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가족의 정서적 체계

현대사회는 개인주의, 다원화, 개방화, 정보화 등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과 가정은 공동체이며 인간 삶의 근본적 출발점으로 현대사회 특징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가족이 해체되고 가정이 붕괴하는 현실은 가족 간, 가정 내 구성원 사이에 갈등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가족 사이의 갈등은 어느 시대나 있지만, 핵가족화로 변화된 가정의 정서는 갈등이 해소되기 어렵게 되거나 해소 통로가 사라진 것입니다. 참고 가슴앓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좀 더 유연한 사회, 열린 사회가 되었지만, 제어장치 없는 갈등은 거의 다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핵가족의 정서적 체계(nuclear family emotional system) 개념이 있습니다. 단일세대 가족 안에서 정서적 기능의 형태를 설명한 것으로 가족들이 감정적으로 연결된 정도를 말합니다. 부부의 정서 상태는 원가족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녀에게 전달되고 계속해서 세대를 반복하며 전달됩니다. 부부는 결혼할 배우자를 선택할 때 자신과 비슷한 정서를 가진 배우자를 선택합니다.

보웬(Murray Bowen)은 배우자 선택 조건으로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정도의 자아분화 상대를 배우자로 선택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아분화(Differenciation of Self)란 개인이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정서적 분리를 성취하는 정도로 이성과 감정을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보웬이 세운 가족치료 개념입니다.

자아분화의 정도는 감정과 이성을 분리하고 통제하는 데 영향을 미치며, 낮을수록 감정적이고 본능적이며 객관화에 취약합니다. 자아분화 정도가 높은 사람은 충분히 감정을 느끼고 소화하여 이성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가족 안의 희생양

자아분화가 낮은 사람은 세대를 이어 전수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경우 결혼으로 가정을 이룬 핵가족 내 부부는 서로 감정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가며 불만, 불안으로 다툼이 잦아집니다. 부부 사이에 정서적으로 거리감이 생겨나 가족 안에 전체 불안 수준이 높아집니다. 당연히 자녀는 부부의 자아분화 정도를 전수받게 됩니다. 부부는 물론이거니와 자녀를 포함한 가족 안에 갈등이 조성되어 문제가 생겨납니다. 부부 사이 역기능은 부부 갈등의 원인이 되고 가족 안에 팽배한 긴장감은 자녀의 역기능으로 연결됩니다.

 

자녀 문제를 가지고 오는 내담자에게는 부부 사이의 정서 상태를 먼저 확인합니다.

핵가족 형태는 강력한 상호의존적 시스템입니다. 융합과 단절이 극과 극을 이룰 수 있습니다. 밀착 관계이거나 외면하며 살거나 하는 가족 형태가 생겨납니다. 가족 안에 불안이 생겨나면 가족 구성원은 불안을 조절하기 위한 몇 가지 패턴이 나타납니다. 한쪽 배우자가 문제일 경우 다른 배우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증상이 나타납니다. 몸이 이유 없이 아프고 우울함이나 분노, 중독이 나타납니다. 자녀에게는 학습부진, 학우 관계의 변화, 왕따, 학교폭력, 중독에 노출됩니다.

 

부부 갈등으로 함께 불안이 높으면 두 사람은 자녀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습니다. ‘너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네 아비(어미)를 닮아서….’ 라는 식입니다. 부부 문제를 자녀에 전가하여 적으로 여기는 전형적인 삼각관계입니다. 배우자 한쪽이 불안이 높으면 부부 사이에는 긴장 관계가 되고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자녀와 결합을 선택합니다. 자녀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므로 연민과 죄책감 두 감정을 동시에 가지게 됩니다.

갈등은 없더라도 부모의 학구열, 서열주의, 경쟁주의, 출세주의가 자녀를 향한 불안과 밀착된 염려로 부부가 연합되어 자녀를 고립시키는 가족 투사형태가 있습니다. 부모의 미성숙이 가져온 것입니다.

 

한 자녀 문제로 부모가 힘들어하면 그것을 보고 있는 다른 자녀는 엄마·아빠가 안쓰러워 자신의 감정을 정화할 곳이 없게 돼 상담실을 찾게 될 증상이 나타납니다. 가정 안에서는 수많은 삼각관계가 생겨납니다. 삼각관계로 인해 갈등이나 불안의 당사자가 아닌 가족 중에 희생자, 가족 희생양이 생겨납니다. 대부분 자녀가 가족 희생양이 됩니다.

자녀 문제를 가지고 내담자가 상담실을 찾으면 가족시스템 전체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우리 집에 문제가 있어요. 도와주세요.”라고 가족 희생양이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집착과 중독

부모는 자신들의 꿈이나 희망 사항을 자녀를 통해 이루려 합니다. 자신들의 불안을 자녀를 향해 투사합니다. 부모의 가치체계가 자녀에게 강요되어 자녀는 자신의 내적 가치체계가 아닌 부모의 가치체계에 의해 움직이게 됩니다. 자녀가 성장하고 독립적 지위가 확보되면 충돌은 불가피합니다. 부모의 뜻에 전혀 반하는 삶을 살거나 행동하며 심할 경우 관계를 단절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죄책감 때문에 부모 뜻을 받드느라 힘든 삶을 살아갑니다.

‘유학 간 14살, 방학이면 홀로 '대치동 지옥'을 배회했다(한겨레신문 2019.08.27.). 부모의 불안 탓에 혹사당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에 관한 신문기사입니다.

스마트폰 · 게임중독 역시 심각합니다. 조사연구에 의하면 학생들의 스마트폰 · 게임중독은 학습 부진이나 흥미 하락이 원인으로 더 나아가면 부모의 영향으로 정서적 불안이 학습에 대한 흥미 하락과 학습부진,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순환구조로 보고되어있습니다.

 

당사자와 대화

낮은 자아분화, 불안과 불만으로 인한 가족갈등은 자녀를 희생양으로 만듭니다.

아내의 우울증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던 S씨는 병원과 상담실을 번갈아 가며 아내치료에 힘썼으나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담을 통한 가족시스템 탐색 결과 그녀의 우울증은 외동딸의 왕따가 원인으로 여겨졌습니다. 자녀는 학교생활 동안 왕따 문제가 졸업 후 직장으로까지 연결되어 취업과 이직을 반복했습니다.

자녀의 왕따 문제는 엄마의 압박에서 온 것으로 보여, 자녀 상담으로 변경하였습니다. 상담을 통해 자녀의 직장 내 왕따는 해결되었고 한 직장에서 6개월을 넘기지 못한 습관적 이직은 이제 높은 연봉과 함께 안정적으로 일하는 정상적인 직장인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아내의 우울증은 사라졌고 자녀의 도움으로 S씨는 아내와 해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50플러스 상담센터가 행운을 가져다주었다며 행복해합니다.

 

가족 안에서 역기능적 삼각관계는 깨져야 합니다. 희생양을 만들어서는 안되고 생겨나도 안됩니다. 가족 구성원은 누구나 소중한 인격체입니다.

감정은 말로 표현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불안한 마음은 나누면 낮아집니다. 특히 불안을 느끼는 당사자와 함께 이야기하기를 권유합니다. 말을 하면 해소됩니다. 말하지 않고 쌓아두면 갈등이 일어나고 확대되어 누군가를 내 편으로 만들어 삼각관계가 됩니다. 모두가 식탁 앞에 둘러앉아 하루 느낌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어린 자녀, 성장한 자녀 구별할 것 없습니다. 대화는 가정 안에 화평을 싹틔우는 물과 공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