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사진 봉사자 정창완 사진작가를 만나다

 

은퇴 이후,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더욱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정창완 사진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영정사진 찍는다고 했는데, 이 말의 어감이 좋지 않아서 어르신들이 사진 찍기를 꺼렸어요. 그래서 항상 건강하시라고 장수사진이란 말로 바꿔서 부르니 사진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웃으면서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 덕분에 넘쳐나는 게 사진이다. 하지만 반듯한 독사진 한 장이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갑자기 불의의 사고라도 나면, 유가족들은 영정사진이 없어 애태웠다. 때론 급히 만든 초상화나 신분증 사진을 확대해서 장례식에 사용하기도 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지금은 그런 사람들 거의 없잖아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 나온 사진 한 장 갖는 것도 삶의 우선순위에서 저만큼 멀리 미뤄놓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수학 선생님’
정창완 작가는 2015년 8월 서울시 노원구에 위치한 재현고등학교 수학선생님으로 정년퇴임했다. 80년대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던 때부터 사진촬영에 관심이 많아 사진동호회와 사진작가들의 모임에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사진으로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은 1990년대 현직교사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내에 학생들을 위한 특별활동으로 사진반을 개설했는데, 그 때 사진반 지도교사를 맡았던 것이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학생들에게 사진 촬영법을 가르치고 교외에 나가 마음껏 사진을 찍게 했다. 차츰 학생들이 사진에 흥미가 높아지자 봉사활동으로 확장시키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장수사진을 찍게 된 계기가 있었다. 성당 신부님의 부탁으로 경상북도 상주까지 가서 마을노인들에게 장수사진을 찍어주었는데, 힘들어 할 줄 알았던 아이들이 봉사의 보람을 느끼고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 후로 해마다 여름방학이 되면 학교에서 70명을 선발하여 소록도에 갔다. 2박3일 일정으로 그곳에 가서 사진촬영과 청소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당시 지원하는 학생들 사이에 경쟁률이 3:1로 높았다고 하니 얼마나 뜨거운 관심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봉사는 ‘생활의 일부’
정창완 작가는 은퇴 이후 자유로워진 시간 덕분에 장수사진을 마음껏 찍어 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지금 제 옆에 학생들은 없지만 저와 비슷한 50+세대들이 있습니다.

때론 함께 모여서, 때론 혼자서라도 현직교사시절보다 사진 봉사를 더 많이 하고 있어요.”

 

   

 

이번에도 봉사활동으로 법화요양원을 찾은 정창완 작가는 가져간 장비로 2층 대강당에 간이스튜디오를 설치했다. 50+세대의 사진동호회 회원들이 함께 했다. 회원들이 사진 찍으러 온 분들께 노련하게 메이크업을 해주는 솜씨를 보니 하루 이틀 봉사한 것이 아닌 것 같다. 곱게 단장을 마친 요양원 어르신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순서를 기다렸다.

 

“오랫동안 장수사진을 찍다보니 노하우가 쌓였어요. 인물사진을 찍을 때, 렌즈를 쳐다보지 않고 전혀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분에게 이쪽을 보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 분들이세요. 그런 분들은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지만 렌즈를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비장애인처럼 괜찮은 사진을 찍으려면, 제가 촬영 각도를 바꾸든지 아니면 피사체의 눈빛과 카메라 렌즈가 일치하는 곳을 찾아 그곳을 보시라고 부탁합니다.”

 

   

 

장수사진을 촬영하는 정창완 작가를 취재 하다 보니 벌써 해질녘이 되었다. 길게 줄섰던 어르신들도 모두 사진을 찍고 방으로 돌아갔다. 동호회 회원들은 설치했던 스튜디오의 조명과 삼각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정창완 씨가 말했다.

“저를 따라 오시겠어요? 장수사진이 진짜 필요한 사람에게 지금 갑니다.”

 

 

모든 이들의 얼굴

그는 "2층 스튜디오까지 올라와서 사진 찍은 분들은 건강하신 거예요."라며 1층으로 내려갔다.

 

이동한 곳엔 한 할머니가 누워있었다. 초췌한 눈빛의 할머니에게도 가장 멋진 한 장의 사진을 찍어드리기 위해 정창완 작가는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그리고 할머니께 다가가 뷰파인더를 보여드렸다. 말을 하지 못하시는 할머니와 사진작가는 그렇게 한참동안 눈으로 대화하며 사진을 골랐다. 할머니의 안색이 무척 편안해 보였다. 정창완 씨는 늦은 시간까지 간이 스튜디오를 찾지 못한 어르신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장수사진을 찍었다.

 

    

 

"이분들이야 말로 장수사진이 절실하게 필요하신 분들이에요.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거든요. 그런데도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지 않아요. 아무래도 촬영이 쉽지 않고, 산소 줄을 지우는 등 후보정 작업도 많아서 어렵거든요. 하지만 이분들이야 말로 장수사진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누군가는 해야겠죠?"

 

은퇴 이후 사진작가로 또한 봉사자로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는 정창완 씨.
굳이 긴 설명과 수식이 필요치 않은 그의 모습을 통해 가치 있는 은퇴 이후의 삶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