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 휘슬… ‘꼰대’ 벗고 용기 충전합니다

 

은퇴한 5064 ‘인생학교’ 인기

강의 대신 워크숍ㆍ대화로 수업

요리ㆍ사진ㆍ정원 가꾸기 등 다양

졸업 후 동기들과 모임 이어가며

재취업ㆍ사회봉사 뛰어들기도

 

바야흐로 100세 시대, 나이 오십은 너무 젊다. 한국인 평균 기대수명이 82.1세(2015년 기준)이니 살 날이 30년 더 남았다.

그러나 막막하다. 일하고 싶지만 오라는 데가 없다. 갈 곳도 없다. 불안하다. 이제 뭐하고 살지? 이런 걱정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때 되면 겪는 일인 줄 모르지 않고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건만, 막상 닥치니 불안한 당신의, 아깝고 안타까운 나이, 오십. 꼰대 취급 받으며 늙어가기에는 억울한 나이, 오십. 생각을 뒤집으면 길이 열리지 않을까? 오십,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은 나이’, ‘새로 배우기 좋은 시절’이라고. 50플러스 세대(만 50~64세)를 위한 종합지원기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슬로건이다.

 

50플러스 중부캠퍼스 인생학교의 5월 31일 수업. 만들고 싶은 모임을 제안하고 활동 계획을 짜는 내내 환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지난해 은퇴한 박수덕(60)씨는 직장 다닐 때보다 지금이 더 바쁘다. ‘만날 사람이 많고 할 일이 있어 즐겁다’는 그는 50플러스재단 서부캠퍼스의 ‘50플러스 인생학교’ 2기 졸업생이다. 인생 후반을 함께할 좋은 벗들을 여기서 만났다. 자연을 즐기면서 꽃과 나무로 주변을 가꿔 봉사하자는 취지로 동기들과 ‘드림가드닝’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멤버 15명 중 8명은 서울역 고가공원의 꽃과 나무를 관리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50플러스 캠퍼스는 삶의 전환을 꿈꾸는 50 이후 세대들의 아지트다. 인생학교는 50플러스 캠퍼스의 여러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로 12주 과정이다. 살아온 날을 돌아보고 2막을 설계하는 시간이다. 불광동 서부캠퍼스와 공덕동 중부캠퍼스에서 현재 3기, 1기가 진행 중이다. 중부캠퍼스 1기의 경우 50명 모집에 100명이 지원했을 만큼 인기가 높다. 50년간 무뎌진 칼날을 다시 세우는 시간, 남편도 후배로 만들고 싶은 학교, 거울처럼 나를 들여다본 시간, 가슴 울컥한 50플러스 세대의 통과의례, 동기와 만남이 연애보다 재미있었던 시간…. 졸업생들은 50플러스 인생학교를 이렇게 말한다.

 

인생학교 지원자는 신청서와 함께 마음준비서를 낸다. 인생에서 뺄 것과 더할 것을 쓰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한다.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한 달을 보내고 나면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서로 속을 털어 놓는 친구가 된다. 섬으로 워크숍을 가서 밤 하늘 별을 보며 ‘고독력’을 키우고, 연극놀이를 통해 남의 말을 듣는 연습을 하고, 함께 영화를 보며 내 마음을 꺼내 놓는 시간을 갖는다. 수업은 일방적 강의가 아니라 학생들의 대화로 진행된다. 졸업이 가까워지면 뜻 맞는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어 졸업 후에도 함께 활동한다.

 

박수덕씨가 쓴 인생학교 마음준비서는 공감할 만하다.

