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젊은 날의 상큼함이 줄어든 자리를 경험과 지혜로 채우는 사람들,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내려놓고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들. 그것이 취미건 일이건 열정을 갖고 무언가 시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아름답다. 지난 두 달, 일주일에 한 번씩 그런 분들을 만났다. 손주를 위해 동화구연을 배우는 아름다운 사람들 속에 나는 있었다. 

 

사진1+프로그램+홍보포스터+마실+제공-horz.jpg
▲ 프로그램 홍보 포스터 ⓒ 마실 제공 / 집중력을 위한 손유희 배우는 중 ⓒ 50+시민기자단 정용자 기자

 

이 수업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 서부캠퍼스 인생학교 출신이며 오카리나 강사로 활동하는 김명희 님이 운영하는 문화공간 ‘마실’에서 8월부터 매주 한 번 8주 동안 진행되었다. 2022 어르신을 위한 문화프로그램으로 은빛나래 이야기보따리 선생님을 확산하는 취지랄까? 동화구연 하는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를 상상하면 된다.

 

동화구연뿐 아니라 전문가와 함께 그림책을 읽고 구연을 하기 좋은 내용을 골라 각자의 스토리북을 만들고 구연에 필요한 소품까지 직접 만들어 매주 발표와 피드백을 갖고 마지막 날 발표회를 하는 활동이 연계된 프로그램이라 의미가 있었다. 수강생 중에 마침 어린이집 다니는 손녀를 돌보는 분이 있어 발표회를 마치고 그동안 익힌 실력으로 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다 같이 재능기부를 함으로써 더욱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사진3+동화구연+전문가+온진숙+강사님+사진+정용자-horz.jpg
▲ 동화구연 전문가 온진숙 강사 / 늘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듣는 홍동식·유혜순 님 부부 ⓒ 50+시민기자단 정용자 기자

 

나는 지난해부터 문화공간 ‘마실’의 소소한 마을 학습 프로그램에 부강사로 참여하는 중이다. 6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는 어르신이라는 단어가 붙어 50+세대의 외면(노인이라는 말도 싫지만, 어르신이라는 표현도 늙었다고 단정하는 느낌이라 거부감을 갖기 때문)을 받기 일쑤지만 시야를 넓히면 유익한 프로그램이 참 많다. 황혼육아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요즘, 동화구연을 배워 손주 앞에서 손짓 발짓 하며 들려줄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지 아니한가? 아이 입장에서도 그 어떤 전문가보다 즐거울 것이 틀림없다.

 

사진5+다양한+표정이+있는얼굴+소품+만들기+사진+정용자+-horz.jpg
▲ 다양한 표정이 있는 얼굴 소품 만들기 / 소품 만들기 수업 중 ⓒ 50+시민기자단 정용자 기자

 

사실 나도 경험이 있다. 큰딸이 스물다섯에 엄마가 되었을 때, 준비 없이 나는 할머니가 되었다. 엄마도 버겁던 내게 쪼그만 꼬맹이가 “함무니”, “함무니” 하고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닐 때 알았다. 할머니는 내 아이가 엄마 혹은 아빠가 되면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훈장 같은 이름이었다. 내 부모의 딸로 태어나 아내가 되고 다시 엄마가 되어 긴 시간이 흐른 후 받을 수 있는 이름.

 

손녀가 태어났을 때 나도 어린이책스토리텔러3급 자격증을 땄다. 뭔가 복잡해 보이지만 요즘 시대에 맞게 명칭이 바뀐 동화구연 자격증이다. 당시 마포구 평생학습관에서 동화구연 수업을 들은 후 자격증 시험을 접수하고 시험 날 내 차례가 되어 심사위원 두 분 앞에 서서 그동안 외운 동화를 구연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시간 안에 시연해서 통과해야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내가 했던 동화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동화 ‘금도끼 은도끼’였다.

