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셰어하우스, 코하우징이라는 단어를 여기저기서 자주 듣는다. 텔레비전 프로에서는 셰어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1인 가구가 30%에 이르면서 기존의 단독세대를 위한 주거형태에서 셰어하우스처럼 공유주거 형태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정신적으로 의지가 필요하거나 혼자에 대한 불안감 같은 심리적 요인이 이러한 관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측면도 있은 것 같다. 우리의 주거현실을 들여다보면 그럴만도 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과거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던 시절에는 집이 너무도 부족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도 그렇지만 특히 지방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은 서울에서 셋방 살이부터 시작했다. 마당과 수도간이나 펌프시설을 같이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화장실도 여러 집이 같이 사용했다. 김장할 때는 마당에서 주인집부터 세 사는 사람들이 다 모여서 서로 돕고 나누었다. 그 시절 단독주택의 구조는 대부분 세를 놓을 수 있도록 주인집과 분리된 방과 작은 주방이 있는 구조였다. 소위 집장사들이 집을 지었고 구조나 크기가 거의 똑같은 집이 복제하듯이 지어졌다. 제법 큰 집은 여러가구가 세들어 살았다. 그야말로 대가족처럼 살았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 간에 희로애락이 있었으니 그것 자체로 늘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였다.

 

주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그 해법으로 등장한 아파트는 그 편리함과 서구식 주거공간이 주는 신선함으로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소위 말뚝만 박으면 분양이 되었다. 건설회사들이 너도나도 아파트 시공에 뛰어들었다. 그동안 마을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던 지역들이 재개발이라는 불도저식 개발에 초토화 되었다. 오랜세월 그 동네에서 살면서 서로 끈끈하게 맺어졌던 인간관계는 재개발로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이 다 벌어져 버렸다. 특히 재개발은 세를 사는 사람들에겐 재앙으로 다가왔다. 경제력이 없는 그들은 개발이 진행될수록 자꾸 서울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렇게 마을을 허물고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입주했다. 아파트를 대거 짓던 초기에는 편복도식으로 많이 지었다. 요즘 대부분의 아파트처럼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두집이 공유하는 구조를 계단실 형 아파트라 부른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보통 한 층에 두집 현관이 마주하고 있는 구조다. 이에 비해 편복도식 아파트는 복도를 따라 여러집을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서 엘리베이터나 계단의 숫자를 줄일 수 있다. , 아파트 전체 공사비를 줄일 수 있어서 계단실 형 아파트보다 조금 저렴하게 공사가 가능하다. 여러집 현관이 복도를 따라 죽 있어서 통행에 좀 불편하고 현관을 열면 집안이 슬쩍 들여다 보이므로 프라이버시도 좋지 않다.

 

 

그러나 편복도형에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공동체의 삶이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 공사비를 줄이려는 의도에서 채택된 편복도식 아파트가 마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현관으로 가는 동안 같은 층에 사는 옆 집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이 많다. 문을 조금 열어둔 집앞을 지날 때는 음악이나 대화가 살짝 들리기도 한다. 가까이 지내는 이웃이라면 잠시 들여다보면서 인사를 나눌 수도 있다. 이십여 년 전에 편 복도식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과 함께 했던 여러 일들을 떠 올리다보면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비가 오는 날 어느 집에선가 부침개를 부치면 여러 집 아주머니들이 그 집에 몰려가고 남자들은 복도 한 켠 비상계단 앞에 자리를 깔고 막걸리 파티를 열곤 했다. 부부가 모임에 갈 때 애기를 옆 집에 맡기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주말엔 온동네 남정네들이 족구장에 모이곤 했다. 급기야 여러 가족이 단체로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제 우리를 포함해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간 집도 많고 그 근처에서 아직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 때 같은 층에서 살았던 이웃 모임을 아직도 지속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가족은 그 시절 옆집 분들과 형님 ,형수님 하면서 지내고 있다. 이제 아이들은 다 커서 성인이 되었지만 명절에는 그 집에 찾아가서 소주 한잔 나누는 사이로 살고 있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새로 이사 한 계단식 아파트에서는 현관을 마주하고 있는 앞집에 들어가 본 적도 없다. 아랫집에서는 주방 천장, 즉 우리집 주방바닥에서 물이 샌다고 항의를 하고 얼굴을 붉히는 통에 사이가 나빠졌다. 윗 집은 밤 늦은 시각이나 새벽에 가구를 옮기는 지 덜그덕 거리는 소리 때문에 상대하기 싫어져서 왕래를 안한다. 생활리듬이 다른 주민들은 영영 만나기 힘들다. 그나마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날 새로운 얼굴들이 보이긴 하지만 쓰레기를 들고 인사를 나누기도 멋쩍어 그냥 넘어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주민들이 가끔 있지만 그나마도 각자 휴대폰만 쳐다보다가 내려버리니 안면을 트기 힘들다. 전국적으로 아파트가 주거유형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0%를 넘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나라 전체 공동체가 70%쯤 망가졌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그 집은 사람들의 삶을 한정할 수 있다는 우려처럼 지금까지 만들어진 아파트가 공동체를 활성화 할 수 있는 유형의 주거형태로 재개발 될 때 까지는 한지붕 밑에 살지만 모두들 서로 교류없이 살아야 할 것 같다.

 

최근에 와서 이런 삭막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 중에 유전인자에 남아있는 공동체주택에 대한 정보가 되살아나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본래 우리가 살았던 모습, 즉 오랜세월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살았던 삶을 그리워하게 된 것이다. 그들 중에는 용기를 내어 이미 공동체주택으로 삶의 공간을 전환한 사람들도 있다. 유전인자의 정보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도 대부분 공동주택에 굳게 발을 디디고 서서 공동체 주택을 기웃거리고 있다. 그들이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관계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 살면서 누구나 관계에서 생긴 갈등으로 큰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트라우마로 인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힘들어한다. 과거와 같은 상처가 미래에 재발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젊은 층보다 시니어 계층에서 더 심하게 나타난다. 선천적으로 관계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갈등에 예민한 사람들에겐 기존의 아파트처럼 자기 혼자만의 독립적인 공간이 가장 좋은 삶의 공간이다. 그러나 타인과 삶, 공간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금과 같은 아파트 구조는 행복한 삶의 공간이 될 수 없다. 세상 살면서 늘 가본 길만 걸을 수 없다. 멋진 여행지는 미리 답사하지 않고 가야 더 재미있다. 그곳에서 멋진 인연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여행이 기다려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