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서울50+(뉴딜)인턴십 참여자 인터뷰 ⑩

50+스마트시티 전문인력 | 윤영식

* 인턴 활동 종료 전인 9월 말에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유리 벽 너머로 붉은 조명이 비추는 이색적인 공간이 펼쳐진다. 금속제 선반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구멍 뚫린 상판에 몇 센티미터 간격으로 촘촘히 어린 식물이 자라고 있다. 스마트팜이다.

 

해피팜협동조합(대표 최정원)은 식물 공장이라고도 불리는 도시형 스마트팜에서 새싹삼을 재배한다. 강원도 평창 지역에서 1~2년간 자란 어린 산양삼을 옮겨 심은 뒤 스마트팜에서 일정 기간 더 키워 수확한다. 조합은 스마트팜에서 키운 새싹삼을 원료로 기능성 화장품을 만든다.

 

조합은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예비사회적기업으로 향후 도시 농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스마트팜 운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스마트팜 사업 모델을 확산해갈 계획이다. 최신 기술과 농업, 사회적경제의 교집합에 위치한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윤영식 님(63)은 지난 6월 50+인턴으로 해피팜협동조합에 합류했다. 조합이 최신 기술과 농업이라는 두 영역을 융합해 사업을 영위하는 것과 닮은꼴로 그의 지난 삶도 둘 모두와 관련 있다.

 

 

그는 한국수자원공사에서 30년간 근무하고 2015년 정년퇴직했다. 자신을 “전산 1세대”라고 소개했다. 대학에서 계산통계학을 전공하고 공사에 입사해 전산 관련 부서에서 일했다. 정보화 시스템 구축, 전산 설비 운영 등 IT 업무를 두루 경험했다. 생산 설비 자동화 시스템 구축, 수도권 광역 수도시설 통합 관리 시스템 구축과 같은 최신 기술 관련 업무도 맡았다.

 

2015년 12월 31일부로 퇴직했습니다. 바로 재취업을 할 수도 있었는데, 수십 년 떨어져 생활하다가 퇴직을 했으니 어머니를 모시고 잠시 좀 같이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혼자 계신 밀양에 내려가서 4년 동안 농사를 지었어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사람을 안 만나잖아요. 그래도 수십 년 직장생활을 했는데 조금 사람과 만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죠. 말을 잊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다시 서울로 올라와 일할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원래는 머리가 아닌 몸을 쓰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좀처럼 인연이 닿는 일거리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50+인턴십을 알게 됐고, 직장 경력과 농사 경험을 모두 살릴 수 있는 해피팜협동조합에서 근무하게 됐다.

 

- 어떤 업무를 하고 있습니까.

지하철 9호선 마곡나루역 지하에 마곡광장이라는 상업 공간이 있어요. 그곳에 50평 내외 규모의 식물 공장(스마트팜)을 설립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법적인 문제나 기술적인 문제와 같이 설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죠. 식물 공장을 만들면서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았습니다. 예산을 처리하는 것도 정부 절차에 따라야 하거든요. 제가 회사에 있으면서 그런 일을 계속해왔어요. 보통 그런 일을 힘들어하지만, 저는 나름의 경험이 있어서 수월하게 하고 있죠. 또, 식물 공장을 설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설계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디자인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디자인뿐만 아니라 예산을 집행하는 일도 우리는 설계라고 하거든요. 이런 공장을 짓는데 어떤 일정으로, 얼마만큼의 돈을 들여가면서 일을 진행할 건지 판단하고 처리하는 일입니다.

 

- 공장 설립 과정 전반을 책임지는 일이군요.

공장을 디자인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법적인 문제, 행정적인 문제를 처리하고, 시공 감독까지 다 합니다. 원래는 지하 1층에 공장을 짓기로 해서 공간에 맞춰 설계를 다 했어요. 볼트 하나, 너트 하나까지 다 계산해서 비용은 얼마고, 인건비는 얼마고 다 설계해놨는데, 어느 날 갑자기 (관계 기관에서) 이 위치에는 안 되니 바꾸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설계를 다시 했는데 또 바뀌고… 그런 일을 세 번 정도 했어요.

 

여러 차례 계획이 바뀌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원래 8월에 착공에 들어갈 일정이 11월로 미뤄지면서 이미 끝낸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식물 재배를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바닥과 벽면, 천장의 방수 작업부터 시작해서 온도 조절 장치, 전기 시설, 수도 시설까지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해피팜협동조합의 스마트팜에서는 연중 최대 18회 재배가 가능하다. 좁은 면적에서 효율적으로, 안전하게 새싹삼을 재배한다.  

