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커뮤니티
커뮤니티 게시판

종로통 수필로

맹구우목(盲龜遇木) 

 지난 해 6, 자서전과 수필쓰기에 대한 배움의 장이 열렸다. 종로3가역 부근 도심권 50+센터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선뜻 지원을 했고 십여 명과 함께 십 수회 특강을 받았다. 수필에 대한 핵심적인 이론을 배우면서 이해도를 높이고, 체계화 시킬 수 있는 현장이었다. 기대한 강의를 듣게 되면서 많은 부분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고, 글 쓰는 매력에도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을까? 특강이 끝난 후 수필에 대한 열망이 강한 8명이 중심이 되어 의기투합했다. 소수정예 인원으로 커뮤니티를 결성, 20198월부터 본격적인 이론공부를 시작했고, 100여일이 지날 무렵 종로통 수필로란 책명으로 동인지 발간까지 계획하게 되었다. 함께 공부를 하면서 각자 소재를 발굴하고 주제에 대한 사유, 이를 문학적으로 표현하면서 참 나를 찾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누가 꽃을 싫어하랴? 계절마다 피어나는 형형색색의 꽃은 언제 봐도 좋지 않은가? “사람이 꽃이다는 표현이 참으로 맞는듯했다. 나는 코스모스와 들국화를 좋아한다. 물론 색 다른 느낌을 주는 백일홍도 좋아한다. 붉은색, 흰색, 보라색을 화사하게 피우는 키 작은 나무 꽃과 풀꽃 백일홍이다. 이 두 꽃은 국화과의 한해살이로 색깔 자체를 다양하게 피우는 식물이다. 나무 꽃이나 풀꽃 모두 통상 6~7월에 피어서 긴 무더위를 이겨내고, 10월까지 100여 일 동안 자태를 뽐내게 된다. 마침 종로통 수필로의 커뮤니티를 시작할 무렵 백일홍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후 비바람과 무더위를 견뎌내고 다양한 색깔에다 은은한 향기까지 뿜어내며 그 의미를 새롭게 했다.

 100, 응애 하는 힘찬 울음과 함께 태어나고 시간이 지나면 이를 기념하는 것. 탄생의 기쁨을 음미하면서 건강하게 자라도록 기원하는 것. 이는 탄생과 모성의 위대함을 가족과 이웃이 축하하고 기뻐하는 좋은 전통이 아닌가? 축복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흰밥, 미역국, 백설기, 인절미까지 차려 장수를 기원해 주기까지 하니 멋지지 아니한가? 갓 태어나 미숙한 상태에서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창창한 앞날을 그리도록 축복하는 것. 그 의미가 마침 종로통 수필로커뮤니티 출범동인지 발간 계획으로까지 투영이 되면서 수필의 깊이가 깊어지게 되었다.

 이후 진행은 순조로웠다. 매 주 한차례씩 모여서 각자 창작한 수필 한 편씩을 발표했다. 구성원들의 작품 발표를 직접 들으면서 나름의 견해로 평가하는 것. 이렇게 합평을 하면서 적절한 표현과 어색한 부분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분위기 또한 사뭇 진지했다. 서로서로의 생각을 편안하게 교환할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이해의 폭을 한층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어느새 2년여가 훌쩍 지나갔고 발표한 작품들도 제법 쌓이게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의미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평소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고 습작을 취미로 했던 나도 다른 일정에 우선하여 기꺼이 동참을 했고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혼자만의 한계 극복이랄까, 돌이켜보면 이 과정에 참여하게 되면서 많은 궁금증과 갈증을 풀 수 있었다. 발전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다행히 함께 하는 이들도 열의가 있었기에 효과가 배가되었으리라. 과거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크고 작은 역할을 했던 사람들. 다시 제2, 3의 인생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면서 글을 쓰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았다. 무엇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자기만의 글을 쓰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남같이 않아 보였다. 삼삼오오 부담 없이 토의하고 생각을 나누면서 다양한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 각자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개성 있게 소화를 시키고, 합평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발전의 과정으로 삼을 수 있었다.

 한편의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과정에서 중간 평가를 통해 돌아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신나는 일이었다. 글의 깊이를 깊게 음미吟味할 수 있었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커뮤니티를 통한 변화의 결과로 계속 이어질 수 있으리라. 마침 변화하는 과정에서 향기가 묻어났다. 사실 세월이 흐를수록 새로운 인연을 맺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 아닌가? 시작 단계에서 향기 머금은 만남이라 할지라도 작은 일로 비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견해가 엇갈리기라도 하면 마치 지독하게 아픈 첫사랑의 헤어짐처럼 긴 생채기가 날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생각들이 순수했고 동병상련이었다.

 한 편의 작품 발표를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나도 늦은 밤까지 정성을 들여 다듬기를 반복했다. 완성된 작품을 가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일행을 만나는 날, 안부를 묻고 진지한 분위기로 견해를 나누다 보면 항상 시간이 짧았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바로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겨 간단한 저녁을 함께했다. 소박한 장소, 주로 시장 골목식당이나 간단한 호프집에서였다. 물론 그곳에서 주된 안주는 연장 토의였다.

 가끔 찾는 곳, 서촌시장의 닭갈비 식당은 적당하게 붐비는 곳이다. 서민적 분위기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소맥이나 막걸리 한두 잔을 할 수 있는 장소다. 그 날 역시 원탁에 앉아 진지한 토론을 주고받았는데 불현 듯 사자성어가 뇌리를 스쳤다. 맹구우목. 주로 태평양과 같은 깊은 바다에서 헤엄치는 눈 먼 거북이 얘기다. 그가 하루에 한 번씩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솟아올라, 수면으로 목을 내미는 순간, 마침 파도에 떠다니던 널빤지의 송진구멍에 목이 끼이는 장면. 정말 희박한 확률이다. 결코 만나기가 쉽지 않은 귀한 인연을 표현할 때 주로 쓰는 사자성어가 아닌가?

 “종로통 수필로구성원, 처음 만나자 마자 의미 있는 100여일을 함께하며 커뮤니티를 만들지 않았던가? 그리고 해를 넘겼고 또 한 해를 넘기고 있다. 앞으로도 열 번, 백 번 세월의 깊이만큼 계속 발전이 될 것으로 믿고 싶다. 물론 만남의 깊이만큼 수필의 무게가 무거워 지기를 바라는 염원이다. 솔직한 믿음이다.

 뜻이 있다면 길이 있다고 했다. 이는 나 혼자만이 생각은 아닐 것이다. 키보드를 두드리다 슬며시 눈을 감아본다. 턱을 괴며 생각에 잠긴다. (2020. 1)

 

전체댓글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