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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행복 아니겠는가.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저절로 된 그대로의 상태가 자연일 진데 산이나 강, 계곡이나 나무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산은 크고 작은 계곡이나 수많은 종류의 나무를 품은 채, 특정한 곳에서 일정하게 자리를 잡고 있지 않은가. 그런 가운데 오고 가는 수많은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마음을 꿰뚫어 보면서도, 차별 않고 평등하게 대해 주기까지 하니 되도록 가까이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수도 서울에서 자연경관도 빼어나고 우리에게 휴식 공간까지 제공해 주고 있는 남산(南山)은 명산이다. 그야말로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숱한 흥망성쇠를 지켜보지 않았겠는가. 누구나 자연스럽게 그 위상을 느낄 수 있는 산, 불과 236.7m 높이의 이곳에 오르게 되면 대한민국의 수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동, , 북쪽에 위치한 낙산과 인왕산, 북악산과 더불어 서울의 중앙부를 온화하게 둘러싸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돌이켜보면 남산에 가끔 오를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동안 가벼운 운동이나 머리를 식혀야겠다는 생각이었지, 남산에 대한 역사성이나 깊숙한 내면까지를 생각하지 않고 올랐던 것이 사실이다. 딱히 봉수대를 비롯한 팔각정, 한옥 마을 등 특정 지역 위주의 걸음마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해설이 있는 도보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알면 보이게 되고 모르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 이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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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고 아는 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나 할까. 이번 기회에 자연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질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해설이 있는 도보여행을 통해, 역사와 문화공간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현장을 느끼게 된 것이다. 답사 현장은 묵사동천’.

 

서울시도심권50플러스센터 내 공유사무실에 입주하여, ‘두발로 역사로 문화로라는 슬로건 구현을 위해, 평소 역사를 품은 길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워 주고 있는 문화해설사 도경재 씨. 그는 로로로협동조합을 운영하는 이사장 겸 문화해설사로서, 이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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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의미가 있는 답사의 출발을 위해, 만남의 장소는 지하철 동대입구역 6번 출구. 흔히 대중가요 가사로 널리 알려진 안개 낀 장충단 공원입구의 정자였다. 그러나 장충단은 우리에게 대중가요 가사의 의미를 뛰어넘어 정말 예사롭지 않은 장소가 아니었던가. 실로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로 신성시되던 장소가 장충단아니었던가.

 

모두가 잘 알다시피 이곳 일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현충원 시설이 있었던 중요한 장소였다. 하지만 야만 국가 일제가 한반도를 침탈하고 신성한 현충원을 일개 공원으로 격하시킨 후, 이곳에 수만 그루의 벚꽃을 심었던 사실을 상기하며 주먹을 불끈 쥐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일제의 못된 만행은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시키고자 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10여 명의 일행들 역시 도경재 문화해설사의 깊고 폭넓은 설명을 들으면서 일제의 만행을 곱씹으며, 예나 지금이나 나라가 힘이 있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상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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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남산에서 발원해 청계천으로 흘러들던 물길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널리 잘 알려지지 않은 기념탑이 나타났다. 한국유림독립운동 파리장서 기념비. 문화해설사로부터 당시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해도를 높인 가운데 다시 이준 열사 동상, 순국열사 이한응 기념비를 거쳐, 특히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던 독립유공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기념비 앞에 다다랐다. 그는 한글 가로쓰기를 정립한 한글학자가 아닌가. 전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우리 한글이 있기까지, 수많은 노력의 뒷받침이 있었음을 상기하며 일행과 함께 새삼 경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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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석호정 옛 활터를 확인하고, 이전한 현재의 장소에서 국궁의 요람 역할을 하는 석호정을 답사하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모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방의 경치를 눈에 담은 다음, 남산 둘레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대략 10여 분을 걸었을까, 길을 걸으면서 드디어 바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묵사동천의 시작점을 만났다. 물길 곁에 서서 멀리 바라보면 서울을 빙 에워싸듯 자리한 강북 5, 마치 구름을 머리 위에 얹은 모습으로 가을 산의 운치를 자랑하는 불수사도북(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을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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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아름다움과 남산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아래로 흘러내리는 묵사동천 물길을 따라 걷는 길에 풍양 조씨의 세거지에서 노인정 터를 확인하였고 먹절골과 필동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서애 류성룡 집터를 만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이었던 류성룡. 그는 이순신과 권율을 적극 추천하여 풍전등화의 나라를 구할 수 있도록 한 장본인이 아닌가. 그런 위대한 인물의 생가가 보존되지 못하고 집터만 남았다는 사실이 다소 아쉬웠다. 묵사동천이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지점 인근에 조선시대 화약을 제조하던 염초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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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트한 서울 생활에서 지치기라도 할 때 찾게 되면, 마치 어머니 품속같이 아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남산. 이곳을 찾아 문화해설사와 동행하며 길 이야기를 통해, 역사 인식을 재고하고 자연을 바라보는 눈을 한 차원 높게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준 서울시도심권50플러스센터의 세밀한 기획력에 일행 모두가 경의를 표하면서 박수를 치고 발길을 돌렸다.

 

 

50+시민기자단 추대식 기자 (choopr4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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