 

사진7+수강생들이+직접+만든+동화구연+소품+사진+정용자+.jpg
▲ 수강생들이 직접 만든 동화구연 소품 ⓒ 50+시민기자단 정용자 기자 

 

홀어머니와 사는 착한 나무꾼이 도끼로 나무를 찍다 도끼를 연못에 빠트려 울고 있었는데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연못에서 신령님이 나타난다. 자초지종을 들은 신령님은 낡은 쇠도끼 대신 번쩍번쩍 빛나는 금도끼를 가지고 나와 “이것이 네 도끼냐?” 하고 묻는다. 마음씨 착한 나무꾼은 아니라고 한다. 이어서 들고 온 은도끼도 아니라고 한다. 세 번째 낡은 쇠도끼를 가지고 나와 묻자 “맞습니다요. 그 도끼가 제 것입니다요.” 하면서 수없이 고개를 조아려 감사 인사를 한다. 착한 마음씨에 감동한 신령님은 금도끼와 은도끼까지 주고 사라진다. 집으로 돌아온 나무꾼은 어머니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내용이다. 

 

사진8+소품+만들기는+강사님도+함께+사진+정용자+-horz.jpg
▲ 소품 만들기는 강사님도 함께 / 어린이집에 다니는 손녀를 위해 동화구연을 배우는 김정회 선생님 ⓒ 50+시민기자단 정용자 기자

 

자격증을 받기 전부터 세 살짜리 손녀 앞에서 동화구연을 해주었다. 손녀의 집중력과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나중엔 이야기를 달달 외워서 제가 해주겠다며 오히려 내게 들려줄 정도였다. 동화구연 전문가보다 실력은 부족하지만, 확실히 아이의 만족도는 그 이상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올해 초등학생이 된 손녀는 우리 집에 와서 자거나 시간을 보낼 때 책을 몇 권 들고 오는데 요즘은 구연 대신 한 쪽씩 번갈아 읽기를 주로 한다. 글자가 많은 곳이 나오면 슬쩍 내게 넘기며 “할머니, 이제부터 할머니는 두 쪽, 나는 한 쪽 읽으면 어때요?” 하면서 꾀를 부리기도 하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에 동화구연도 한몫했을 것이다.

 

사진10+서부+캠퍼스에서+오카리나+커뮤니티+활동도+열심히+하는+전순애+선생님+사진+온진숙-horz.jpg
▲ 서부캠퍼스에서 산들애오카리나 커뮤니티 활동도 열심히 하는 전순애 선생님 ⓒ 온진숙 / 동화구연에 등장하는 할아버지 소품 ⓒ 50+시민기자단 정용자 기자

 

이번에 동화구연을 배운 분 중에 부부가 있다. 남편이 정년퇴직한 후 함께 이것저것 배우러 다닌다는 두 분은 늘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 수업에 참여했다. 한 분이 나가서 시연할 때면 다른 한 분은 지긋이 바라보거나 이것저것 간섭하기를 마다치 않는다. 지긋하게 바라보는 쪽은 남편이고 이것저것 알려주며 간섭하는 분은 대개 아내 쪽이다. 자세도 다르다. 남편은 아내를 향해 앞으로 기울이고 아내는 한껏 뒤로 젖힌다. 아내는 늘 남편의 명찰까지 챙기고 남편은 늘 출석부에 적혀있는 아내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어느 날은 서로 바꿔서 할 때도 있다. 표정은 물론 희끗한 머리색도 닮은 이 두 분을 볼 때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나란히 앉아 구연에 필요한 소품을 만들고 시연을 할 때면 지긋이 바라봐 주는 노년의 부부는 미사여구 필요 없이 아름답다.

 

사진12어린이집에서+더욱+빛나던+두+분+사진+온진숙-horz.jpg
▲ 어린이집에서 더욱 빛나던 두 분 / 이 따스한 눈빛은 전문가가 절대 따라올 수 없다. ⓒ 온진숙 

 

동화구연을 배워두면 서울시에서 하는 중장년(어르신) 일자리 이야기할머니사업단(유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에 참여할 때도 유리하다. 사실 살다 보면 대부분 할머니가 되고 할아버지가 된다. “내가 벌써?” 하며 슬퍼하기보다 관점을 살짝 틀어 꽃잎처럼 켜켜이 접혀가는 주름에 지혜와 경험이 쌓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이참에 동화구연을 익혀 이야기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로 꼬맹이들의 인기를 거머쥘 생각은 없으신지?

 

이야기할머니사업이나 동화구연 등을 배울 수 있는 어르신 프로그램은 서울시 홈페이지나 각 구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아직 어르신이 어색한 신중년에게 더 좋은 방법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 서부캠퍼스 교육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다. 서부캠퍼스 홈페이지에 들어오면 50+세대를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일자리를 확인할 수 있다.

 

 

50+시민기자단 정용자 기자 (jinju106@naver.com)

 

 

정용자.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