 

그는 인터뷰를 위해 만났던 그 어떤 인턴십 참여자보다도 전문적인 업무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였다. 관련 경험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다행히 그는 현직에 있을 때 자동화 공장 관련 일을 많이 해본 경험이 있다. 회사에 있을 때 맡았던 업무에 비하면, 지금 하는 일은 난도가 그렇게 높은 일은 아니라고 했다. 해피팜협동조합 최정원 대표는 “이 업무와 관련된 전문 인력이 드문데, 굉장히 필요했던 분이 오셨다”고 말했다.

 

인턴 근무하면서 목표 중 하나는 공장 설립 과정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는지 들여다보고, 기록을 남기고, 그렇게 해서 하나의 매뉴얼을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이 일을 떠나더라도, 제가 남기고 간 흔적만 찾아보더라도 다른 사람이 이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틀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제가 삼십여 년 회사를 다니면서 했던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항상 제가 하는 일에 관한 기록을 정확하게 남겨서 다음 사람들이 그 일을 맡았을 때 기록만 보고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조근조근 이어가는 말에서 자신의 업무 경험과 역량에 대한 자부심이 배어 나왔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에게 의지하고 집중하는 사람인 듯했다. 어떤 상황에 놓이든,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자신과 타인이 만족할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데 열중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 30년 동안 한 직장을 다니는 경험이 어떤 건지 잘 상상도 안 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고 퇴직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처음에 진짜 푸른 꿈을 안고 회사에 입사했을 때, 딱 들어가서 느낀 점이 뭐냐 하면 ‘군대다’ 이렇게 느꼈어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분위기였죠. 공사라는 조직은 군대나 마찬가지였어요. 상사의 말 한 마디가 왕의 지시나 마찬가지였죠. 십 년 정도는 그런 시절을 보냈어요. 그러다 좀 더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지고, 이래저래 달라지긴 했는데 아직도 상명하복의 문화가 남아 있는 조직이에요. 그런 분위기에서 살아오다 보니깐 퇴직할 때 해방감을 느꼈죠. ‘아,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 퇴직할 무렵에는 그래도 지시를 받는 위치에 있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도 해방감이 앞섰습니까.

울타리 밖으로 벗어날 수 있다, 벗어났다, 그것 때문에 해방감을 느끼는 거거든요. 아무리 제가 거기서 하는 일 없이 그냥 온종일 사인이나 하고 끝낸다고 하더라도요. 이제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울타리에 얽매이지 않고 살 수 있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 많은 퇴직자가 해방감을 느끼기보다는 자기 정체성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의기소침에 빠지는 분도 많고요.

모르겠습니다. 대단한 권력을 갖고 높은 위치에 서 있던 게 아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진 않았습니다. 남들이 안 알아주더라도, 인턴으로 일하더라도 저는 분명히 자신의 역할을, 주어진 역할을 분명히 할 수 있잖아요. 제가 프로필이 엄청 화려해서 어디서든 써줄 사람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맡겨만 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칠십, 팔십이 되더라도,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심리적으로 위축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윤영식 님이 참여한 서울50+뉴딜인턴십 세부 사업은 50+스마트시티 전문인력 사업이다. 이 사업은 기술 분야 경력을 지닌 50+세대 퇴직자를 스마트시티 분야 기업과 연결해 퇴직자가 자신의 노하우를 첨단 분야에서 발휘하도록 한다. 스마트시티는 다양한 최신 기술로 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해가는 도시, 또는 그런 도시를 만드는 사업을 뜻하는 단어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전산 분야에 오래 몸담았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일을 많이 했고, 수도 원격 검침과 같이 한국의 초기 스마트시티 사업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업을 맡은 경험이 있다. 50+스마트시티 전문인력 사업 취지를 누구보다 잘 구현할 수 있는 50+세대인 셈이다.

 

- 오랜 기간 관련 사업을 지켜봐 온 만큼, 스마트시티에 대한 생각도 많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 우리나라 모든 도시는 스마트시티다, 이렇게 정의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버스 정류소에 가면 버스가 얼마나 있다 온다, 어떤 버스가 온다, 어느 정도 혼잡하다, 이런 정보가 나오잖아요. 그런 것을 알려주는 나라가 있습니까. 스마트하다는 게 뭡니까. IT 기술을 이용해서 내 불편을 줄여주는 게 스마트한 거잖아요.

 

- 우리나라는 그런 것이 잘 되어 있죠.

그런데 우리는 이미 그렇게 스마트한 걸 잘하면서도, 항상 뭘 더 스마트하게 할까 고민하는 거예요. 하다 보면 스마트해지는 거고, 필요에 의해서 스마트가 나오는 거지, 찾는다고 나오는 건 아니지 않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과감하게 드릴 수 있는 것은 회사에서 어떻게 스마트시티를 추진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계속 찾고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미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데, 그걸 굳이 머리 싸매면서 찾아서 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해피팜협동조합 최정원 대표(오른쪽)와 함께. 최 대표에게 그는 "꼭 필요한 전문가"이다.