“인생 1막에서 자랑스러웠던 일을 과감히 버리자, 그렇게 썼던 걸로 기억합니다. 좋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데, 과거를 먹고 살면 2막이 행복할 수 없으니까요. 비우고 버려서 현재 여건에 맞는 일과 즐거움을 찾아야죠. 욕심을 버리면 할 일이 아주 많아요. 작년까지 직장 생활을 했는데, 내 삶을 산 거 같지 않더라구요. 이제부터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자,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다 생각했는데 인생학교에서 좋은 친구를 많이 얻은 것이 가장 큰 소득이죠.”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드림가드닝 팀은 서로 친분을 쌓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도 키울 겸 겨울 석 달 간 북한산 둘레길을 걷고 서울의 수목원과 식물원, 고궁을 다녔다. 3월이 되어 수목이 피어나자 저마다 꽃과 나무, 정원 공부를 시작했다. 2~3년 더 배우고 경험을 쌓아서 2020년쯤 협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해볼까 조심스레 구상 중이다.

 

50플러스 인생학교 정광필(59) 학장은 입학식에서 늘 두 가지를 강조한다. 모든 의전과 형식을 걷어내고 알맹이에 집중할 것. 남의 삶이 아닌 나의 삶, 우리의 삶을 함께 만들어갈 것. 그는 도심형 대안학교의 모델로 꼽히는 분당 이우학교를 만들고 토대를 닦은 교육운동가다.

 

“대접받고 대접하는 데 너무 익숙해 몸에 밴 꼰대 기질을 떨쳐내야 새로운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요. 어깨에서 힘 빼고 다 내려놔야죠. 인생학교에 우아한 교양 강의는 필요 없어요. 이미 많은 경험과 능력을 가진 분들, 할 말이 많은 분들이 오는데 가르칠 게 뭐가 있겠어요. 한 명 한 명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게 중요하지. 작지만 의미 있는 새로운 삶에 도전할 용기를 주는 것, 그게 인생학교의 목표죠.”

 

인생학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매력적으로’ 변한다. 그러다 보니 졸업생 중 상당수가 ‘스카우트를 당해’ 재취업했다. 생계를 떠나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에 뛰어든 사람도 많다.

인생학교 참가자들은 서로 격려하며 용기와 열정을 나눈다. 중부캠퍼스 인생학교 1기 성경애(60)씨는 “여기 오면 긍정 에너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정선택씨도 “오래된 친구를 만나면 방전, 새 친구를 만나면 충전이 되는데, 여기 오면 충전이 된다”고 말했다. 함께 만들고 싶은 모임으로 성씨는 ‘불로초’(불로그로 노후를 준비하는 초인적 사람들)를 제안했고 정씨는 ‘인생 리셋 마법사’ 팀에 합류했다. 성씨는 “옛날 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지만 이 나이 되니까 아무 소용이 없더라”며 “블로그 활동으로 활기차게 보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서부캠퍼스 인생학교 2기들의 사진 모임 펀(PUN)은 5월 13일 서울혁신파크 반짝놀이터에서 활약했다.

사진 커뮤니티 ‘펀(PUN)’은 서부캠퍼스 인생학교 2기생들이 만든 6개 모임 중 하나다. 이론 수업과 야외 출사를 매주 번갈아 하면서 사진을 익히고 있다. 나중에 사진으로 사회 봉사를 하자고 뜻을 모았다. 펀 대표 이강호씨는 “진짜 초짜들만 모여서 카메라 잡는 법, 초점 맞추는 법부터 배웠는데, 이제는 어지간한 아마추어 사진은 눈에 안 들어올 만큼 수준이 높아졌다”고 자랑했다. 펀 멤버이면서 장애인 가족, 이주 노동자, 탈북인 등을 위한 비영리 사진관 ‘바라봄’에서 활동하는 조영대씨가 선생님이다. 펀은 5월 13일 불광동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반짝놀이터에서 활약했다. 놀러 온 어린이들과 이 어린이들에게 자장면을 만들어 대접한 ‘꿈자꿈자’의 활동을 사진으로 찍어줬다. ‘꿈꾸는 자장면’을 줄인 ‘꿈자’는 서부캠퍼스 과목 ‘남자의 부엌’에서 요리를 배운 중장년 남성 모임이다. 이날 행사는 기획, 준비, 운영을 전부 캠퍼스 동기들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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