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는 지천명의 나이엔 시간의 여유로움이 생긴다.

또한 서로 만나자는 모임도 늘어난다. 귀한 시간을 짬 내 모이는데 식사만 하고 헤어지기란 못내 아쉽다. 그럴 때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을 찾는다면 그 만남은 문화와 더불어 추억을 소유하게 된다. 대학로에는 소극장이 밀집되어 있다. 밤이야 젊은이들이 차지하지만, 이른 오후 시간은 극장 안이 한산해서 여유롭게 연극을 관람할 수 있다.

 연극은 영화와 다르게 넓은 공간이 아닌 좁은 공간이다. 어떤 면에서는 도란거리며 이야기하던 사랑방 같다고 느끼게 한다. .공간 이동이 광범위한 영화와 달리 소품이나 무대 장치 외에 철저하게 사람 비중이 큰 배우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배우의 역할이 중요하며,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사를 통해 관객에게 주제가 바로 전달된다. 바로 앞에 배우가 있어 감정이입이 빨라 일상에서 굳어진 감성이 쉽게 되살아난다. 이른 봄비 내리듯 촉촉한 감성이 깨어나 새로운 에너지가 생겨난다. 또한 어느 장면에서는 자신이 무대에 선 배우라는 착각도 일으킨다. 그건 매우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연극은 우리네 삶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소재로 다루고 있어 공감할 수 있다. 공연이 끝난 후 꿀팁이 있는데 그건 출연진들과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다.

 여가 생활의 하나로 연극 관람도 좋지만, 이왕이면 무대의 주인이 직접 되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요즘 시니어들의 연극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연극 동아리 모집을 통해 활동하는 사람도 있지만, 소규모 사회 복지센터나 평생교육원이나 문화원 안에 연극반이 운영된다. 오후엔 직장인 연극반도 있다. 인터넷 검색이나 여러 다양한 기관의 강좌 광고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미 여가로 시작한 연극반 동아리들은 주기적으로 공연을 한다. 누구나 처음에는 경험이 없는 초보가 어찌 연기가 가능하겠냐고 망설이겠지만, 우린 삶이란 무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미 배우나 다름없다고 본다.

 한 시니어가 떠오른다. 김 여사는 참 다소곳하고 얌전한 모습을 지닌 아담하신 분이다. 젊은 시절에 가부장적인 환경에 억눌려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건 그녀가 살아온 시대의 흐름으로도 볼 수도 있으나, 억눌린 감정은 마음에 자국을 남긴다. 자기 표출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소유한 것이 많다고 한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모임에서 간 연극 공연을 보면서 자신도 마음껏 표출하고 싶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보다 ‘나도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의 삶 속에서 응어리진 내면이 돌파구를 찾은 거였다. 첫 출발지는 지역 사회복지관에서 모집하는 연극반이었다. 첫날부터 가슴이 풍선껌처럼 부풀었다.

 주어진 대본은 이미 알고 있는 구전되어 오는 이야깃거리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내용이라서 어렵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감이 생겨났다. 처음에야 엑스트라나 몇 줄 안 되는 대사의 조연을 하게 되었을 때도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 집에서는 벽면에 걸린 거울을 보며 표정 연기를 연습하는 여유를 부리며 그녀는 연극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감정이 표출되면서 무표정이었던 얼굴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되어 무대의 중심에 섰을 때 성취감으로 희열도 맛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흐뭇한 순간은 마주한 관객들이 자신과 호흡을 함께 한다는 걸 느꼈을 때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희로애락의 바이러스가 되어 전파하게 된 거였다. 이제 대사를 자기화하며 창의적 연기까지 한다. 그녀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본래의 모습을 회복했으며 그 결과로 여유와 행복은 덤으로 얻은 것이다.

 만약에 김 여사가 예전처럼 의기소침하며 억눌린 감정에 머물렀다면, 과연 지금 긍정의 모습이었을까? 라고 질문을 할 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다.

 늦은 도전이라 생각했던 그 시점이 결코 늦은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 준다. 무대에서 관객을 향하기 때문에 관객과 밀접한 소통을 경험하고, 또한 관객은 감정이 이입됨에 따라 흡수력으로 인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그건 또한 서로 간 치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삶이라는 무대의 유일한 주인공이며, 누구나 연극배우가 될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표정과 몸짓을 하는가에 따라 주변이 움직이는 주인공, 여가 생활로 연극에 도전해 볼 만하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무대의 중심에서 연기한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보람된 여가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