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는 《신곡》의 첫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 "우리 인생길의 한 중간에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있었으니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 mi ritrovai per una selva oscura)

단테는 1302년 37살의 나이에 고향 피렌체로부터 추방당했다. 추방당한다는 건, 익숙한 모든 것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추방당하기 이전의 삶은 지속될 수 없다. 단테는 갈림길에 서 있다. 이제 그가 잃어버린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는 “올바른 길”을 모색하기 위해 삶의 근본을 물으며 《신곡》을 집필했다. 

《신곡》의 첫 문장은 단테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며, 그 이후 인생의 여정 절반쯤에서 길을 잃은 모든 사람의 문장이기도 하다. 단테가 말하는 “인생길의 한 중간”은 14세기의 통념으로는 35세였다. 21세기라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생길의 한 중간”은 그 어디쯤일까? 



 

“우리 인생길의 한 중간에서 

나는 어두운 숲속에 있었으니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단테, 《신곡》








현대인의 “인생길의 한 중간”


호모 사피엔스는 약 30만 년 전 지구에 등장했다. 수렵채집 시대에도, 고대 문명이 꽃피던 시절에도, 중세 유럽에서도 출생 시 기대수명은 대략 20세에서 40세 사이를 맴돌았다. 영아와 어린이 사망률이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변화는 1800년 이후에야 찾아왔다. 산업화, 위생 개선, 의학의 발달이 맞물리면서 기대수명은 수직에 가깝게 상승했다. 1900년에 46세이던 세계 평균 기대수명은 2024년 현재 73세를 넘어섰다. 

한국에서 기대수명의 변화는 더욱 극적으로 이뤄졌다.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압축 근대화를 거치면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불과 60여 년 사이에 1960년대 초반 약 55세에서 현재 83세를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지금의 50~60대는 압축 성장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며 14세기의 단테가 말한 인생길의 한 중간에 도달했다. 고도 성장기와 함께 시작된 유년기, 직업 전선에서 치열하게 버틴 청장년의 시간, 그리고 전례 없이 길어진 노년기가 그들 앞에 펼쳐질 것이다.  50대와 60대는, 어쩌면 단테를 가장 절실하게 읽게 되는 나이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에서 페스트의 확산으로 위협받고 있는 알제리의 도시 오랑을 묘사하며 “한 도시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죽는가를 아는 것이라 했다. 이 세 가지 질문을 지금 우리 자신에게 던져보자.


우리는 어떻게 일했는가? 카뮈가 묘사한 오랑 시민들처럼, 우리 역시 오랫동안 일했다. 그러나 그 일의 목적을 묻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족을 위해, 조직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면서 정작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유예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일이 줄어들거나 끝나는 시점인 “인생길의 한 중간”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 근본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했는가? 카뮈는 오랑에서의 사랑을 두 극단으로 묘사한다. 빠르게 소모되거나, 아니면 무턱대고 지속되거나. 그 사이 어딘가에 진짜 친밀성이 있었는지, 50대 이후의 삶에서 관계의 질감은 달라진다. 젊은 시절의 사랑은 에로스적 열정 그 자체였다면 인생 후반기의 사랑은 돌봄, 대화, 견딤, 함께 늙어감의 형식으로 변주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젊은 시절의 감정 문법으로만 이해하려 한다.

 

우리는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가?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누구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질문이다. 카뮈는 모든 사람이 사업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벽 뒤에서 혼자 죽어가는 누군가를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여전히 금기이고, 준비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30만 년 동안 인류가 도달한 어떠한 기술적 진보도 인간 생로병사의 순환 자체는 바꾸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아프지 않은 시간보다 아픈 몸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는 나이에 들어섰다. 그렇기에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한 핵심 질문이 된다.

 



지금 우리는 인생 전반과 후반 사이의 막간(Intermission)에 있다


신학자 틸리히가 지적했듯이 그저 흘러가는 시간, 양적으로 측정되는 시간(기계의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와 명적인 결단을 요구하는 결정적 순간인 카이로스(Kairos)는 다르다. 숨 가쁘게 살아온 인생의 전반기가 크로노스의 삶이어도 괜찮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맞이한 막간의 순간 이후 시간은 크로노스의 반복이 아니라 결단을 요구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인생의 전반기가 육지가 보이는 곳에서 정해진 항로를 따라가는 연안 항해였다면, 후반기의 위기는 갑자기 육지가 보이지 않는 대양으로 밀려 나가는 상황과 같다. 막간의 시간에 우리는 인생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를 나누는 갈림길에 서 있다. 갈림길이라는 위기는 길을 잃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위기는 지도를 새로 그려야 하는 순간에 직면했다는 뜻이다. 인생의 후반부란 그렇기에 생애주기 상의 단순한 후반부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좌표의 문제다. 그러므로 인생 후반의 첫 질문은 “얼마나 남았는가”가 아니라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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