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코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계절에만 즐길 수 있는 음식, 장소,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찾아 즐기는 문화예요. 요즘 SNS에서 Z세대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는 트렌드인데, 데이터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어요.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제철음식' 키워드 검색량이 5년 전보다 2.6배 이상 증가했고, 계절 과일을 모티프로 한 패션 의류 거래액도 전년 대비 200% 이상 늘었어요. 그런데 이 검색량을 세대별로 뜯어보면, 주인공은 Z세대만이 아니에요.



'제철음식' 검색량이 5년 새 약 2.6배 증가

(출처: 네이버 데이터랩 키워드 트렌드 분석(2020.1-2025.12))



강서구 방화동에 사는 51세 박 씨는 매년 여름이 되면 꼭 챙기는 것들이 있어요. 참외 한 봉투, 냉면 육수 만들기, 계곡 근처 백숙집 예약, 그리고 오후엔 선풍기 바람맞으며 읽을 책 한 권. 누가 '제철 코어'라고 알려준 것도 아니에요. 그냥 여름이 되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일들이에요.


딸아이가 제철 감성이라고 하던데, 그게 별거예요? 우리는 그냥 원래부터 그렇게 살았는걸요.



왜 지금 '제철'이 희소 가치가 됐을까요?

기후 위기로 계절감이 희미해지면서, 지금 이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이 '희소 가치'가 됐어요. 순간의 제한된 경험에서 오는 농도 높은 만족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죠. Z세대는 경험해본 적 없는 계절에 대한 그리움, 이른바 '아네모이아' 감성으로 제철 문화를 소비해요.



아네모이아(Anemoia) "경험 없는 그리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적 없는 시대나 장소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는 감정이에요. 예를 들어 1980년대를 살지 않았는데도 그 시대의 사진이나 음악을 보면 왠지 모르게 그립고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이에요. '기억도 없는데 왜 이렇게 그립지?'라는 느낌이죠.



하지만 4050은 달라요. 냉장고에 참외가 쌓이던 여름, 온 가족이 계곡에서 수박을 먹던 오후, 선풍기 앞에서 책장을 넘기던 그 감각이 몸속에 살아있어요. 그리움이 아니라 기억으로 계절을 알고 있는 세대예요.

그리고 지금, 4050은 그 기억을 더 의식적으로, 더 나답게 꺼내 살고 있어요. 트렌드 코리아 2026이 제시한 '필코노미' 키워드처럼, 여름은 유독 감정 소비가 활발한 시즌이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겠다"는 감정이 소비의 동기가 되고 있어요. 오래 살아왔기에 알아요. 이 여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먹을 것 '그 시절 맛'이 힙해졌어요

여름 하면 떠오르는 맛이 있어요.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참외, 얼음 동동 띄운 냉면, 더위에 지쳐 먹던 팥빙수. 이 맛들이 지금 완전히 새로운 얼굴로 돌아왔어요.

참외는 올여름 가장 핫한 제철 재료예요. 씨즙을 내어 올리브오일·발사믹·소금·후추로 만든 소스를 얇게 저민 참외 위에 뿌리는 '참외 샐러드'가 인스타그램에서 673만 뷰를 넘겼고, 연희동·행궁동 카페들은 참외 빙수·참외 타르트로 줄을 세우고 있어요. 글로벌 틱톡에서도 '코리안 멜론'으로 불리며 외국인 반응 영상이 이어지는 중이에요.

순수 빙수는 팥·연유·얼음 세 가지만으로 만드는 방식이 오히려 '클래식하고 힙하다'는 평가를 받아요. 토마토말차는 붉은색과 초록색의 색 대비가 여름 감성을 자극하며 SNS를 달구고 있고, 레몬 젤리는 레몬 껍질을 틀 삼아 굳혀 만드는 감각적인 디저트로 홈카페족 사이에 퍼지고 있어요.

4050에게 이 음식들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에요. 참외 향을 맡는 순간, 빙수 한 숟갈에, 여름 전체가 통째로 돌아오는 감각이에요.




갈만한 곳 '피서지'에서 '회복지'

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조사한 국민여행조사(2024)에 따르면, 국내 여행 목적 1위는 '자연 및 풍경 감상'(77.4%), 2위는 '휴식·휴양'(60%)으로 연령이 높을수록 이 두 항목의 비중이 두드러져요. 4050의 여행 키워드는 늘 '자연''회복'이었어요. 그런데 2026년 여름엔 그 방식이 조금 달라지고 있어요. 멀리 떠나는 것보다 '지금 여기의 여름'을 제대로 누리는 것으로요.


우리 곁의 한강 즐기기

한강이 단순히 '산책하는 곳'을 넘어 '여름을 제대로 보내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책읽는 한강공원'은 올해도 4월부터 여의도 한강공원 멀티프라자에서 운영됐어요. 5,000권 이상의 책이 연령별로 큐레이션 돼 있고, 600석 규모의 빈백과 피크닉 매트 위에서 강을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어요. 올해는 핸드폰을 맡기고 책에만 집중하는 '디지털 디톡스 챌린지'도 새로 생겼어요.

