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 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

짧은 셔츠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소금 땀 비지 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저 하늘엔 별들이 밤새 빛나고 

찬바람 소슬바람 산 너머 부는 바람

간밤에 편지 한 장 적어 실어 보내고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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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가 수록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 표지.
 

 

암울한 노동 현실을 아름다운 가사와 구슬픈 멜로디로 엮어서 국민의 사랑을 크게 받았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민중가요 ‘사계(1989)’의 가사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1년 365일 내내 밤낮없이 미싱을 돌려야만 했던 10~20대 여공들의 삶을 애잔하게 표현하면서 중독성 있는 후렴구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를 반복적으로 노래하여 당시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저항하고자 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미싱을 돌리던 누이들은 어느새 산업의 역군에서 베이비부머 기성세대를 거쳐 이제는 실버세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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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기

지하철 가산디지털단지역 인근 한적한 주택가 사이를 두리번거리면 조그마한 연립주택 한 채를 개조해 만들어진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이하 체험관)이 보인다. 60~70년대 산업화, 80년대 근대화 시기를 거치면서 외양은 수출역군, 산업화의 선봉이지만 멸시 가득한 이름인 ‘공돌이’, ‘공순이’들이 집단으로 거주한 흔적을 재현해 전시해 놓은 곳이다. 그래서 체험관 이름이 ‘금천 순이의 집’이다.

 

감출 수 없었던 가난, 남루한 일상을 마주한 삶을 저당 잡히고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순이의 꿈과 희망, 슬픔과 아픔을 발가벗겨 보여주는 이 체험관은 바닥면적 약 20평(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전시관 치고는 소박하다 못해 초라한 느낌마저 든다. 그래도 도로명 주소는 봄 냄새 가득한 ‘금천구 벚꽃로44길 17’이다. 체험관 입구 기둥에는 ‘서울미래유산’ 동판이 박혀있다.

 

주변이 IT 벤처산업 단지로 눈부시게 바뀌었어도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공존하면서 고달팠던 세상살이의 옛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곳이다.

 

체험관 이모저모

체험관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여공들이 기거했던 쪽방을 재현하여, 그들의 퇴근 후 생활상을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낮은 임금과 고된 노동으로 점철된 여공들의 그 시절 고단하고 치열했던 삶이 생생하게 녹아있다.

 

순이의 만화공작소, 추억의 종이 뽑기, 역사 및 직업 체험, 여공 생활 체험, 추억의 도시락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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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기획전시관에서는 구로공단 관련 기획 사진 전시를 비롯해 순이의 방, 희망의 방, 비밀의 방으로 구획한 미니어처와 함께 재현한 비좁은 방 안에는 사람 모형도 있고 녹음된 소리도 들려준다. 아울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가리봉 연가’, 노래 ‘사계’, 영화 ‘구로 아리랑’ 등의 작품들을 소개하여 대중 예술작품을 통해 바라본 구로공단의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2층 영상관에서는 한국경제의 성장 과정과 노동자의 삶에 관한 세 편의 기록영상을 반복하여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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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 쪽방체험관은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살던 실제 공간을 재현해 놓은 공간이다. 추억방, 공부방, 문화방, 패션방, 생활방, 봉제방 등 6개의 테마로 나눠진 이곳은 1970~80년대 당시의 여가 문화나 취미 생활을 재현해 놓는가 하면 일상생활이나 주경야독하는 노동자들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체험관이 하는 일은 크게 전시활동, 조사연구, 체험활동, 교육활동으로 구분된다. 전시활동은 구로공단의 역사를 이해하고 쪽방을 통해 과거 노동자들의 생활상을 간접 체험하는 것이고, 조사연구는 지역 문화자원을 조사하고 수집하여 구로공단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다. 체험활동은 1960~90년대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획·전시하는 것이며, 교육활동은 노동 운동의 메카였던 구로공단의 민주주의 성취 과정과 세계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배우는 것이다.

 

기억해야 하는 이유

비약적인 디지털 기술 발전과 함께 성장한 오늘날의 주력 세대인 ‘MZ세대’가 정주할 공간이 없어 쪽방을 떠돌며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학에 다니며 신산한 삶을 살았던 노동자들의 꿈과 희망을 이해하고 기억하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권위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군 세대를 ‘꼰대세대’로 비하하고, 어른 세대를 나이 들고 개념 없다며 혐오하는 ‘틀딱세대’로 지칭하는 세태는 가히 비극적이다. 비좁은 방 수십 개가 다닥다닥 붙어 벌집이라 불린 참혹한 주거환경에서 내일을 위해 땀 흘린 노동자들의 헌신과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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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예측 불허의 미래를 사는 현재의 우리들이 예전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회상하는 것은 지나간 시간과 공간에 대한 추억을 넘어 가족과 국가를 위해 청춘을 불사른 그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금천구와 구로공단


■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은 1960~80년대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기거했던 벌집(쪽방)을 재현하여 당시의 열악하고 곤궁한 생활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함으로써, 산업화와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구로공단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후대에 역사로 남기고 전승하기 위해 금천구에서 2013년 5월 개관한 것이다.

 

■ 서울시 면적의 2%에 불과한 금천구는 서울의 서남부에 위치하여 동쪽으로는 관악구, 서쪽은 광명시, 남쪽은 안양시와 경계를 이루며, 북쪽은 구로구와 접해 있다.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에는 경기도였다가 1980년에 이르러서야 서울시 구로구에 속했고 1995년 3월에 금천구가 구로구에서 분구되면서 가산동, 독산동, 시흥동의 10개 동으로 구성되었다.

 

■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거 1965년부터 건설된 구로공단은 2000년에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개명하였다.(구로구에 속한 부분은 구로디지털단지로, 금천구에 속한 부분은 가산디지털단지로 불리며 애칭으로 ‘G밸리’라고 불린다.)

가리봉오거리(현 디지털오거리)는 수많은 공장노동자들의 좌절과 애환이 서린 곳이다. 구로공단이 주는 회색 이미지와 낙후되고 영세한 가리봉동의 지역 분위기가 이제는 디지털단지로 탈바꿈하면서 고층 빌딩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역 이름도 가리봉역에서 가신디지털단지역으로 바뀌었다.

근처에는 중국 동포와 중국인들의 근거지인 연변거리 및 가리봉시장이 있어 일용직 노동자, 중국인들이 한데 모인 낙후지역으로 남아있는데, 아직도 도시 빈민들에게 저렴한 주거 장소를 제공하는 벌집촌이 있다.

 

■ 가산동은 가리봉동의 ‘가’와 독산동의 ‘산’이 합쳐서 이루어진 지명이다.

 

50+시민기자단 정종호 기자 (powerarc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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