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장

연령 규범이 차별과 배제 만들어

세대 구분 없애야 모두에게 기회

고령자 관점에서 사회 구조 개선

'함께 사는 분위기' 자연스레 형성

노인도 사회생활 어려운 청년 이해

서로 존중할 때 지속가능 사회 돼

"혐오 방치하면 부메랑 돼 돌아와"

노인 스스로도 ‘인생 전환’ 필요


실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 ‘안티 에이징(Anti-aging·노화방지)’은 우리 사회가 늙어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준다. 노인 되기를 거부하는 거대한 안티 에이징의 사회다. 시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늙어간 이들에게는 ‘틀딱’이나 ‘꼰대’ 등 멸칭을 붙인다.

멸칭은 노인에게 반감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을 우리와는 ‘다르고,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는다. 그리고 이는 물리적인 차별과 배제로 번진다. 노인 출입을 제한하는 ‘노시니어존(No Senior Zone)’이 그 예다. 몇 달 전 한 카페에서 ‘60대 이상 어르신은 출입할 수 없다’며 노시니어존 공고를 내 화제가 됐다.

노인을 배제하고, 멸칭으로 부르는 것이 우리 사회와 개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라이프점프는 지난 11일 정순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원장을 서울 서대문구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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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정순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원장이 노인 혐오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정예지 기자


나는 ‘필요 無’의 존재? 반문하는 노인들

혐오표현의 방치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노인 자살 1위’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에서 혐오표현을 접한 이들의 절반이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의 ‘2019 자살예방백서’에서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자살률(인구 10만 명당)은 2015년 기준 58.6명으로 OECD 회원국 18.8명보다 3배가량 높았다.

노인들을 향한 혐오표현은 ‘우리는 사회에 필요 없는 존재’라는 잘못된 각인을 남긴다고 정 원장은 말한다. “누가 내 외모를 가지고 비하하는 걸 우리는 아주 싫어하잖아요. 그런데 틀딱 등 노인의 신체적인 특성을 혐오표현의 도구로 삼는 경향이 있어요. 노인들이 처음에 들었을 때는 이해를 잘 못해요. 그런데 점차 그 말을 이해하게 되면서 ‘내가 정말 그런 존재인가’ 의문을 가지게 되고, 정신 건강에 위협이 되죠.”

나이로 구분하지 않는 ‘연령통합사회’

정 원장은 ‘연령통합사회(Age-Integrated Society)’에 이르면 노인 혐오가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령통합사회는 나이가 기준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연령에 따라 사회 진입과 은퇴 등 어떤 곳에서 무엇을 할지 구분되는 ‘연령분절사회(Age-differentiated Society)’다. 정년 60세가 되면 더 일하고 싶은 의욕과 충분한 경력이 있어도 은퇴에 내몰린다. 강남이나 성수 등 ‘핫플’은 젊은이들이 찾는 곳, 종로나 동대문구 일대는 노인들이 찾는 곳 등 세대가 모이는 장소가 구분돼 있다. 이렇듯 세대 간 사회적 접촉이 부족한 곳에서는 연대가 어렵고, 타 세대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강화된다.

반면 연령통합사회에서는 세대가 일상을 공유하면 타 세대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 부정적 인식을 낮출 수 있다. 연령통합사회에서는 10~20대에는 공부를 하고, 30~50대는 일을 하고, 60대부터는 노후를 즐긴다는 연령규범이 필요하지 않다. 현재의 관심사에 맞게 교육과 일, 여가를 고루 즐겨 세대가 섞여 생활한다. 정 교수는 미국 사례를 꼽았다. 미국 도넛 가게에는 젊은이와 노년층이 섞여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카페에 청년이 대다수다. 이에 노인들이 ‘나는 가면 안 되나’하고 생각하면서 노인이 갈 수 있는 곳과 청년이 갈 수 있는 곳이 구분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원장은 “연령통합사회란 우리가 나이로 역할 규정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그래야 모두에게 기회가 열린다”고 강조했다. 미국에 중년 스튜어디스가 흔하듯 ‘65세가 됐으니 은퇴해야 해’ 같은 강제적인 시스템을 없애 나이가 얼마든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게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곳곳에 노인의 관점 심는 ‘연령 주류화’ 필요

이를 위해선 ‘연령 주류화’도 필요하다. 연령 주류화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취약 계층에 놓인 노인들의 관점으로 우리 사회를 평가하고, 그들의 시각을 우리 사회와 정책에 반영하는 과정이다. 정 원장은 연령주류화가 고령 친화적인 사회로 가는 열쇠라고 보고 있다. 물리적으로 버스 번호를 잘 보이게 한다던가, 문턱을 없애는 노력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는 “사회적으로 노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며 “우선 노인을 향한 혐오와 차별, 이런 것들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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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정순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원장이 노인 혐오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정예지 기자




노인 복지만 앞세워선 연령통합 어려워

조부모는 전쟁을 경험하고, 부모는 독재와 산업화를 겪고 아이들은 글로벌 사회를 살고 있다. 이렇듯 세대 경험이 상이한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연령통합을 이룰 수 있을까. 정 원장은 “노인 복지만 내세워서는 진정한 연령통합을 이루기 어렵다”며 노인 정책과 더불어 청년 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청년 시절 고도성장기를 경험한 50~60대는 사회에 나갈 때 기회가 많았다. 일자리도 어느정도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부모 세대보다 잘 살 가능성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윗세대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귀 기울어야 한다고 정 원장은 말한다. 물론 힘들게 일한 노인 세대들도 존중받아야 한다. 정 원장은 “청년들은 어른들을 보며 전쟁을 겪고, 민주화 경험을 가져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라고 받아들이고, 또 어른들은 우리 청년들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지 이해하고 차이를 넘어서야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인 스스로 ‘인생 전환’도 해야 한다. 노인의 사회 배제·혐오를 줄이기 위해 사회 구조와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노인 스스로도 나이 듦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는 “80대인데 ‘30대 때 이랬는데…’하면서 살 수는 없다”며 “등산도 노인이 되면 심장 질환 때문에 산의 높이를 낮추라고 하듯 인생 2막에는 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정 원장은 나이 든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고 미래인만큼 혐오표현은 부메랑처럼 돌아온다고 덧붙였다. 정 원장은 “혐오를 방치하면 본인도 그 대상이 되는 것”이라며 “혐오 표현을 사용하고, 방치해도 되는지 우리 사회가 질문해 봐야 한다”고 힘줘말했다.


[상기 이미지 및 원고 출처 : 라이프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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