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피움 봉제역사관 가는 길에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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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박수근, 백낙준, 전태일, 김광석 그리고 창신동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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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창신동에는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이 있다.

창신동이 우리나라 봉제산업의 일 번지임을 짐작하게끔 하는 도심 속 문화역사 공간이다.

이음피움은 서로를 잇는다는 「이음」과, 피어난다는 뜻의 「피움」을 합친 말이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봉제 산업 역사와 물품들을 한눈에 볼 수가 있다. 또, 봉제와 관련된 일련의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도 있다.
여름과 가을이 만나던 9월 둘째 토요일, 「해설이 있는 도보여행」팀 10명은 창신동 봉제역사관을 찾았다.

그리고 가는 길에 창신동의 과거와 현재를 살고 있는 여러 사람과 반갑게 만났다.

    


도보여행 출발점인 동대문역. 멀리 보이는 건물이 흥인지문이다.

 


■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의 흔적

 

일제 강점기 시절, 동대문역 6번 출구 근처인 창신동 487번지에 영덕철물점이 있었다.

이곳은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가 경영하던 가게다.

김상옥 의사는 경제적인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물산 장려운동 등 국산품 애용에 앞장섰던 분이다.

특히 1923년에는 의열단원으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며 독립운동의 의지를 불태웠다.

종로경찰서는 당시 일본이 조선인을 탄압했던 상징적인 장소다. 그의 정신을 기리는 동상은 창신동에서 멀지 않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내에 있다.


                       

동대문역 6번 출구. 김상옥 의사의 「영덕철물점」이 근처에 있었다.

 

 

■ 뚝섬까지 운행하던 경성궤도열차가 지나던 길

 

동대문역 7번 출구 부근에는 뚝섬과 광나루까지 운행하던 옛 경성궤도전차의 시발점이 있다.

협궤전차로 물자 및 승객을 수송하고 교외 나들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이 전차는 도시의 인분을 처리하기 위한 수송수단으로도 활용됐다.

지금은 당시 궤도전차가 지나다니던 노선 폭만큼의 길 양쪽으로 상권이 조밀하게 형성되어 있다. 

 

 

                                        궤도전차의 폭만 한 길 양옆으로 상권이 형성됐다.                                                   올해로 63년 된 동신교회 모습
                

전차의 궤도를 따라 걷다 보면 가수 윤형주의 결혼식이 열려 화제를 모았고, 

또, 사랑의 쌀통을 운영해서 관심을 받았던 동신교회에 이른다.

경성궤도전차는 1930년 운행이 시작되어 1961년 운영을 맡아온 서울시에 의해 폐선됐다. 

 


■ 대표적인 서민 화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박수근길

 

궤도열차의 궤적을 따라 수족관 거리, 문구 거리를 지나고 나면 화가 박수근을 기리는 박수근길 주변을 걷게 된다.

그에게는 국민화가, 서민 화가 등의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그의 작품은 호당 단가가 수억대를 호가한 바 있고, 그의 작품 「빨래터」는 경매에서 45억2천만 원에 낙찰되면서 국내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박수근 화가 창신동 집터 표지                                                                박수근 화가 작품이 묘사된 벽면

 

 

■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기리는 백남준 길

 

창신동에는 예술가를 기리는 또 다른 길이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로 불리고 있는 백남준을 위한 백남준 길이다.

그의 흔적을 보존하고 그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관도 마련되어 있다.

그곳은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으로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백남준의 체취를 느낀다. 
   

 
백남준 기념관 방문을 기념하며                                                              기념관 내부 백남준이 사용한 흔적들

 

 

■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창신동 사람들 

 

백남준 기념관을 지나 창신동 봉제역사관을 찾아가는 길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좁은 골목길을, 때로는 높은 언덕길을 오르내리면서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창신동 사람들의 모습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봉제 산업의 일 번지답게 많은 사업장이 전개되고, 각 사업장은 제각기 전문적인 일을 분담하는 모습이다.

특히 각자가 분담하는 구조 속에서 이들을 연결해 주고 공정을 이어주는 오토바이들의 우렁찬 질주는

회오리치듯 굽어진 길에도 아랑곳없이 그 역동성을 뽐내고 있다. 

 

 

주차된 오토바이가 많은 모습이 이채롭다.                                                      굽은 길이 많은 속칭 회오리 길

 

 

■ 노래하는 철학자 김광석의 발자취가 있는 곳

 

창신동에서, 노래하는 철학자로 알려진 가수 김광석이 살았다.

김광석은 노찾사, 동물원의 보컬 등으로 활동하다가 통기타 가수로 그 이름을 날린 바 있다. 

 


가수 김광석이 꿈을 키우던 창신동 옛집

 

서른 즈음에, 사랑이라는 이유로, 광야에서 등 주옥같은 노래를 남기고 떠난 그의 발자취를 느끼면서

더 이상 가까이할 수 없는 그의 해맑게 웃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 노동운동가 전태일을 만날 수 있는 전태일 재단

 

전태일은 서울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고 있었다.

1970년 열악한 노동환경의 개선을 위해 분신을 통해 저항했던 그는 노동 운동가로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를 기억하기 위한 재단이 생기면서 봉제역사관을 찾아가는 도보여행단은 전태일 운동가를 만날 수 있었다.

청계천 22개 다리 중 동대문에 가까운 버드나무 다리 위에 그의 동상이 있다. 

 

전태일재단이 전하는 전태일 열사의 정신

 

 

■ 이음으로 소통되는 봉제역사관에서

 

전태일재단을 경유해서 마침내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에 도착했다.

서대문구에 사는 김태호 씨는 “평소에 많이 들어본 장소라 꼭 한번 오고 싶었다”면서

“봉제역사뿐만 아니라 창신동 일대 몰랐던 얘기들을 보고 들을 수 있어서 참가한 보람이 있었다.”고 한다. 
관악구에 사는 윤민정 씨도 “아는 것만큼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효자 노릇을 했던 봉제산업에 아련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역사관 방문은 또 다른 추억거리를 남겨줄 수 있다.

특히 자녀들과 함께하는 자리라면 더 보람이 있을 것이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에서 봉제와 관련된 볼거리도 많이 보고, 해볼 거리도 많이 해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 같다.

 

 

봉제역사관 내부모습                                                                        다양한 재봉틀의 모습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