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건강관리 중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회적 건강, 즉 사회적 관계가 달라지는 데서 오는 소외감이나 스트레스이다.

회사 다닐 때는 조직의 수장으로서 업무상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본인의 사회적 관계에 대해 큰 고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은퇴한 후 연락을 했더니 친형제처럼 굴던 하청업체나 부하 직원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본인을 추켜세우는 칭찬에만 익숙해 있다가 잘 만나주지도 않는 그들의 태도에 상처받고 위축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가장 만만한 자녀나 배우자에게 자꾸 권위를 내세우게 되고 결국은 가족에게서조차 왕따를 당한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온 가장에 노고에 대해 고마워하기는커녕 이제 돈을 못 번다고 무시하는 것 같은 자괴감에 툭하면 언성을 높이고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분들에게 나타나는 일반적인 패턴이다. 특히 여성보다 은퇴 이후 본인의 달라진 사회적 위치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년 남성에게서 이러한 사례가 자주 관찰되는데, 가족관계나 사회관계의 미숙으로 사회적 건강이 위협 받으면 정신적 건강과 신체적 건강까지 악영향을 끼치므로 이를 개선시키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첫 번째 덕목은 바로 상대에 대한 관심이다. 그리고 상대를 잘 알기 위해서는 경청을 해야 한다. 높은 직책에서 주로 명령을 하달하는 기업 문화에 익숙했던 분이라면 이제라도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경청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모임에서 혹은 가족과 대화를 하자 해놓고 본인만 말을 많이 하고 있지는 않은가.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도 마찬가지다. 분명 서로 이야기를 듣고 주고받는 모양이지만 결국은 자기 이야기(혹은 왕년에 본인 잘나갔던 이야기)만 돌아가면서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적인 모임이 아닌 워크숍 등 교육받는 자리에서도 그룹끼리 토론하고 발표하라고 하면 말을 제일 많이 한 사람이 대표로 나와 본인 말이 마치 그룹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 또 말할 기회만 주어지면 듣는 사람은 고려하지 않고 일장 연설하는 분들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무엇인지 알려하지 않고 그들이 하는 말에 경청하지 않아 생기는 그릇된 결과다.

 

관심을 가지고 경청을 한 다음 필요한 덕목은 바로 공감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공감지수가 높다고 한다. 물론 개인이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공감능력은 성별과 별개로 차이가 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사회적으로도 건강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공감능력은 어떻게 발현되는 걸까. 바로 상대가 관심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말로 표현하고 호응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표현은 긍정적이고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

 

조선 한성부 포도청의 여성 수사관 이야기를 다룬 TV 드라마 <다모> 내용 중에 이런 대사가 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극 중 남자 주인공이 다친 여주인공의 팔을 치료하며 한 말인데 당시 엄청난 유행어로 번지면서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다 알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명대사다. 아직까지도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 명장면 1위로 꼽힌다고 한다.

무심했던 남주인공이 상대에 대한 관심을 처음으로 드러내고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한 저 대사로 많은 여성들이 가슴앓이를 했다. 그런데 드라마가 아닌 현실은 어떤가.

 

가령, 집에 들어갔는데 배우자가 몸살로 끙끙 앓고 있다.

“아프냐, 바보같이 참지 말고 병원 가!”

마음이 불편하고 신경이 쓰이는데 말을 퉁명스럽게 내뱉지는 않았는지, 걱정되는 본심과 달리 위로의 표현에 인색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아무리 상대의 아픔을 공감하더라도 그 표현 방식이 긍정적이 아니면 상대는 몸살보다도 마음에 더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몇 해 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현재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 남녀 모두 건강을 가장 많이 꼽았다고 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두 번째로 높은 응답률을 보인 것이 남성은 배우자(또는 연인)이 24.4%로 나타난 반면 여성은 자녀가 29.3%로 월등히 높고 배우자는 14.8%인 것으로 나타나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


현재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 (출처: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2014)

 

이런 차이를 놓고 해석이 분분한데, 많은 남성들이 배우자나 연인이 삶에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데도 실상은 상대방에게 그런 표현하는 데는 인색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설문 내용에서처럼 솔직하게 평소에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표현한다면 자식보다는 같이 늙어가며 서로 힘이 되는 인생의 동반자가 더 의미 있고 소중하다고 대답할 여성의 비율도 높아지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간혹 배우자를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크지만 낯간지러워서, 혹은 어떻게 말할지 몰라서 잘 표현을 못하겠다고 하는 분이 있다. 처음이 어색하지 어떤 식으로든 진정성 있게 표현하려 한다면 상대도 그 마음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래서 표현을 하루라도 빨리 자주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앞으로 가족 중 누군가 아프다면 “아프냐, 나도 아프다. 병원 같이 가줄까?”라고 표현해보면 어떨까. 여태껏 같이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사랑하는 걸 꼭 말로 표현해야 아냐고 하지만 표현하지 않고서 상대방이 알아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나이가 들수록 상대방, 특히 가장 가까운 배우자나 가족에게 사랑의 표현과 칭찬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건강은 건강한 가족관계에서 시작되고 가족에서 자존감이 높아질 때 사회적 관계의 변화도 무리 없이 잘 적응해나갈 수 있다.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인생 2막을 즐기려면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경청하고 공감하고 표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