

 

인생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난 근 30년을 해왔던 직장 생활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사업체는 안정이 되지 않았다. 결국 불안정한 사업체를 이끌어가기 위해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자금 순환을 위해 단발성 사업에 매달려야 했다. 이런 소모적인 인간 관계들과 이벤트성 사업은 결국 내가 갖고 있는 작은 재능(?)과 열정을 바닥나게 만들었다. 우물에 물 한 방울 남지 않아 매일 두레박을 긁어대며 제살을 파먹으며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이라니…. 

 

인생 후반기 1악장이 끝나갈 무렵 서울50플러스 재단을 만났다. 2019년 3월 초, 겨울 문턱은 넘었지만 봄이라 하기엔 바람이 너무 쌀쌀해 코트 깃을 절로 여미게 되던 그날. 난 공덕동 중부캠퍼스의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숨은 차서 씩씩거렸고 등뒤로는 적당하게 땀도 흘렀다. 약속한 상담 시간에 늦지 않게 부지런히 걸어 올라가던 그 길이 한국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친구들과 새롭게 알게 될 교류와 소통의 즐거움을 가져다 줄 길이라는 것은 모른 채 말이다.  


상담 시간에 유난히 내 시선을 머무르게 했던 네 글자, ‘관계탐구’.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폭풍 웹 서핑을 돌렸다. 관계탐구, 이경아 선생, 비폭력대화, NVC 등등.

 

그래 너로 정했다. 이 수업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로 마음이 조급해졌다. 1학기 강의가 3월 14일부터 시작인데 마감이 됐으면 어떻게 하지? 다행히 서울50플러스 포털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고 수강신청, 수업료 입금까지, 첫 강의가 시작되기 바로 전날에서야 절차가 완료됐다. 본인 인증을 할 수 없어 아이핀 인증을 하러 여의도 나이스핀까지 가서 대면인증을 해야 하는 등 포털 사이트 회원가입에서부터 재외국민인 나에게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3월14일 첫 강의 시간
 

중부캠퍼스 4층 강의실에 초롱초롱 눈을 반짝이는 40대 후반에서부터 60대 초반에 이르는 수강생들이 모여들었다. 첫날 자기 소개를 하면서 원래 이름이 아니라 불리기를 원하는 닉네임으로 소통해도 된다는 다소 나에겐 충격적인 일도 경험했다. 젊은 친구들은 본인들의 닉네임 하나쯤은 모두 갖고 있다는 듯, 기다렸다는 듯 닉네임을 말했고 그 닉네임을 정한 이유들을 설명했다. 그 설명 하나하나에도 사회의 관계와 익명성, 소통의 의미들이 모두 담겨있었다. 이렇게 근 20년만에 돌아온 한국은 나에게 새로움 그 자체였고 충격이었다.    


 
                     ▲이경아 선생님의 열강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관계탐구 5기 수강생들

 


인간관계와 의사소통을 위한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교재의 표지에 쓰여진 문장을 살펴보자. 인간의 소통이 그간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반증하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 말로 상처 주고 말로 폭력을 행사하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관계탐구 강의는 시작됐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의 문을 열어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날의 대화 파트너를 서로 관찰하고 느낌을 말하고 느낌에 근거한 욕구를 이끌어내는 일. 학교에서 배워본 적 없고, 그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내 느낌 알아채기. 상대방을 관찰해서 명료한 단어로 그 사람의 욕구를 이끌어 내기. 이 모든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강생들과의 대화와 훈련을 통해 차츰차츰 내 심리의 실체가 비로소 손으로 만져지듯 눈으로 볼 수 있듯 그렇게 구체화가 됐다. 나만이 아니었다. 관계에 좌절하고 소통 부재에 힘들어하는 수강생들은 스스로 위로 받고, 위로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눈물 흘리고 눈물을 닦아주며 소통 부재의 암흑 같았던 터널의 벽을 짚어 서로를 이끌어 그렇게 긴 터널을 빠져 나왔다. 
 


                       ▲상황극에 몰입해서 상대방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수강생들의 모습

 

나는 잘 몰랐다. 내 느낌과 연결된 욕구를. 관계탐구 강의가 끝나갈 때쯤 난 비로소 내가 오랜 세월 동안 욕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느낌마저 억누르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경아 선생님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지도가 빛났고, 자신을 모두 열어 보이며 클래스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관계가 되기를 원했던 관계탐구 5기 수강생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우리는 서로를 관찰하고 서로의 느낌을 알아채며 욕구와 부탁, 공감 과정을 때로는 대화로 때로는 상황극으로 그리고 때로는 댄스를 통해 소통했다. 함께 아파했고 함께 눈물 흘리며 공감했다. 
 


▲비폭력대화의 주요 키워드인 관찰, 느낌, 욕구, 부탁 네임카드를 바닥에 놓고 본인이 이야기를 하는 상태에 따라

              카드 옆에 서는 등 정확하게 자신의 느낌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비폭력 댄싱 훈련.

