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투는 이유

조금 더워진 날씨 탓에 한밤중 동네 카페에 나왔습니다. 눈꽃 빙수가 매진되어 대신 초콜릿 빙수로 달콤함을 즐기는데,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들어와 바로 옆자리에 앉습니다. 우리 부부는 마주 보며 빙긋 웃었습니다. ‘어! 우리랑 똑같네.’ 의미입니다. 밤중에 부부가 다정한 모습으로 카페에 들어서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늘 사물과 사람에 주의를 기울이는 성격 탓에 예사로 보이지 않아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좋아 보이는 부부였는데 음료 주문 때문에 티격태격합니다. 아내는 각자 자기 것 한 잔씩 주문하자고 하고, 남편은 한 잔만 시켜서 나눠 마시자고 합니다.

주문하고 나서 갑자기 둘 다 스몸비(스마트 폰+좀비, 스마트 폰만 들여다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가 됩니다. 커피가 나오자 각자 자기 앞에 놓고 다시 스마트 폰 좀비가 됩니다.

맛있는 초콜릿 눈꽃 빙수를 다 먹고 파이를 하나 시켜서 파이에 얹어서도 먹고 우리 부부는 기쁨을 누리는 동안 옆자리 부부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집을 나오면서 즐겁게 데이트를 하러 나온 부부는 왜 대화가 단절된 공간 속에서 어색하게 마주 앉아 스마트 폰과 대화 하고 있을까요?

 

자신의 집도 아니고 공공장소인 커피점에서 한 잔만 시켜 나누어 마시자고 했을 때 아내 마음은 어땠을까요? 남편은 왜 한 잔만 시켜서 나누어 마시자고 했을까요? 이유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사람

고등학교에 실습 교생으로 근무했던 때 일이 기억납니다. 책상 바로 옆에 글짓기 원고지 뭉치가 쌓여 있기에 호기심에 들쳐 읽어보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글짓기였습니다. 원고 중 눈에 확 띄는 글이 있었습니다. 35년이 되었는데도 잊히지 않은 짧은 글입니다. ‘3초 차이로 태어나는 쌍둥이도 서로 다른 데 미래의 일을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다. 미래에 대해 저는 모릅니다.’라는 두 문장 글입니다.

쌍둥이가 3초 차이로 태어나지도 않겠고, 쌍둥이가 태어나는 것하고 미래하고 관계도 없는 것이지만 저는 ‘다르다’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학생에게 색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배 속에서 태어난 쌍둥이도 다릅니다. 하물며 결혼하기 전 대부분 삶이 다른 환경과 문화 속에서 생활한 남녀는 어떻겠습니다. 성(性)을 포함하여 완전히 다른 독립된 인격체입니다.

 

결혼생활에서 오해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부부는 한 몸이다'는 것입니다. 결혼한 사람은 누구나 들어 본 말입니다. 결혼의 의미와 목적 중에 안정감과 중요감이 있습니다. 정서적 안정을 물론 생활이 안정됩니다. 나를 사랑해 주는 배우자로 인해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으로 자신에 대한 중요감이 생깁니다.

또 한 가지 결혼의 목적과 의미는 연합입니다. 부부가 한 몸처럼 살아가면서 희로애락을 같이하고 한 방향을 바라보고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해가 생깁니다. 연합은 합심해서 하나가 되어 가정을 세워가라는 의미이지 두 인격체가 한 인격체로 살아가라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는 왜 다툴까요? “당신은 왜 나와 달라?”로 함축해 볼 수 있습니다. 남편이 하는 일과 계획에 아내가 따르지 않거나, 아내의 일과 계획에 남편이 따르지 않을 때 부부는 화가 나고 미움이 생깁니다. 부부는 상대 배우자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길 바라며 자신의 의도대로 따라주기 원합니다. 서로가 잘 협의하거나 아니면 상대의 의견에 동의한다면 부부가 싸울 일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부부싸움은 존재하지 않고 헤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부부의 변화와 위기

결혼생활 20년 이상 된 부부가 이혼하는 황혼이혼은 지난 10년 사이 10배 이상 증가했고, 졸혼(부부가 이혼하지 않으면서도 각자 자신의 삶을 즐기며 자유롭게 사는 생활방식)이라는 말이 흔하게 회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결혼 초기에 부부는 다툼이 잦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났는데 다툼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두 몸이 한 몸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물론 연합의 본래 의미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투지만 화해는 빠릅니다. 중년의 시기가 되기까지도 부부는 다투며 삽니다, 그러나 일과 자녀 양육, 가사에 힘쓰느라 깊이 있게 다투는 내용을 다루지 못하고 시간을 보냅니다.

 

중년기는 다릅니다. 발달심리에서 보면 중년 이후 남녀는 신체적인 변화와 더불어 심리적 변화가 찾아옵니다. 심리적 변화는 여성이 남성보다, 일하지 않은 사람이 일하는 사람보다, 집안에서 가사를 돌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빨리, 더 심하게 찾아옵니다. 전업주부일 경우 심리적 변화와 더불어 개별화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자리매김을 위해 삶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신체적, 심리적 변화는 원치 않은 변화입니다. 위기는 항상 변화와 함께 옵니다. 위기를 감지하고 잘 대처해야 합니다. 위기를 성숙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부부는 두 인격체

중년을 넘어선 부부라면 이제는 확실하게 배우자를 나와 다른 인격체로 배우자상을 정립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부부라도 앞서 살펴본 신체적 심리적 변화와 개별화로 인해 다툼의 여지가 생깁니다. 지금까지 삶은 직장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자녀를 위하여, 라는 명분이 다툼을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상담실에 앉은 초로의 내담자는 평생 순종적이고 조용히 지내온 아내가 요즘은 대들어서 힘들다며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합니다.

전업주부였거나, 자녀 양육에 전적으로 중년의 시기까지 보낸 여성들은 자녀가 성장해 독립하거나 결혼으로 분가하게 되면서 빈 둥지 가구가 되면 개별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마음속에 미루어두었거나 삶의 여건으로 포기했던 것들이 스멀스멀 일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나’로 살고 싶은 본래의 욕구가 눈을 뜹니다.

 

다투는 이유는 두 몸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별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합니다.

결혼 초부터 부부가 온전히 두 인격체로 살아왔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배우자 일방이 양보하는 삶을 살았거나 억눌린 생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면 개별화 과정은 위기입니다. 본인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자는 잘 대처해야 합니다. 수용과 이해, 인정과 인격적 존중만이 행복한 잔여 인생을 보장합니다.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