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 년의 시간 동안 생활경제코치로 일하면서, 각종 경제교육이나 재무코칭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 살림살이와 가정 경제 속사정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소위 ‘재무 설계’라는 게 어쩌면 인간에게 숙명과도 같은 ‘미래 불안’을 어떻게든 납득하고 대비해보려는 부족한 인간들의 애절한 노력의 일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 들수록 돈벌이가 영 시원치 않아서, 일자리가 불안정해서 불안한 것만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인간이란 존재는 매일매일 무언가를 먹고 마셔야 살 수 있는 존재라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밥값 충당하며 살기에도 벅찬 존재라는 사실이 우리를 늘 불안하게 합니다. 게다가 당장 코앞의 미래도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근본적 불안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야 하는 존재죠. 

 

이 근본적인 불안을 어떻게든 극복해보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 지금의 ‘돈’ 중심의 사회구조를 탄탄하게 직조해낸 게 아닐까 싶습니다. 불확실성의 미래에 무엇으로든 교환 가능한 ‘돈’을 보유하고 있는 것만큼 안심이 되는 대안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강신주 씨는 <상처받지 않을 권리>에서 “종교는 내세의 행복을 약속하지만, 화폐는 현세, 지금의 행복을 보증한다.”고 말하며 물신주의 경향의 강력한 매력을 진단합니다. 불편한 진실이죠. 결국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으로 ‘돈’을 축적하려는 욕망은 각종 미래 불안에 대한 두려움의 크기와도 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미래 불안’의 핵심은 ‘노화에 따른 불가피한 쇠락’ 그리고 종국에 이르는 ‘죽음’에 우리 자신이 완전히 무기력하다는 것입니다. 노화는 자연현상일까요, 아니면 질병일까요? ‘100세 인생 시대 개막’은 노화를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규정한 의료산업의 팡파레와도 같습니다. 평균수명 60세를 못 넘기던 시절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골다공증, 고지혈증, 뇌 및 심근경색 등이 대표적으로 노화가 질병이 된 사례입니다. 기술의 진보는 자랑스럽게도 ‘자연사’의 많은 이유를 올올이 찾아내고, 그것을 하나하나 질병으로 규정해내고 치료함으로써 수명 연장에 가열차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다만 의료 서비스를 받으려면 돈이 많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래서 돈이 없으면 의료 서비스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앞서게 됩니다. 

 

단순히 질병의 치료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노후 삶의 질을 내세운 ‘안티에이징’ 시장은 연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니까요. 건강보조용품이나 각종 미용시술 등을 개발해 60~70대를 ‘청노인’으로 중년화 시키고 있습니다. 돈만 있다면 아파도 고치고, 늙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같은 기적이 눈앞에서 버젓이 행해지는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안티-에이징’, 나이듦을 막겠다구요? 생로병사의 순리라는 상식 앞에서 가당치도 않은 말인데, 그럼에도 이 얄팍한 거짓말이 수천 억대 ‘노화지연산업’의 핵심 모토로 버젓이 회자되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좀 더 젊게 살고자 하는 노력이 뭐가 나쁘겠습니까. 다만 ‘안티에이징’ 하느라 ‘웰에이징’할 돈이 부족하다는 게 비극일 뿐입니다. 

 

100세 인생 시대에 진입하면서 인간의 일생 주기를 위의 그림처럼 4단계로 구분해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류사에 새롭게 등장한 시기가 바로 사회적 은퇴 시점인 60세부터 간병기에 진입하기 전까지 제 3의 인생 시기, ‘서드에이지(Third Age)’입니다. 60세에 은퇴해도 남아 있는 기간이 무려 30~40여 년. 일정한 소득 없이 이 기간 동안 먹고 살 돈을 마련한다는 것은 산술적 계산만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오래 전부터 노령화를 고민해 온 유럽의 경우, 이미 서드에이지 기간은 계속 일자리를 갖고 돈을 벌어서 진정한 노후 ‘간병기’를 대비해야 하는 시기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각종 미디어에서는 ‘노후자금 부족’을 호들갑스럽게 걱정하며 안티에이징 욕망과 간병기에 대한 공포를 뒤범벅 시켜 불필요한 돈 낭비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출처] 매일경제 용어 사전