                    이날 댄싱 훈련은 수강생들이 자신의 감정을 알아채는데 좋은 툴로 활용됐다.

 

 

12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었다. 50대에 정서를 함께 공유하고 진정성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었다. 또한 관계에 혼란스러워하던 예전 내 모습처럼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작은 건드림에도 감정의 줄이 끊어질 듯 흐느끼는 후배들을 만나 등을 두드려 줄 수 있는 소중한 경험도 했다. 

 

                                ▲이경아 선생님과 수강생들이 돌아가면서 떡을 자르고 있다.

 

5월30일 12번째 강의를 끝으로 관계탐구 5기 강의가 모두 끝났다.
유난히 돈독함을 자랑했던 관계탐구 5기는 마지막 강의 시간에 각자 음식 한 가지씩을 갖고 와서 고별 파티를 간단히 가졌다.한 수강생이 팥떡을 맞춰서 갖고 오자 모두 '와~' 그날 공덕동 중부캠퍼스 4층은 시루떡의 구수한 냄새로 가득했다.

 

 


▲12주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우린 내면에 쌓인 상처를 서로에게 드러냈고 
그 상처에서 흘러 나온 눈물을 머금어 우정의 꽃을 피워냈다.

마지막 강의 시간, 한 수강생이 정든 동료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워 참가자들에게 정성스레 편지를 써서 꽃다발을 선물했다.

 

 

세파에 부딪히고 현실과 조금은 타협하며, 우리는 각자 삶의 길에서 내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내고 있다. 군중 속에 무리 짓지 않고 웅크리고 있다가 서로를 알아보고 보듬게 된 것이다. 무리에 섞이지 않았던 다른 이유는 없으리라. 오롯이 내 삶의 방식으로 살아내고 싶어서일 테니.


이보다 더 훌륭한 관계탐구가 있을까? 우린 모두 인생의 길을 탐구했고 아내, 엄마로서가 아닌 개인인 나에게 집중해 인생의 새 길에 섰다. 이제 12주 강의가 모두 끝난 지금, 관계탐구 5기 수강생들은 각자의 가정에서 남편에게, 자식에게, 그리고 부모에게 2019년 3월부터 5월까지 공덕동에서 함께 했던 그 눈물겹고 뜨거웠던 경험들을 각자의 방법으로 구체적으로 모색해나갈 것이다. 
2019년 봄은 내 인생에서 어떻게 기억될까?


 

미니 인터뷰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의 대표 컨텐츠 
관계탐구 강사 이경아


관계탐구 강좌는 지난 2017년 처음 중부캠퍼스에 개설됐다. 1년에 2기씩을 배출해내고 있는데 처음에는 일회성 단기 강의에서 시작해 5주, 6주, 8주, 11주를 거쳐 올 봄학기부터 12주로 확대 개편돼 개설됐다. 비폭력대화를 창시한 이는 마셜 로젠버그 박사. 로젠버그는 미국의 임상심리학 박사이며 평화운동가로 마셜 1984년 CNVC(Centerfor Nonviolent Communication)를 설립해 세계 여러 곳에서 NVC를 훈련시키고 국가간 분쟁 지역에서 중재자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한국에는 2003년 처음으로 소개됐으며 2006년에는 한국NVC센터가 설립돼 꾸준한 강의와 교육을 해오고 있다. 한마디로 비폭력대화란 인간 본성인 연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하고 자기 자신을 돌 볼 수 있게 해주는 대화법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단순히 심리상담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화법 교육은 물론 갈등을 겪고 있는 가족관계나 직장 동료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훈련을 하는 등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이경아 선생님은 중부캠퍼스에서 관계탐구 강의를 개설하면서 그 어느 것보다 의미 있고 뿌듯했던 일로 지난해 3월 수강생들이 클래스를 끝낸 후, 조직한 공감 플러스 커뮤니티 활동을 꼽았다. 특히 공감 플러스 커뮤니티는 일 년째 지속되면서 뜻 깊은 활동을 하고 있다. 
중부캠퍼스 내의 커뮤니티로 출발한 공감 플러스는 비폭력대화의 의미에 공감하고 가정 및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기 위해 꾸준히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중부캠퍼스의 대표 커뮤니티다. 

 

한편 중부캠퍼스에서 관계 탐구를 강의하고 있는 이경아 선생님은 서울대 미학과 학사를 거쳐 이화여대에서 여성학으로 석사와 박사를 마친 후, 현재 비폭력대화교육원의 강사로 활동하면서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관계탐구 강의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2011년 '엄마는 괴로워: 우리 시대 엄마를 인터뷰하다', 2016년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에코 페미니스트 행복혁명' , 역서로는 2018년 한국 NVC 센터의 '비폭력대화와 사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