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 모임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열리고 있을 것이다. 동년배로 보이는 사람이 모여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 식당에서 계산을 치르며 슬쩍 예약 현황판을 훔쳐보면 영락없이 00학교 동창 모임이다. 

 

시간이 될 때마다 서울시 시민대학에서 강의를 하곤 한다. 늘 적지 않은 분이 모인다. 주 청강생은 50대 이상의 시민이다. 강의실의 열기는 뜨겁다. 여간해서는 강의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현재의 대학생과 달리, 시민대학의 학생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한 마디도 놓칠세라 강의 내용을 메모하느라 분주하다. 다들 학교를 그리워하고 있나 보다. 

 

학교에 대한 그리움을 낭만적 색채로 포장하지 말고, 그 그리움의 실체를 냉정하게 살펴보자. 나이를 먹을수록 인정할 수밖에 없는 냉정한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기량을 정작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우리는 복종을 배웠고, 자신을 생산성 있는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한 기술을 익혔지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행복으로 이끄는 감정을 생산해낼 수 있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왜 학교는 어른의 삶에 진정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다고 인생도 잘 살아내는 건 아니다. 1986년 한 여중생이 유서에 이런 문장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이 문장은 1989년 강우석 감독의 영화 제목이 되었고, 서울에서만 15만 명이 넘는 관객이 보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죽은 지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같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학교 다닐 때 좋은 성적을 올렸던 사람, 비행기가 뜨는 시간마저 조정할 정도로 온 국민의 시선과 관심이 집중되는 대학 입학시험에서 수석의 영광을 차지한 사람이 온전한 인생의 승리자로 보이는 순간은 그때뿐이다. 나이를 먹고 나면 누구나 삶의 경험을 통해 깨우친다. 성적 잘 받았다고 인생을 잘 사는 것과는 아무 관계없다고. 

 

우리는 여전히 거대한 예전의 학교 속에 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사실은 교단에 오를 자격이 없는 자들이 각종 디지털 플랫폼과 유튜브에서 지나치게 큰 목소리로 근거 없는 확신으로 소리치고 있고, 우리는 그것 이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목소리를 짜증 내면서 듣고 있다. 다른 방도는 없는가?

 

우리의 인생 나머지를 결정짓는 것은 정보도 더 많은 지식도, 최신 트렌드도 아니다. 분별할 수 있는 힘을 갖춰 거짓 선생의 목소리에 속지 않고 현혹되지 않아야 인생 나머지의 방향이 결정된다. 인생 나머지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 우리는 그것을 단 하나의 단어로 '지혜'라 표현하고자 한다. 인생의 후반부에서 우리는 기능이나 직능을 훈련받는 학교가 아니라 지혜라는 실천적 지식을 배우는 학교를 다녀야 한다.





“책은 음식이다. 공부를 통해 부수고 씹어서 양분을 얻어라” 


성 빅토르 후고, 《디다스칼리콘》








성 빅토르 후고((Hugo von St. Viktor), 이름 자체도 낯선 인물의 책을 읽어본다. 12세기의 수도사이자 철학자인 후고는 《디다스칼리콘(Didascalicon de studio legendi)》이라는 제목의 책을 남겼다. 후고의 《디다스칼리콘》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다행히 이반 일리치는 《텍스트의 포도밭》이라는 책을 통해 후고의 《디다스칼리콘》의 중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후고는 《디다스칼리콘》에서 당시 존재하는 모든 학문을 분류하고 그 위계를 정리했다. 그가 보기에 학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이론 학문(신학, 수학, 자연학)과 실천 학문(윤리학, 경제학, 정치학)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학문 위에 하나를 놓았다. 바로 지혜다. 《디다스칼리콘》의 첫 문장은 이렇다. "구해야 할 모든 것 가운데 으뜸은 지혜다". 지식은 도구이고, 지혜는 그 도구를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이다. 우리가 다녔던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고 습득한 지식을 측정하여 성적이라는 이름으로 제시했지, 지혜를 가르치지는 않았다. 





“구해야 할 모든 것 가운데 으뜸은 지혜다” 


성 빅토르 후고, 《디다스칼리콘》





후고의 《디다스칼리콘》에 따르면 남보다 잘난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게 아니다. 공부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잘 표현해 주는 하나의 라틴어 단어가 있는데, 그것이 치유라는 뜻을 지닌 레메디움(remedium)이다. 공부가 늘 상처였던 우리에게 치유가 되는 공부는 낯설지만, 공부는 각종 이유로 상처받은 영혼이 그 상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에서 행복의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는 레메디움 찾기를 도와야 한다. 

인생에서 우리가 얻어야 하는 지혜가 알 수 없는 전문용어로 점철되어 있는 철학 책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을 살아내기 위한 생존의 기술로서의 지혜의 보고가 담긴 책을 하나 고르라면 서슴지 않고 고대 헬라스의 아이소포스(이솝)가 전하는 《우화》를 고르겠다. 

아이소포스는 기원전 6세기 인물이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그는 사모스 시민의 노예였으며, 델포이에서 그곳 사람들의 손에 불의의 죽음을 당했다. 노예 출신에 말더듬이였던 그가 남긴 이야기가 지금도 읽힌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역설이다. 지혜는 그 사람이 속한 신분에 달려 있지 않음을 아이소포스의 삶이 증명한다. 그는 노예였지만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노예 아이소포스는 짧은 동물 이야기의 형식으로 자신이 삶에서 깨달은 지혜를 우리에게 전한다. 《우화》를 읽으며 다시 깨닫는다. 지혜는 반드시 어려운 언어로 쓰인 두꺼운 책으로 표현될 필요는 없다는 것, 오히려 우리 모두가 인생에서 배워야 하는 지혜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 속에 있을 수 있음을. 

인생의 전반기가 지식과 기능을 축적하는 시간이었다면, 인생의 후반기는 그 축적 위에서 레메디움을 찾는 시간이어야 한다. 치유로서의 공부, 분별하는 힘으로서의 지혜, 그것을 배우는 학교가 바로 우리가 지금 함께 하고자 하는 어른들을 위한 생각 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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