한강 수영장도 빠질 수 없어요.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2025년 한강 수영장 방문객은 552,003명으로 전년 대비 1.8배 증가했고, 야간 개장 기간에만 176,000명이 찾았어요. 올해는 619일부터 830일까지 운영되고, 야간 수영은 73일부터 시작돼요. 책 한 권이든, 수영 한 바퀴든, 한강은 올여름 가장 가까운 회복지예요.

 

 

 

계곡·계회(契會)

계곡 나들이가 다시 뜨고 있어요. Z세대가 계곡 백숙집을 찾기 시작하면서 4050이 수십 년째 즐겨온 여름 문화가 새삼 '힙한 것'으로 재발견되고 있는 거예요. 사실 계곡에서 발 담그고 닭 한 마리 시켜 먹는 건 4050에게 새로운 트렌드가 아니라 오래된 기억이에요. 조선시대 선비들이 여름마다 경치 좋은 물가에 모여 음식을 나누며 풍류를 즐기던 자리, '계회(契會)'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기도 하고요.




능소화 스팟·영화제·축제

봄에 벚꽃을 찾듯, 여름엔 능소화를 찾아 나서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요. 능소화의 지난해 7월 네이버 월간 검색량은 184,600건으로, 20대 검색량이 29.2%로 가장 높았어요. Z세대가 먼저 발견했지만, 여름 제철 꽃을 찾아 나서는 감성은 4050에게 더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요. 서울 뚝섬한강공원 담벼락을 가득 물들이는 주황빛 능소화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것. 거창한 여행 계획 없이도 '이 여름에만 있는 것'을 챙기는 방식이에요.

무주산골영화제, 정동진 독립영화제 같은 소규모 야외 영화제가 꾸준히 사랑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무주산골영화제는 올해 14회를 맞아 64일부터 5일간 운영됐어요. 올해 정동진독립영화제는 87일부터 3일간 개최될 예정입니다. 대형 페스티벌의 인파와 소음 대신, 자연 속에서 돗자리 펴고 영화 한 편. 4050이 이런 영화제를 찾는 건 '힙해서'가 아니에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여름의 감각, 이제 온전히 나를 위해 꺼내는 거예요





살 것 여름을 더 잘 누리기 위한 선택들

4050의 여름 굿즈는 '인증샷용'이 아니에요. 실제로 쓰고, 오래 쓰고, 여름을 더 잘 느끼기 위한 것들이에요.

여름 양산5060세대의 오랜 필수품이었는데, 이제 2030도 빠르게 합류하고 있어요. 자외선 차단을 위해 긴소매 얇은 셔츠나 가디건을 여름에도 걸치는 '살안타템' 문화가 전 세대로 번지면서, 양산도 기능성 패션 아이템으로 격상됐어요. 사실 피부를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가장 잘 아는 건 4050이에요.

보냉 텀블러백은 설명이 필요 없는 여름 필수품이에요. 더위가 길어질수록, 외출 시간이 늘어날수록 더 요긴해지는 아이템이에요. 요즘은 텀블러백 자체를 패션 포인트로 활용하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올해 가장 주목받는 소비 감각은 '후각'이에요. 계절을 시각으로 기록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향으로 기억하려는 흐름이 생겼어요. 초여름 풀 내음, 참외 향, 물복숭아 향을 담은 캔들·디퓨저·바디미스트 제품들이 쏟아지고, 국내 브랜드 '(chwi)'의 쌀향·눌은밥향 제품이 화제를 모으는 것도 이 맥락이에요. 4050이 향에 끌리는 건 트렌드를 따라가서가 아니에요. 여름 계곡 물 냄새, 참외 냉장고 향, 처음 비 올 때 흙냄새. 그 향들이 이미 몸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에요. 올여름, 좋아하는 향 하나를 방 안에 피워두는 것만으로 충분히 여름다운 여름이 돼요.





4050이 여름을 즐기는 방식이 달라진 진짜 이유

Z세대에게 제철코어는 '이걸 해야 계절의 낭만을 즐기는 것'이라는 새로운 발견이에요. 4050에게는 다른 의미예요. 제철을 챙기는 건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미뤄뒀던 자신만의 소비 방식을 꺼내는 것에 가까워요. 가족과 직장 중심으로 여름을 소비해온 세대가, 이제는 자신의 취향과 감각을 기준으로 계절을 선택하기 시작했어요.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소비자를 움직이는 희소 가치의 중심이 '물질적 소유'에서 '시간의 향유'로 변화하고 있어요. 4050은 이 변화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세대예요. 아이들이 독립하고, 은퇴가 보이기 시작하고, '앞으로 여름이 몇 번이나 남았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나이. 그래서 이번 여름이 더 선명하게 남아야 해요.

제철코어는 Z세대가 발견한 트렌드지만, 그것을 가장 깊이 살아낼 수 있는 건 4050이에요. 계절의 맛과 향과 소리를 몸으로 기억하는 세대이기 때문이에요. 참외를 먹고, 계곡을 가고, 능소화 사진을 찍고, 한강 수영장에서 오후를 보내는 것. 이런 소소한 방식으로 여름을 채워보세요. 제철 코어의 진짜 주인공은 처음부터 4050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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