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잘생긴 곳을 찾아, 해설을 들으며 걷는 여행

-

덕수궁 돌담길에 남아있는

치욕, 사랑, 역사, 이별 그리고 추억

-

 

5월의 마지막 일요일, 벌써 이렇게 더워도 되나 싶은 날씨였다. 하지만 그 덕인지 덕수궁 돌담길 도보여행 길은 신청자에 비해 참석자는 단출했다.

「해설이 있는 도보여행 - 덕수궁 돌담길」은 서울의 잘생긴 모습을 전문가의 안내와 해설을 들으며 함께 느껴볼 수 있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서울에 있는 다섯 개 고궁 중에 덕수궁은 특별한 부분이 있다. 덕수궁은 궁 안에만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궁 밖에도 역사와 이야깃거리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 가봄직 했을 덕수궁 돌담길을 또 찾게 되는 이유도 그 얘기들이 들려주는 울림과 잔상이 안팎으로 오래 남아있기 때문이다. 
시청역 3번 출구에서 오후 2시부터 시작된 두 시간의 도보여행 여정은 하선화 전문해설사가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재미있게 풀어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나갔다.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 오른편 길을 따라 영국대사관 방향으로 덕수궁 도보 여행은 시작됐다.

돌담 맞은편에는 지은 지 100년이 훨씬 넘는 성공회서울 주교좌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덕수궁돌담길은 근현대사 박물관 관람로

덕수궁 돌담길에 들어서면 100년을 훌쩍 넘거나 100년이 다 돼가는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그 건물들은 저마다 사연을 간직하고 있으며 오늘날엔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이쯤 되면 덕수궁 돌담길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볼 수 있는 야외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덕수궁 도보여행의 첫 방문지는 성공회 성당이다. 구한말부터 지금까지 100여 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역사를 기억하고 증언하고 있다.

성당의 뒤편에는 성공회 주교의 이름을 따온 유서 깊은 세실극장도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성공회 성당에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파이프 오르간도 설치되어 있다.
이 성당이 우리에게 주목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성당 뒤쪽 덕수궁 양이재(구한말 황족 교육)

전담기관) 부근이 80년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을 촉발시킨 「유월 민주항쟁 진원지」이기 때문 이다.

 

▲전문 해설사로부터 1986년 유월 민주항쟁 진원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뒤편에 유월 민주항쟁 진원지를 나타내는 표지석이 보인다. 


성공회 성당을 뒤로 돌아가면 영국대사관 정문 옆으로 조그마한 기와문과 마주치게 된다.

영국 대사관(영국 땅)을 통과할 수 없어 덕수궁 돌담길은 기와문을 통해 우회해야 한다.

덕수궁 내부 길을 통해 돌담길을 오른편에 두고 70여 미터를 걸어가면 다시금 돌담길로 이어진다.

 

  

▲다시 이어진 돌담길. 영국을 상징하는 문양 뒤편 붉은 색 영국대사관도 100년 넘은 건물.

시원하게 연결된 덕수궁 돌담길을 서울시는 영국대사관으로부터 돌려받아 시민들에게 돌려 주었다.

 


치욕의 공간 「고종의 길」

 영국대사관 후문으로부터 100여 미터 가량 시원하게 뻗은 돌담길을 걷다보면

1896년에 있었던 아관망명(러시아공사관으로 고종이 옮긴 이른바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지나갔던 길로 전해지는「고종의 길」과 만난다.

일본의 눈을 피해 왕세자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가면서 고종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동안 거처였던 경복궁의 건천궁을 출발해서 이곳에 오기까지 거리상으로는 그렇게 먼 길은 아니지만,

마음으로는 상당히 멀게 느꼈을 당시 고종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고종의 길」처럼 우리에게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은 또 있다.

정동 로타리에서 정동극장으로 가는 길을 따라 50여 미터를 가면 오른편에 덕수궁 「중명전」이 있다.

이곳 「중명전」은 1905년 일본이 강제로 우리나라 외교권을 빼앗은 을사늑약이 있었던 역사의 현장 이다.

그곳까지 일본의 수뇌들이 마차를 타고 득의양양하게 들어왔을 주변의 길 또한 우리에게는 아픈 기억이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 날조했던 「조선사편수회」도 덕수궁 돌담길에 있는 서울 시청 서소문별관 부근(구 대검찰청 청사자리)에 있었다.

