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장례식장. 고인의 시신을 모신 제단 뒤 벽면에 빔 프로젝터로 동영상이 상영된다.

바쁘신데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고인의 인사말과 함께 생전에 고인이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고, 딸을 시집보냈던 모습이 연도와 함께 소개된다. 마치 결혼식 피로연장에서나 틀어주는 화면을 보면서, 조문객들은 추모 파티의 분위기에서 고인의 생전 모습을 추억한다.

 

우리의 일반적인 장례 문화, 예컨데 근조 화환으로 둘러싸인 병원의 장례식장에 온갖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장례식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남은 가족들의 회사 동료나 친구, 그들의 지인(실제 고인은 잘 알지도 못하는!) 등 장례식장을 찾는 사람들은 어수선한 분위기에 고인을 기리기보다는 서로의 안부 묻기에 정신없다. 고인을 돌보는 것은 비싼 수의와 장례 음식을 대는 상조회사의 몫이다. 가족들은 가격에 비해 턱없이 부실한 상조 회사를 욕하면서도 왠지 그렇게 안 하면 불효하는 것 같아 마지막 효도하는 셈치고 비용을 치른다.

 

 

이승을 떠나는 마지막 시간이 씁쓸한 상술로 얼룩지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을 거론하는 것이 불편하고 꺼려진다 하더라도 나의 장례식은 어떻게 치러지면 좋을지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과 함께 미리 의견을 나눠야 하는 이유다.

죽음에 대한 인식이 공론화되면서 삶에서 마지막 성숙의 기회라는 죽음을 맞이하는 풍경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 중 보도를 통해 알려진 몇 가지 아름다운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출처: 2013년 7월 3일 한겨레 , 2016년 7월 18일 MBC 시사매거진 2580)

 

“남사당과 국악으로 어머님을 위한 추모 공연”

서울의 한 게스트하우스 외벽에는 나이 지긋한 여인의 사진이 담긴 대형 현수막이 걸리고 집 앞 골목에는 조등이 걸렸다.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낯선 병원에서 모시고 싶지 않았던 집주인 아들이 소박하고 작은 장례식을 기획했고, 조문객들은 앞마당과 게스트 하우스 객실에서 고인에 대한 기억을 나눴다.

아들은 장례식을 아낀 비용으로 남사당과 국악하는 분들을 모셔 어머니를 위한 추모 공연도 준비할 수 있었다며 장례를 직접 준비하면서 어머니를 떠나보낸 슬픔을 주변 사람들과 진정으로 나눌 수 있었다고 말한다.

 

“궂은 날씨에도 제 장례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비오는 날, 한 남성의 장례를 마치고 조문객들과 함께 화장장으로 가는 버스 길. 슬픔에 잠긴 사람들이 고인을 추억하는 상념에 빠져들 무렵, 경쾌한 음악과 함께 버스의 모니터에 고인의 환한 생전 모습이 비치고 고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궂은 날씨에 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비록 저는 먼저 다른 곳으로 가지만 사는 내내 아름다운 동행이었습니다.”

고인은 생전에 본인이 겪은 멋진 경험과 좋았던 주위 사람들을 언급하며 화장장까지 마치 하객들과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장례버스에 동행했다. 고인이 준비한 영상 덕분에 조문객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그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귀신같이 본인 장례 때 비가 올 것을 예상했을까? 고인은 궂은 날씨용, 화창한 날씨용 등 다양한 버전의 인사말이 담긴 영상을 준비했다고 한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오히려 남은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장례식장에 빨간 장미꽃과 탱고 음악을!”

헤어디자이너 그레이스 리는 평소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나 죽으면 장례식장에 하얀 꽃 꽂고 질질 울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핑크와 빨강 장미꽃으로 장식해줘. 올 때는 제일 멋진 옷으로 예쁘게 꾸며 입고 와. 제사는 말고 내 생일날 집에 다들 모여 맛있는 음식 차려놓고 와인 한잔 마시면서 지내. 탱고를 춰준다면 얼마나 멋있겠니.”

향년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은 그녀의 당부대로 아름다운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가족들과 제자들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분홍과 빨간 장미로 영정 주변을 장식했으며 재즈풍의 찬송가를 틀었다. 조문객들은 자신이 가진 옷 중 가장 멋있는 옷을 입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마치 아름다운 파티가 열린 것 같은 풍경에 주위 사람들이 구경을 왔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그레이스 리는 그녀의 제자들과 자녀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스승이자 아티스트로 추모를 받으며 아름다운 생을 마감했다.

 

 

“어느 집이나 제사를 치르는 며느리의 노고가 크다.”

케이에스에스(KSS)해운의 창업자 박종규 전 회장의 사례도 시사 하는 바가 크다.

박 전 회장은 “사람 사는 데 필요한 토지도 모자라는데 죽은 사람이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것은 후손들에게 큰 폐”라며 “내가 행복하게 산 것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컸기 때문이다. 많은 불행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내 몸 하나 바치는 것은 아깝지 않다. 장기 기증을 하고 남은 유골은 해양장을 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또한 제사를 지내지 말고 본인 기일에는 각자 집에서 사진과 꽃 한 송이를 두고 묵념추도만 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제사를 준비하는 며느리의 노고를 배려한 유언이었다.

 

 

어쩌면 잘 살았다는 것은 남은 이들 기억의 몫일 것이다. 앞선 사례들이 사회의 귀감이 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의 유언과 장례식을 아름답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긴 여정을 마친 후 마지막 정리의 순간, 남겨진 사람들에게 더 오랫동안 기억될 이 의식을 건강한 지금 스스로 기획하고, 가족과 미리 상의하여 준비한다면 보다 의미 있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