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북서쪽 160Km 지점, 차로 1시간 이동하면 잉글랜드 웨스트 미드랜드 카운티 자치구인 코번트리(Coventry)라는 고풍스러운 도시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14세기에 인구가 7,000명으로 잉글랜드에서 4번째로 큰 도시였지만, 2차 대전 후 폐허가 되었다가 재건되었다. 코번트리는 중세마을에 온 듯 고대의 성과 같은 건물이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 착각이 들 정도로 고요함과 품위를 갖춘 마을이다. 코번트리라는 지명은 이곳에서 자라는 코바라는 나무 이름에 유래했다고 한다. 코번트리 지방에는 실존 인물이었던 고다이버 부인(Lady Godiva)에 얽힌 설화와 함께,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 호색가, 캐기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 Peeping Tom의 유래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야기는 1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1세기 초 영국 중서부에 있는 코번트리에는 지역을 통치하던 봉건 영주 레오프릭 백작(Leofric, Earl of Mercia)이 살았다. 그는 농민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높은 세금을 부과하여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과도한 세금으로 힘들어하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영주의 젊은 부인고다이버(Lady Godiva, 당시 16세였다고 전해짐)가 남편인 영주에게 농민을 위해 세금을 낮춰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영주는 아내의 간청을 거절하는 대신 다시는 이런 간청을 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겠다는 뜻으로 "당신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성내를 한 바퀴 돈다면 모를까" 라고 말했다. 

 

백성의 고충을 덜고자 하는 고다이버 부인의 곧은 의지는 남편의 황당한 제안을 실천하기에 이르렀고, 이러한 사실은 마을 주민과 농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고다이버 부인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성내 영지를 달리기로 한 날 마을 주민들은 일제히 집안의 모든 커튼을 쳐놓고 외출을 삼갔다. 그녀의 용감한 행동에 감동한 남편은 약속대로 주민들에게 거두는 세금을 내렸으며, 이후에도 부인의 행동에 감명을 받아 훌륭한 영주로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John Collier 작 'Godiva 부인'

 

고다이버 부인의 이야기는 유럽 전 지역에서 널리 알려져 연극, 음악, 미술, 등 예술계에서도 그녀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 많이 생겨났다. 영국의 화가 John Collier가 그린 'Godiva 부인' 이라는 작품을 비롯해, 코번트리 지방에는 알몸으로 말을 타고 있는 고다이버의 모습을 묘사한 동상과 다양한 예술작품이 있다. 백성을 그녀의 사랑하는 마음, 숭고한 희생정신, 적극적인 자기 표현으로 나체 시위를 하는 저항 정신을 높이 기리고 있다.

 

고다이버 부인은 1086년 영국의 왕 윌리엄 1세가 작성한 토지조사부인 둠즈데이북(Domesday Book)에 기록된 11세기 코번트리를 다스리던 실존인물 머시아(Mercia) 백작 레오프릭의 아내 고디푸(Godgifu 혹은 Godgyfu)로 추정된다. 고디푸란 이름은 앵글로색슨어로 ‘신의 선물’(God's Gift)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다이버는 이 고디푸(Godgyfu)가 라틴어식으로 발음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의 전설에서 비롯된 고다이버이즘(Godivaism)은 전해 내려오는 관습이나 상식, 상황의 불리함을 과감히 깨고 역으로 생각해 과감하게 정면 돌파하는 정치 행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지금도 매년 9월이면 이 곳에서는 그녀를 기리는 Godiva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Godiva Festival

 

그런데 고다이버 부인이 알몸으로 성내를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을 집 안에서 몰래 엿본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Tom이라는 재단사였다. 하늘의 벌을 받은 건지, Tom은 며칠 후 바로 눈이 멀었다고 한다. 지금도 코번트리 지방의 한 건물에서는 정오만 되면 Peeping Tom 인형이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오늘 날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 호색가, 관음증 환자를 일컫는 'Peeping Tom'은 이러한 역사와 전설이 혼합된 이야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뉴욕 시에서는 그런 사람을 처벌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Peeping Tom 법이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에 의해 2013년 3월 22일 제정되기도 했다. 이 법에 의해 뉴욕 시는 더욱 안전한 도시로 거듭났다. 뉴욕 시의 모든 곳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게 되었고, 그 결과 모든 공중 전화기와 전신주에 카메라가 부착되었다. 또한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는 공중에 띄운 무인기로 뉴욕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감시한다고 한다.


고다이버라는 이름이 우아하게 들린 덕분인지, 영화 제목에서부터 밴드 이름에 이르기까지 이 이름은 대중문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영국의 대표적 록밴드 Queen의 리드보컬인 Freddie Mercury(1946~1991)도 ‘Don't stop me now' 라는 곡에 가사를 붙이면서 Lady Godiva를 외친다. 

 

'Don't Stop Me Now' - Queen (written by Freddie Mercury)

 

Tonight I'm gonna have myself a real good time

오늘밤 난 내 스스로에게 정말로 좋은 시간을 선사할거야

 

I feel alive and the world turning inside out - yeah

살아있음을 느끼고, 세상이 뒤바뀌는 것을 느낄거야

 

And floating around in ecstasy

그리고 그 황홀함 속에서 떠다닐거야

 

So don't stop me now don't stop me

그러니 나를 막지마, 나를 막으려 하지 마.

 

'Cause I'm having a good time having a good time

왜냐면 나는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I'm a shooting star leaping through the sky Like a tiger defying the laws of gravity

나는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호랑이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이야

 

I'm a racing car passing by like Lady Godiva

나는 레이디 고디바처럼 스쳐 지나가는 레이싱카야

 

I'm gonna go go go

계속해서 전진할거니

 

There's no stopping me

날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벨기에산 GODIVA 초콜릿

 

그녀의 이름을 제품 브랜드 명으로 사용한 기업들도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업체가 말을 탄 고다이버의 이미지를 로고로 사용하고 있는 고급 초콜릿 제조업체 'Godiva Chocolatier'이다. 고다이버 전설이 유럽은 물론 미국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1958년부터 고다이버를 브랜드로 택했다고 한다. 1926년 벨기에에서 출발해 궁중에 납품하는 최고급 초콜릿 브랜드였으나, 2007년엔 터키 자본으로 넘어갔다. 전 세계 1만여 개의 판매 업소(미국에만 450개)를 두고 있는 초콜릿 재벌이기도 하다. 우스갯소리로 당이 떨어지면 즐기던 고디바 초콜릿이 이제 새로운 감흥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