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들과 대포 한잔 마시다 기분 좋게 취하면 일종의 레퍼토리 같은 다짐을 한다. “우리 이다음에 지어서 함께 같이 살자!” 세상 어딘가에는 이런 다짐을 지켜낸 친구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혹시 있다면 ‘브라보 마이 라이프’ 편집국으로 제보 부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자!”며 잔만 부딪칠 뿐!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그래서 친구들과 마음 맞을 날을 기다리다 못해(?) 공동체 주택을 목적으로 만나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을 보러 갔다. 북한산 정기 제대로 받으며 동네 이웃과 화합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주택 ‘여백’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살짝 엿들어봤다.

 

 

공동체 주택에 함께 살아요!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북한산 봉우리가 바라다 보이는 이곳은 서울 인접 지역이면서도 맑고 공기 좋은 곳이다. 멀리서도 찾아오는 맛집도 줄지어 있어 매력 넘치는 동네다. 천년고찰 흥국사로 접어 드는 초입에 동짜리 공동체 주택여백 있다. 2016 8,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세대가 입주해 시골 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연립주택이지만 기획 단계에서부터 차별점을 두고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공급자가 지어놓은 집에 들어가 살았다면 여백은 집주인들이 머리를 모으고 생각을 공유해 즐거운 우리 집을 만들었다. 소비자, 그곳에서 살아갈 이들의 주도로 지어진 집이다. 여백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보기 위해 김수동 더함플러스협동조합 이사장과 함께 공동체의 촌장을 맡고 있는 민병권(65) 대문을 두드렸다. 용인에 살던 민병권 씨는 자식 출가시키고 공동체 주택을 짓는다는 소식에 터도 보고 그냥 ‘OK!’ 외쳤다 한다.

“2015 초에 서울시 은평구에서 공동체 주택을 건축하기 위해서 하우징쿱 주택협동조합이 입주 희망자 모집을 했어요. 여기 사는 사람들이 그때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원래는 은평구에 집을 지으려고 했는데 땅이 여의치 않아서 고양시 쪽에 터를 잡았어요. 2016 8월에 공식적으로 준공검사가 떨어졌습니다.”

공급자가 만든 주택으로 들어가면 편할텐데 건축할 땅을 보러 다니는 일부터 내부 인테리어 바쁘게 돌아다니고 움직여야 했다.

이런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집도 짓고 조금은 다르게 사는 거죠. 구조도 사는 사람의 기호와 성격, 취향에 맞게 꾸몄습니다.”

민병권 집은 전적으로 부인 이OO(65) 씨의 의견에 따랐다고 한다. 어쩐지 안의 주방 면적이 꽤나 컸다. 자체가 주부의 공간처럼 보였다고나 할까?

집집마다 생긴 달라요. 저는 물건들을 공간 안으로 넣는 것을 많이 연구했어요. 그리고 안방을 줄이고 거실을 넓혔어요. 아마 안방이 넓었으면 지금의 공간도 없었을 거예요. 이사 가구도 버리고 왔어요. 집이 좁기도 하지만 최대한 소박하게 살려고요.”

 

꼰대는 싫지만 멘토는 되고 싶어요

사실 처음부터 입주민들과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다. 오로지 공동주택에 관심있는 이들이 모인 .

입주 전부터 입주자 회의를 했습니다. 설계 회의도 하고 땅도 같이 보러 다니고.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어요. 밥도 먹고 말이죠. 그러니까 입주할 분위기부터 다르죠. 아는 사람들이니까요. 성향은 물론 다르지만 서로 알고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죠.”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어울려 사는 공동체 주택. 불편한 것이 없는지 물어봤다. 동네 사람들이라 해도 또래들과 어울리고 공유하기 때문이다.

불편한 것은 없어요. 우리끼리만 있어서 저희가 지금 말을 많이 하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과 있을 때는 되도록 말을 조금만 하자 그래요. 멘토는 되고 싶지만 꼰대는 싫거든요.(웃음)”

하루 이틀 보고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고 사는 여백 사람들. 이들은 달에 밥상모임도 잊지 않고 갖는다. 입주하고 줄곧 왔으니 벌써 1 반이나 됐다. 날짜만 정해지면 각자 반찬과 밥을 지어 한곳에 모여 밥을 먹는다고 했다.

 

 

이웃과도 사이좋게 지냅니다

여백 사람들이 챙기는 것은 서로뿐만이 아니다. 바로 터를 잡은 동네 사람들과의 교류도 놓치지 않는다. 거기에 앞장서는 사람이 바로 촌장인 민병권 씨다. 착공 전에는 동네 어르신을 찾아가 인사드렸다. 입주 전에는 여백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잔치도 열어드렸다. 입주하던 날에는 여백 사람들의 입주를 환영하는 현수막을 마을 입구에 내걸기도 했다. 이후로도 꾸준하게 교류하고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토요일이 되면 동네 청소를 해요.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주변이 엄청 지저분했어요. 아무래도 북한산 입구라 버스정류장에다 담배꽁초 버리는 사람들도 많고요. 우선 버스에서 내리는 어르신들에게 열심히 인사를 했어요. 정류장 내려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다 우리 동네 어르신들이잖아요. 우리가 먼저 인사했죠. 그리고 여백이 착공을 할 때 이 지역 시의원을 지냈던 어른을 찾아가

뵀습니다. 이 분 가족이 몇 대째 살아온 곳이더군요. 여러 가지 마을 유래도 알려주시고 그랬어요.”

여백 사람들은 봄이 되면 텃밭 가꾸기도 한다. 마을의 통장과 부녀회장이 쓰지 않는 나대지를 수소문해 줘 텃밭을 가꾸고 있다. 토마토도 심고, 상추에 감자 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텃밭에 애정을 쏟는단다.

재밌는 게 세대가 각자 있는 능력이 다르잖아요. 호기심이 발동해 텃밭 가꾸기를 제가 하자고 했고 누군가는 연구를 하더라고요. 마을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도움을 받기도 하고요.”

다양한 세대가 살아 서로 덕을 보고 사는 같다고 했다. 잡고 사는 동네 어르신과는 여백 촌장인 민병권 씨가 교두보 역할을 하고 마을에서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해내고 있다.

새로운 건축물이 생기고 뭐하는 사람들이 들어왔나 마을에서도 궁금했겠죠. 그런데 마침 통장이 나하고 나이가 같아서 편하게 지낼 있었습니다. 이곳 분들과의 교류는 제가 담당합니다. 젊은 사람들만 모여 이곳에 집을 지었으면 이렇게 마을 사람들과 융화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젊은 세대들은 이렇게 나이 우리들 덕을 보는 거죠. 그리고 저희도 컴퓨터 세대가 아니니 전문적인 기술이나 새로운 것과 관련해서는 젊은 세대의 도움을 받고 말이죠.”

부동산에 시세가 걸리는 집도 아니고 그저 집이 집인 . 작은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으며 함께 가꾸고 만들어간 . 사람들은 온화하고 웃음 속에 기품이 넘친다. 혼자, 우리 가족만이 아니라 함께여서 너무나 행복한 우리 집은여백공동체 주택이다.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bravo_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