 

  

 ▲구 러시아공사관으로 연결되는 고종의 길                               ▲을사늑약의 현장 중명전         
 

 

사랑의 공간 영성문 언덕길

덕수궁 돌담길 중 가장 길게 뻗어있는 길은 연인들이 즐겨 찾던 영성문 언덕길이다.

영성문 언덕길은 덕수궁 석조전 뒤 돌담길과 미국대사관저(하비브 하우스) 사이의 언덕길로, 그 길은 신문로 입구까지 뻗어있다.

지금은 차량이 통행하지만 과거에는 언덕길 한복판에 커다란 나무가 심어져있었고, 길 양편으로도 나무들이 울창해 터널 모양을 이루었다고 한다.

남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연인들이 자주 찾았던 장소였다. 

이 길은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에도 등장하는데, 젊은 연인들이 찾는 사랑의 언덕길로 묘사되고 있다.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인 영성문 언덕길

 

 

살아있는 역사 공간 정동 로타리 주변

 영성문 언덕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정동 로타리에 이르는데, 그 주변에도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 공간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최초의 감리교회인 정동교회가 있고, 법원이 있던 자리에는 서울 시립미술관이 있으며,

우리나라 근대교육이 시작된 배재학당 역사 박물관과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등의 건물이 이어진다.

대부분 10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물들이다.

서울 시립미술관 부근에는 최초의 근대식 공립교육기관이었던 육영공원과 독일영사관  그리고, 독립신문사도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 앞에서 근현대사 현장에 대한 해설을 듣고 있다.

 


이별의 공간 정동길

덕수궁 돌담길은 연인들과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 이유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대략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시립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는 자리는 과거에 가정법원이 있던 곳인데, 가정법원은 남녀 간의 이혼문제를 다뤘던 법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가정법원도 그 자리에 없으니 연인들이 헤어진다는 것도 설득력을 잃었다. 
또 하나는 학생들이 등교하다가 정동 로타리에 이르면 남학생은 배재학교 방향으로, 여학생은  이화학교 방향으로 헤어진다는 것 때문이었다.

배재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했기 때문에 그 말도 이제는 틀리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덕수궁 돌담길은 연인들이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함께 연인들이 걸으면 안 된다는 핑곗거리가 완전하게 없어졌으니 이제 연인들은 안심하고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어도 된다.

 

  

▲덕수궁 돌담길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가지 조형물들

 

 

덕수궁 돌담길은 추억의 공간

덕수궁 도보여행팀의 여정은 성공회 성당을 출발해서 영국대사관 옆 덕수궁 내부 길을 지나 58년 만에 개방된 돌담길을 지나 고종의 길 입구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영성문 언덕길을 내려와 정동 로타리에서 근현대사 현장들을 둘러보았다. 


 

    ▲정동전망대에서 바라본 덕수궁 내부 모습


마지막 도착지는 덕수궁 내부가 한눈에 보이는 정동 전망대였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덕수궁 내부 전각들도 제각기 역사를 품고 있다.

덕수궁 도보여행팀은 덕수궁 돌담 안팎이 말없이 전해주는 분명한 사연을 공감하고 있었다.
은평구에 사는 정○○씨(남)는 이날 덕수궁 도보여행과 함께 서울시도심권50플러스센터의 해설이 있는 도보여행 4코스를 모두 돌아보았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니 아는 것만큼 보였고, 특히 역사와 관련된 답답했던 부분을 풀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한다. 
광진구에서 지인과 함께 온 정○○씨(여)도 “처음 참여했지만, 도보여행이 주는 맛과 멋을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자주 기회를 갖고 싶다”고 하였다.

 

여름이 바짝 다가온 길목에서 함께한 덕수궁 도보여행팀 7인에게 덕수궁 돌담길은 이제 추억의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함께 추억을 쌓으며 닮아가는「해설이 있는 도보여행」은 덕수궁 돌담길 외에도 돈의문 박물관 마을, 봉제 역사관, 세운상가 탐방 등

다양한 코스에서  매주 토요일, 일요일 오후에 진행되고 있다.

가족, 지인들과 이번 주말에는 「해설이 있는 도보 여행」을 다녀오자. 함께 하는 시간은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