 

1인 1암보험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 성인들에게 <암과 싸우지 마라>라는 책을 쓴 방사선 암치료 전문가 곤도 마코토 씨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암에는 진짜암과 유사암이 있다. 유사암은 방치해도 진짜 암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진짜 암은 현대 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으니, 수술과 항암제 치료를 받아봐야 고통만 가중시키고 생명을 단축시킬 뿐이다. 어느 쪽이건 수술을 하지 않는 쪽, 항암치료를 하지 않는 쪽이 고통이 적고 오래 산다.’ 정말 그럴지 진실 여부야 각자 판단의 몫이겠으나, 이 얘기대로라면 암을 걱정하느라 미리 지출하는 보험료 비용이나 실제 발병 시 각종 치료에 들어갈 적잖은 비용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 비용은 아닌 셈입니다. 만약 암 걱정을 놓으면 부족한 노후 자금 중에서 마음 놓고 삶의 질 향상 쪽으로 돌려 쓸 수 있는 자금이 확보됩니다. 

 

곤도 씨의 또 다른 책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요령> 마지막 장에서는 자신의 ‘리빙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리빙윌’이란 미리 써두는 의료 관련 유언을 뜻합니다. 그는 구급차를 부르지 말 것, 인공호흡기를 사용하지 말 것, 튜브를 통한 영양공급 등 일체의 연명의료를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적어 집에 보관해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연명의료결정법이 2016년 1월 8일 통과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면 무리한 연명치료를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중단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주어진 삶은 아닐지라도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다가 노화되어 그 소용이 다해질 때 인위적 연명 치료 없이 떠나기를 결정한다면, 간병기 대비용 자금 준비 여력 또한 지금의 삶의 질 향상 쪽으로 돌려 쓸 수 있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뭐 대단한 재무목표 때문이라기보다 그냥 하루하루 나이 들어가며 먹고 사는 데만도 제법 큰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티에이징’할 여력도, 괜한 투자했다가 까먹을 돈도 우리에겐 없습니다. 가진 것 내에서 하루하루 잘 먹고 사는 계획, 건강할 때 조금이라도 벌어 생계비를 보탤 계획이 훨씬 중요하죠. 어쩌면 더 벌 궁리보다 덜 쓸 궁리를 통해 생활비를 줄이는 것도 버는 것 못지않은 재무 계획이 됩니다. 연비를 낮추면 삶의 부담이 확실히 줄어드니까요.
 
‘생로병사’의 순리에 순응하게 되면,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미래 일들에 대비하고자 악착같은 노후준비로 오늘을 소진하기보다, 매일매일 사라지는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해집니다. 지금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이 해맑은 손주는 곧 외계어(?)를 구사하는 질풍노도의 사춘기로 성장할 것입니다. 잔소리 충만한 배우자는 영원히 내 곁에 있지 않을 것이구요. 지금 내 곁에서 매일매일 복닥거리며 싸우는 그 사람들과의 인연은 몇 년 정도 남아있을까요. 이 모든 ‘현재’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현금흐름을 만드는 일이 곧 ‘웰에이징’을 돕는 재무 설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생의 끝을 천천히 생각해보면서 거꾸로 지금의 삶을 조망해보는 것은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풀무질을 가하여 ‘몇 십 억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과장되어버린 재무 설계는 금융상품 판매를 위한 허언증 같은 마케팅일 뿐입니다. 금융상품에 얼마의 돈을 가지고 있고, 또 얼마의 수익률을 달성해주는지가 삶의 질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다 쓰고 죽어라>의 저자 스테판 폴란은 ‘얼마를 벌 것인가 보다 어떻게 쓰고 갈 것인가’를 고민하라고 조언합니다. 돈을 위해 삶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해 돈을 계획하는 것입니다. 남은 기간 내가 원하던 삶을 사는 데 주어진 시간과 돈을 쓰고 살기에도 부족합니다. 돈을 여기저기 굴려 이자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노력을 하는 바로 그 시간이 남은 삶의 우선순위와 가치를 생각해볼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