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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아카데미 현장답사 2

■ 로로로 (물길아카데미

일시 : 2021427일 오후 2~4 
장소 :옥류동천 물길 (만나는 장소: 수성계곡 기린교 앞)
■ 코스 : 수성계곡에서  안평대군을 만나고 윤동주하숙집을 거쳐 조선의 아방궁 덕수산장과 부속건물인  박노수 미술관 통인시장 물길 합류점            을  지나 이상 가옥과  우리은행 4거리를 지나면서 백운동천 물길과 합류하여 개천을 향해 나아가는 물길


  옥류동과 인왕동의 이름을 합하여 옥인동이라는 행정지명을 가진 공간

 

     웃대로 칭하는 조선시대 공간에서 만나는 인물

 

   - 아버지 세종의 부탁 , "오직 한 사람만 섬겨라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 너무도 똑똑하고 잘난 아들에게 형 문종만을 보필하라며 내린  시경의 글귀 " 숙야비해이사일인" 에서 따온 비해당의 당호  세종의 당부와 달리 순탄하지 못하고 36의 나이에 정권의 희생양이 되고 만 안평대군

  무릉도원을 꿈꾸며 살아가고자 했던 부암동의 무계정사의 각자 바위 등의 이야기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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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성계곡 기린교앞, 비해당과 안평대군을 말하다>           <가재우물앞, 권력을 갖는자 우물을 갖는다>

 

- 조선의 아방궁 덕수산장

일제강점기 옥인동 면적의 54%이상을 소유했던 조선인 윤덕영

 

조선의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인 윤덕영   조카인 순정효황후 한일병합을 막고자 치마속에 옥새를 숨기고 저항하였으나 이마저 겁박을 통해 빼앗아 식민지화에 일조한 윤덕영 조선의 식민지화 일조의 공으로 자작과 은사금 5만냥을 챙긴 인물 

지금의 서촌 부지수성동  계곡인왕산  자락까지 모두 다 윤덕영의 집터였으며 아직도 그 곳에는 당시의 석재와  안채의 건물 일부가 남아있다.

벽수산장은 규모 뿐 아니라 뱃놀이를 위해 200평 넓이의  연못까지 조성하였으나 당시 집중호우로 이  연못의 둑이 터져 그 아래 초가집들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당시 <동아일보 >기사 내용


"연못이 어느 해인지 장마통에 터져서 앞 동네 초가집들이 물벼락을 맞았는데 손해는 대궐 안에서 물어주셨답니다 그러기에 충심이 그리 갸륵하지요 ."(동아일보  1924.7.21)

집 안에는  능금나무 , 자연숲한옥  99하천 이 있는 총 "2만평"의 대저택 

일제강점기 에 살았던 백성들의   눈물 로 만들어진 곳당시 동아일보 기사 내용

세상 사람이  아방궁 이라 부르는 그 집.  세상 사람들이  아방궁 보다도  아방궁을 짓는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 까닭을 더 이상하게 생각한다바로 이 벽수산장이다. (1921년 동아일보 기사 내용)

 

윤덕영은 대저택을 짓고도 그곳에서 살지 못했다. 관리의 어려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벽수산장 뒤쪽에 따로 마련한 가옥에 살면서 홍만자회 조선지부에게 벽수산장을 임대하였다. 윤덕영이 죽고 난 후, 벽수산장은 아들의 양자 윤강로에게 상속되었다윤강로는 상속 1년 만에 벽수산장을 미쓰이 광산 주식회사에 매각했다. 그러나 4년 뒤 바로 해방을 맞이하면서 벽수산장은 덕수 병원에 넘어가고 만다. 한국 전쟁 때에는 미 8군 장교 숙소로 사용되었다. 19546월부터는 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의 본부로 쓰였으나 1966년 발생한 화재로 인해 본부는 이전된 후 1973년 도로정비 사업으로 벽수산장은 철거된다

 

조선 위항문학의 중심지 '송석원 시사'

 

정조때 인왕산 주변에 살던 중인 천수경, 장혼 등이 매월 모여 시를 지으면 즐겼던 공간 송석원

천수경의 집터 송석원 김수항, 민태호를 거쳐 윤덕영 소유가 되면서  위항문학의 꿈도 사라져 버린 곳  

 장혼의 이이엄집 ' 평생 소망'을 통해 그들의 꿈을 만나본다

 

"홀로 있을 때는 낡은 거문고를 어루만지고 오래된 책을 펼쳐 보며 한가롭게 할 뿐이다. 생각나면 나가 산길을 걸을 뿐이고 손님이 오면 술을 내와 시를 읊을 뿐이다. 흥이 오르면 휘파람을 불며 노래를 부를 뿐이며 배가 고프면 내 밥을 먹을 뿐이고 목이 마르면 내 우물의 물을 마실 뿐이다. 춥거나 더우면 내 옷을 입을 뿐이고 해가 저물면 내 집에서 쉴 뿐이다. 비 내리는 아침, 눈 오는 한낮, 저물녘의 노을, 새벽의 달빛, 그윽한 집의 운치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기 어렵다. 말해준들 사람들은 또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날마다 스스로 즐기다가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내 평생의 바람이다. 이와 같이 살다가 마칠 뿐이지."

 

- 일제의 침탈에 저항하는 인물들을 만나다. 

 윤동주하숙집, 이상의 집등의 다양한 이야기도 만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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