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집’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시행한 공익활동 지원사업에 참여한 더함플러스협동조합의 결과물입니다.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더함플러스협동조합과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2038년, 사토야마 빌리지

 

윤장래

 

 

며칠 동안 비가 쉼 없이 왔다. 어제 저녁부터 그쳤다. 파란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하다. 7월 날씨가 더워 짧은 반팔로 지내다 오늘은 면으로 된 셔츠를 받쳐 입었다. 20년 후, 2038년 어느 날이다. 준고령자 기준이 65~74세이고, 고령자가 75~89세이며, 90세 이상은 초고령자다. 그렇다. 나는 76세다. 고령자다.

 

함께 지내는 가족 10명, 마을 주민 6명, 자원봉사자 4명, 나까지 더해서 21명이 식탁 5개로 나눠 점심식사를 했다. 고춧가루를 푼 콩나물국, 익힌 돼지고기와 오뎅을 작게 잘라서 버무린 반찬, 도토리묵과 상추를 간장으로 짜작짜작 무친 반찬, 고등어구이 한 토막, 조가 들어간 쌀밥을 식판에 담아 먹 었다. 오늘 나는 식사 당번이다. 일주일에 한번 차례가 온다. 당번은 3명이다. 아침, 점심, 저녁식사를 상차림부터 뒷설거지까지 책임진다. 요리는 마을 아주머니 한 분이 돈을 받고 전담해준다. 식재료는 회의를 통해 정해진 식단표에 맞춰 담당이 일주일 단위로 장을 봐온다.

 

학교 가는 날 저녁시간에는 초등학교 다니는 마을 주민 아이들 5명이 식사 인원에 추가된다. 아이들은 학교를 파하면 집으로 가지 않고 바로 우리 공동체로 온다.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방과 후 수업을 한다. 그리고 숙제를 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엄마 아빠가 데리러 올 때까지 우리와 논다.

 

공동체는 인구 10만 소도시에서 30분 거리에 있다. 농사짓는 곳이지만 우리 공동체는 농사는 소일거리로 텃밭만 한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는 걸어서 10분 거리다. 마을초입에서 공동체를 보면 마을 오른쪽이고 산 밑으로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은 2층이지만 높지 않아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1층에는 식당이 가운데 있고,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이 여럿 있다. 마을 사람들과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 2층에는 부부가 함께 사용하는 2인실이 3개, 1인실이 5개, 그리고 거실이 가운데 있다. 방마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별도로 설치되어있다. 앞마당에는 들꽃들이 계절에 맞춰 질서 없이 자라고 있는 화단이 있고, 한쪽으로는 겨울에도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제법 큰 유리온실이 있다. 아이들 원예수업도 가끔 이뤄지고 어르신들 원예치료도 진행되는 곳이다. 건물 뒤편으로 일 만평 규모의 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특별하다.

 

샤토야마 빌리지, 우리 공동체 이름이다. 앞 단어는 일본에서 가져왔고, 뒷 단어는 미국에서 가져와서 이어놓았다. 정말 사연이 많은 이름이다. 하필이면 ‘마을숲’이란 우리말을 두고 일본말을 사용하느냐? 거기다가 ‘빌리지’는 뭐냐? 그냥 ‘마을’ 이라고 하지? 우리 구성원들 하고도 여러 해 여러 날 논의를 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도 꼭 이름의 유래를 묻는다. 그들에게 이름보다는 개념의 중요성을 설명할 수밖에 없다.

 

나는 공동체에서 산지기 역할을 한다. 산지기는 산을 지키고 보살피며 거기에 딸린 일을 하는 사람이다. 수목장을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과 뜻을 모으고 공부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빌리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샤토야마 빌리지’는 수목장을 가지고 있는 빌리지다. 미국의 빌리지는 제 자리에서 나이들기Aging In Place이지만, 사토야마 빌리지는 적당한 장소로 이동해서 필요를 재구성하며 새롭게 터전을 만드는 능동적인 늙어가기다. 게다가 생산성을 추가했다. 고령기에 적합한 활동성을 토대로 사회 구성원으로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회 문제도 해결하면서 당당한 일원으로 함께 하고 있다. 우리는.

 

“뭔가를 배우는 일은 위험한 짓이다. 자기 감각을 팔아넘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우는 일을 자기 것으로 하려고 노력을 거듭하면 어느 때 문득 진짜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배우는 일을 자기 것으로 해서 감각을 되찾는다. 그것이 ‘익힌다’는 것이다. 그러니 진정 기쁘지 아니한가.” <위험한 논어>저자 ‘야스토미 아유무’는 논어의 유명한 첫 구절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를 이렇게 풀어놓았다. 읽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토야마里山는 마을 뒷산이다.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숲이다. 일본은 산세가 높아 일반적인 우리나라 뒷동산 같은 곳은 흔치 않다. 특별히 관리해야만 한다. 잘 관리된 인공숲으로 이루어진 ‘사토야마’는 공동자원으로서 공동체의 생태적 기반이 된다. 마을 근처에 인접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한국에는 ‘마을숲Maeulsoop’이 있다. 마을을 보호하고, 자손만대가 살 수 있는 환경으로서 역할을 한다. 한국의 마을은 지형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마을숲 을 조성한 것이다.

일본의 사토야마는 마을 뒤에 있는 산이다. 한국의 마을숲은 마을 앞에 있거나 좌, 우에 있다. 뒤에 있더라도 마을에 연접해 있다. 2011년 샤토야마里山가 세계농업유산GIAHS에 등재 되면서 한국의 ‘마을숲Maeulsoop’과 격론이 있었다. ‘김치’와 ‘기무치’ 같은 격론의 반복이다. 이 논쟁에 대해서는 해당분야 전문가들에게 맡겨놓는다.
 