 

회사 시절, 남들보다 한발 앞서 경험한 최신 기술 관련 경력이 지금의 식물 공장 설계 일로 이어졌다. 해피팜협동조합이 추진하는 업무와 관련해 그는 누구 못지않게 탄탄한 식견과 노하우를 보유했다. 조합에서 꼭 필요한 인력이었던 만큼, 그는 마곡역 현장과 조합 사무실을 오가며 정말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주 5일 풀타임 근무가 힘에 부칠 때도 있다.

 

그래도 그는 “아직은 할 만하다”고 말한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아야 할 때는 기탄없이 요청한다는 생각으로, 현역 시절보다 조금은 부담 없는 마음으로 일한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조합이 성장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 어떻게 보면 다시 직장 생활 시절로 돌아간 상황이네요. 힘든 점도 있겠지만, 인턴십에 참여하면서 겪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나요.

아내가 ‘아, 그래도 이제 밥벌이를 하고 다니네’ 이렇게 봐주는 게 긍정적인 변화이고요.(웃음) ‘아, 내가 아직도 할 일이 있구나’, ‘아직도 사회에 내가 필요하구나’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죠.

 

- 인턴십 활동 이후 또 다른 계획이 있습니까.

나이가 더 들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조금 더 난도가 있더라도 제가 가진 여러 기술이나 능력을 정말 제대로 발휘해 볼 수 있는 일을 더 해보고 싶긴 합니다. 지금 하는 일보다 더 스케일이 큰 일도 해보고 싶어요.

 

당장은 마곡역 식물 공장 설립을 잘 마무리하는 게 급선무다. 인턴 활동은 10월 말로 종료되지만, 그는 공장 준공 후 시험 재배 기간까지는 계속 조합에 남아 업무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최정원 대표 역시 그에게 근무 기간 연장을 요청할 계획이다. 

 

30년간 일 했지만, 그는 지금도 일을 하고, 앞으로도 일할 계획이다. 퇴직 당시 느낀 해방감이 더 의욕적인 활동의 에너지로 이어진 듯했다. 이제는 넓은 사무실도, 일을 돕는 부하 직원도 없지만, 그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맡은 역할을 완수하고,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 타인이 더 잘 일하도록 돕는 것. 그의 단순 명료한 희망 사항이다.

 

얼마나 보탬이 될지는 모르지만, 제가 일이 끝나고 나면 업무 프로세스를 정리한 다음 조합에도 문서를 남기고, 농촌진흥청에도 하나 보낼 생각입니다. 필요하면 참고해라 그럴 생각이거든요. 원래 공장 설계 일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하는 일이거든요. 제가 한 지는 오래 됐을 것 아닙니까. 처음 여기 오니까 이미 그 일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을 떠난 상태인 거예요. 그런데 어디 도움을 받을 데가 없더라고요. 옛날 기억을 좀 더듬고 하니깐 그제야 좀 진척이 된 거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프로세스가 정리된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인터뷰 기획·진행 l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사업본부

50+스마트시티 전문인력 사업 운영 l 서울시50플러스 남부캠퍼스 일자리팀

사진 l 김태은 

 

* 서울50+(뉴딜)인턴십 현장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전달하기 위해 참여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글의 내용이 모든 사업 참여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며,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입장과도 다를 수 있습니다.

 


 

서울50+(뉴딜)인턴십 

50+세대가 새로운 분야에서 일을 배우는 동시에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앙코르커리어를 개척할 기회를 제공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입니다. 서울50+인턴십(파트타임형)과 서울50+뉴딜인턴십(풀타임형)으로 나뉩니다. 2020년 8개 세부 사업별로 참여자를 모집해 300여 명의 50+인턴이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1년 상반기에 새롭게 참여자를 모집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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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순서

① 시니어 톱 모델의 자영업 유람기 

② 초보 직업상담사의 영화 같은 실전 체험

③ 딩동댕 유치원 PD, 아이돌 세계에 뛰어들다

④ 그냥 재밌어서’의 힘 

⑤ 오래된 골목에서 그리는 스마트한 미래

⑥ 주거 복지 현장의 부동산 전문가

 너무너무 재밌는 동네 인턴 생활

 "학교에서도 못 느낀 배움의 희열을 느꼈어요"

맘카페의 사회적경제 전도사

⑩ “퇴직했을 때요? 해방감을 느꼈죠”(현재 글)

 

* 10회로 2020년 서울50+(뉴딜)인턴십 참여자 인터뷰 연재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