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으로 하나 된 부자의 행복한 함께 살기–최용환(57), 수혁(24) 부자
Father x Son, 환상 콜라보레이션

 

   ▲부산역을 배경으로 한 이들의 사진은 영화 <태양은 없다>의 친구사이인 두 주인공을 연상시킬 정도로 친근해 보인다.

 

신중년이라면 성공적인 자식과의 관계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된 아들과 같은 패션을 공유하며, 길거리를 활보하고, 집에 와서는 아들의 고민을 상담해줄 수 있는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는 것. 그리고 내 젊은 시절의 이야기가 자식의 미래에 커다란 멘토 역할을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부모자식 관계가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인 것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여기 두 남자가 있다. 아들보다 옷을 더 잘 입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무너진 자존감을 세워주는 아들이다.

 

지난해 3월 서울패션위크, 최수혁씨는 아버지와 함께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찾았다. 대한민국의 패션 피플이 모두 모인다는 그 주에 아버지와 함께 멋지게 빼입고 부산에서 상경한 것이다. 그곳에 입장하기 전 최씨는 지인으로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는다.

 

“수혁아, 아마 너와 아버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질 거야. 준비 단단히 해라.”

 

지인의 이야기에 콧방귀를 뀐 최수혁씨와 그의 아버지 최용환씨는 인생에서 믿기지 않는 경험을 한다.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여기서 포즈 좀 취해주세요.”

 

지인의 말이 맞았다. 믿기지 않지만 이 부자(父子)의 사진을 찍기 위해 두 줄, 세 줄의 카메라 라인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연신 플래시가 터졌다. 이 부자의 패션은 SNS를 타고 네티즌 사이에 큰 화제가 됐다. 무엇보다 아버지인 최용환씨는 이탈리아의 ‘중년 멋쟁이’로 소문난 이탈리아의 패션 에디터 닉 우스터(Nick Wooster)에 버금간다며 찬사가 쏟아졌다.

 

                                       ▲두 부산사나이는 함께 살며 패션이라는 서로의 취미를 공유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 옷을 입고, 아버지는 옷을 구매할 때 아들 것까지 두 벌을 맞춘다. 패션에서 전혀 거리낌이 없으며, 세대 차이도 느껴지지 않는다.

 

수혁씨가 아버지에 대해 거리낌이 없는 것은 ‘함께 살며’ 비밀까지 터놓는 친구 같은 아버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의 친구들과 맞담배를 피우며, 노래방에서 함께 즐기는 아버지는 영락없는 친구다.

 

함께 살기? 이들처럼만 한다면 인생, 재미있게 살 수 있다.

 

 

섹스 이야기를 하는 부자

 

“아들에게 그래요. ‘야동’ 보지 말라고요. 그것은 판타지잖아요. 섹스는 서로가 좋아야 하는 것인데 야동을 보고 배우면 파트너는 전혀 좋지가 않거든요.”

 

아들인 수혁씨는 깊은 고민이 있을 때 집에 빨리 들어가고 싶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상담하는 것도 좋지만, 인생의 깊은 이야기는 함께 사는 아버지에게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민을 털어놓는 아들에게 아버지 용환씨는 결코 충고를 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경험에서 우러나는 스토리텔링과 조언이 있을 뿐이다. 그 고민의 소재 또한 다양하다. 부자지간에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성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아버지는 스스럼없이 한다.

 

“아들과 벽 없이 지내려고 노력해요. 벽 사이엔 거짓이 있으니까요. 아들과 친구가 되려면 제 모든 것을 꺼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비밀이 없어야 둘 사이에 거짓이 없어지지 않겠어요?”

 

그래서 아버지 용환씨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보여줄 것’과 ‘안 보여줄 것’을 가리지 않고, 모두 아들에게 털어놓는다. 그것이 설령 자신이 부끄러워했던 ‘흑역사’라도 말이다. 그것이 옳고 그른지는 아들이 판단할 몫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용환씨. 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배울 것이 있다면 배우고, 잘못된 것이라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장선생님이셨던 아버지 밑에서 6남매 중 막내로 어려운 것 모르고 자랐죠.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다 됐어요. 아버지는 제가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뭐든지 해주셨죠. 철이 없던 저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그것이 너무나 후회가 되더라고요. 제 아들에게는 그런 아버지가 되기 싫었습니다. 꼭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죠.”

 

사실 아버지 용환씨가 아들의 친구들과 맞담배를 피우고, 그들의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젊은 날의 그들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혈기 왕성했던 젊은 시절, 아버지 용환씨는 소위 한가닥했던 ‘놀아본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학교 창문을 180개 정도 깼어요. 자해 시도까지 한 적도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들에게도 이 이야기는 해줘야겠어요. 놀아봐야 인생을 알거든요.”