우리는 공동체의 생산적인 모델로 수목장을 택했다. 사토야마里山를 활용한 수목장이다. 마을 뒷산을 수목장으로 활용한 첫 출발은 일본 동북부 이와테岩手현 이치노세키시에 위치한 쇼운지祥雲司 지쇼인知勝院 수목장이다. 일본 최초 수목장이 다. 이곳의 출발계기는 사토야마里山의 자연을 풍부하게 넓혀 국토를 보전하려는 의도였다. 도쿄에서 약 5시간 걸리는 거리만큼 떨어진 이곳은 친환경 장묘법의 보급을 통한 산림 생태계 보전이 가장 큰 목표다. 그동안 버려진 인공조림지였던 이 곳은 각종 천연 기념물이 서식할 정도로 생태계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빌리지’는 노인 빌리지Elder Village나 시니어 빌리지Senior Village 를 줄인 말이다. 빌리지는 비영리단체다. 주로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되며 간혹 유급 상근 스텝이 있다. 이들은 고령세대가 자신이 살던 집과 마을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 빌리지는 비콘힐의 50세 이상 주민들에게 자신의 집과 마을에 거주하면서 건강하고 적극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회원제 운영 비영리 조직으로 출발해서 성장하고 있다.

2001년 미국 메사츠세츠 주 보스톤 근교의 비콘힐Beacon Hill 에서 12명의 시니어 주민들은 나이가 들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거나, 이동을 위한 교통수단 이용이 어려워져도 자녀에 의존하거나 지원서비스를 갖춘 주거형 시설에도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집’에 계속 살기 Aging at home를 원했다. 이들의 바램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단체가 설립되었다. 이것이 ‘빌리지’다.


컴팩트한 마을 만들기

방과 후 식당-어린이와 노인을 연결하는 지역의 부엌

샤토야마 빌리지,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은 이웃을 향해서도 몇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컴팩트한 마을 만들기”와 “ 방과 후 식당-어린이와 노인을 연결하는 지역의 부엌”도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농촌 마을은 주민 대부분이 고령자다. 가옥들도 마을 중앙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3~4호씩 농지 가까이 산재되어 있다. 차차, 우리 공동체 주변으로 이들의 생활터전을 불러 모을 생각이다. 우리 공동체에 이웃해 살면서, 그들도 우리 공동체 편의 시설을 함께 이용하게 하려고 한다.

지금도 함께 식사하는 일은 열심히 챙기고 있다. 농한기에 말벗 되어 주기에도 품을 들이고 있다. 어린이들이 있는 가정에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농촌에는 학원이 없다. 특별히 놀만한 곳이 없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에서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니 우리는 충분한 보상을 이미 받고 있는 셈이다. 이들에게 식사비나 사용료 같은 비용은 받지 않는다. 우리 공동체는 생산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과 함께 나눌 여력은 충분하다.

 

“누구나 멋진 계획이 있었고 꿈이 있었을 거야.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라곤 하지. ‘내가 왜 이렇게 엉뚱한 삶을 살고 있지? 그 모든 계획이며 꿈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면서 말이야. 가긴 어딜 가? 꿈이나 계획은 여전히 출발점 부근에 그대로 있을 뿐인걸. 정작 엉뚱한 길로 접어든 건 자기 자신이야.”

“말 그대로야.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자네 인생이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나? 길었던 인생의 여정 중에서 못마땅한 것도 많고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것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래, 그거 하나만큼은 참 잘한 것 같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게 뭘까?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야.” <하워드의 선물>이란 책에서 내가 노트에 베껴둔 구절이다. 나는 자주 꺼내서 읽는다.

 

20년 전인 2018년에는 나도 성취욕을 품고 끊임없이 달렸던 사람이다. 사람들은 내가 일을 처리하는 열정과 속도에 놀랐다. 무슨 일이든 최단 시간에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일을 이루려고 분투했던 것이다. 그 시기에 나는 관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가족에게도 그랬고 주변에게도 그랬다.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동료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일을 통해서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만 쓰이고 있었다. 성취를 하고 결과를 만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은 해결 되는 줄 알았다. 주변 사람에게는 늘 기다려 달라고만 했다. 조금만, 조금만. 그 때는 그랬었다. 나도.

 

“긴 세월 동안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웠어. 하지만 노년에 들어서자 우리는 삶에서 우리 몫을 다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더 이상 전처럼 일하기를 그만두었어. 우리의 몸은 우리의 예상보다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직 건강한데도 말이야. 우리는 우리가 너무 늙었다고 생각해.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우리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젊은 사람들에게 인식시켰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우리가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아무 쓸모도 없다고 여기는 거야. 우리는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거야! 우리 부족에게, 그리고 죽음에게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말이야.” 이제 소설 <두 늙은 여자>에서 가져 온 알래스카 인디언들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2038년에서 2018년의 20년 동안의 나의 시간 여행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이제부터 혼자가 아닌 여러분들과 함께 2038년, ‘사토야마 빌리지’ 꿈을 꾼다.


 

윤장래

책을 만들고 팝니다. 주거전환 지원활동 합니다.

100세 시대 일과 직업, 저성장시대 살림살이 강의합니다. 생활기술, 주택, 요양시설, 수목장 공부합니다. 함께 살기, 농어산촌, 묘지 연구 여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