 

  ▲“사업 실패로 떨어진 자신감이 아들 덕분에 생겼어요. 이제는 부산 서면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저를 알아보고

사진 찍자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정말 놀라운 일이죠.”

 

 

윈-윈의 관계라 함께 살아 좋다

 

“아버지와 같이 살면 좋은 점요? 제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함께 사니 무엇이 좋으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돌아온 수혁씨의 답변이 조금은 의외였다. 워낙 빼어난 패션 센스로 기자를 놀라게 했던 탓에 ‘아버지의 패션 센스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답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의 답변은 소금 간을 하지 않은 음식처럼 조금은 싱거웠지만, 담백하고 영양가가 있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신중년이 들어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의 말 속에 담긴 의미는 ‘경청’이었다. 여러 관계에서 지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것은 바로 소통의 시작이자 성공적인 관계의 출발점 이었다.

 

우리네 자식들도 배워야 할 점은 있다. 바로 부모 세대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북돋워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아들 수혁씨가 아버지를 ‘SNS 핫 피플’로 만들고 싶었던 이유도 이와 같다. 자신에게는 최고의 ‘패션왕’인 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를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계속되는 사업 실패로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아버지를 위해 아들 수혁씨가 패션 사진 촬영을 제안했다. 일종의 아버지 ‘기 살리기 프로젝트’였다.

 

“비슷한 나이대의 중년 중에 아버지의 패션은 독보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는 물론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요. 확신에 차서 아버지께 제대로 빼입고 사진 한번 찍자고 했어요. 그리고 SNS에 사진을 올렸는데 저보다 아버지에 대한 반응이 더 폭발적이더라고요.”

 

처음엔 어색해하던 용환씨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변했다.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어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업 실패로 떨어진 자신감이 아들 덕분에 생겼어요. 이제는 부산 서면(西面)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저를 알아보고 사진 찍자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정말 놀라운 일이죠.”

 

              ▲“비슷한 나이대의 중년 중에 아버지의 패션은 독보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는 물론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

   지만요. 확신에 차서 아버지께 제대로 빼입고 사진 한번 찍자고 했어요.

 

 

함께 살고, 함께 입고, 함께 사업한다.

 

아버지 용환씨의 패션 철학은 뚜렷하다. 바지의 길이는 복숭아뼈 아래로 내려가는 법이 없고, 바지의 통은 항상 7인치를 유지한다. 옷을 살 때는 사이즈보다는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합리적인 가격이어야 한다, 어떨 때는 옷값보다 수선비가 더 많이 나올 때가 있다. 옷은 몸에 꼭 맞게 입어야 한다는 그만의 철칙 때문이다.

 

“아들이 갓 성인이 됐을 때 옷을 입고 나가는데 너무 짜증이 나더라고요. 옷을 너무 못 입어서요. 내가 ‘이렇게 입으라’고 조언을 하면, 자기 뜻대로 입으려고 고집을 피우기도 하고요. 지금은 그때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합니다. 참으로 우습죠.”

 

이런 아버지의 패션 센스를 보고 자란 덕분인지 아들 수혁씨도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아버지와 함께 손을 잡고 패션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버지와 패션 사업을 같이한다는 게 궁합이 잘 맞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젊은이들보다 더 젊게 옷을 입는 아버지 덕에 그런 걱정은 이미 날려버린 지 오래다.

 

그리고 역할도 뒤바뀐 듯하다. 마케팅과 디자인은 아들이 맡고, 모델은 아버지다. 참으로 비범한 사업이다.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아버지는 항상 옷을 살 때 제 것까지 두 벌을 맞추셨죠. 이제는 그 옷을 입고 함께 사업을 하려 합니다. 아버지의 ‘Father’와 아들의 ‘Son’을 결합해 ‘Fason’이라는 이름을 내걸었어요. 늘 아버지와 함께하니 힘도 두 배가 됩니다.”

 

이 부자는 묘하게 닮았다. 여유로운 행동이나 꼿꼿한 자세. 그리고 서로에 대한 배려까지. 함께 살기란 닮아가는 것이다. 무의식 중에 서로를 배려하고 닮아가려 한다는 것. 그것은 가족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함께 산다면 가족의 얼굴을 보라. 함께 살며 닮아 있는 것은 이 부자만의 이야기가 아닐 터이니.

 

 

 

 양용비 기자 dragonfly@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