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의 농촌 “농업박물관”을 방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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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의 슬기를 배울 수 있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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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초복, 문득 시원한 바람과 맑은 물이 흐르는 농촌

그리워서 서울 서대문에 있는 도심 속의 농촌, 농업박물관을 찾았다.

 

서울시 서대문구 사거리에서 농업박물관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5번 출구를 나오면 쌀박물관 간판이 보이고 이곳을 조금 지나면 농업박물관 건물이 금세 눈에 들어온다.

 

 

  농업박물관 전경                                                                  ▲ 농업박물관 앞에 조성된 논

 

 1987년 처음 문을 연 후 2005년 신축 재개관한 농업박물관은 총 3층 건물로

3개의 전시관과 1개의 부속건물(쌀박물관)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2천여 점이 전시되어 있는 우리나라 최초·최고의 농업전문박물관이다.

이곳은 박물관 건물과 그 앞에 있는 논과 밭이 잘 어우러져 누구나 찾고 싶은 참 매력적인 곳이다.

 

 

장군 김종서와 가수 김종서 그리고 쌀나무

 

경계에 들어서자마자 좌측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조선 세종대왕 때 6진을 개척했던 김종서 장군의 집터 표석과 근처에 조성된 논과 밭이다.

이곳에 논과 밭이 표석과 함께 마련된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늘 초등학생들로 붐비던 어느 해 방학, 초등학생을 안내하던 직원이 김종서 장군 집터 표석을 가리키며

“이곳이 김종서라는 분의 집터인데 그분을 아니?”하고 묻자 황당하게도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가수 김종서를 안다”라고 대답했다 한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초등학생들이 제일 잘 안다’라고 알고 있는데 ‘우리 역사는 등한시하는구나’라는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학생들이 자라서 벼를 보고 ‘쌀나무’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

부랴부랴 논과 밭을 마련하고 매년 인근 초등학생을 초청하여 모내기와 벼 베기 행사를 함께해 왔다.

 

 

▲경남 진주지역에서 수집한 역사가 5~60년 된 나락 뒤주

 

 

조상들의 슬기가 배어있는 나락 뒤주

  

박물관 입구 우측에 아름드리 나락 뒤주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농업유물 수집· 발굴을 위해 전국의 이장님들에게 협조 서신을 띄우고 기증자를 기다리고 있을 때

진주지역에 사시던 분이 “이 나락뒤주를 기증해도 될런지요?”해서

불원천리 마다하지 않고 내려가서 트럭으로 싣고 와 전시한 자랑스러운 농업유물이다.

 

“나락 뒤주”는 벼를 보관하는 저장용 농사 도구인데 중부지방의 “노적가리” 등과 용도는 같으나 여러 가지 면에서 우수하다.

노적가리 몸체는 수숫대와 가마니로 만들어 쥐 피해가 심하고 매년 새로 만들어야 하는 데 비해

나락 뒤주는 몸체를 나무나 대로 만들어 쥐 피해가 없고 여러 해 계속 사용할 수 있어 경제적으로나 노동면으로나 매우 우수하다고 한다.

 

 

神農遺業旗                                                                                            ▲農者天下之大本旗   

 

 

“神農遺業”기와 “農事壯元”

 

 박물관 입구로 들어와 제일 첫 전시관인 농업 역사관으로 가다 보면 우측에 농기가 네 점 보인다.

민속문화대백과사전에 게재된 농기를 지역에 있는 농협의 협조를 받아 소장자로부터 기증받고

고증한 농기들로 마을 단위로 구성된 공동노동조직인 두레 때 사용하던 농기다.

이 중에서도 “神農遺業”기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농기며 잘 알고 있는‘農者天下之大本’기 보다 더 오래된 형태다.

 

 

            ▲두레도(두레 행렬도)                                             ▲두레도에서 농사장원을 확대한 사진

 

박물관 2층 농업생활관에는 “두레도”가 전시되어 있는데 한국 풍속화 대가인 김학수 화백의 작품이다.

두레 조직원 중 그해 농사를 제일 잘한 사람을 장원으로 선발하여 소에 거꾸로 탄 채 마을에 올 때까지 풍악을 울리면서 축하를 하는 풍속이다.

사대부의 과거제도인 장원에 비견되는 농부의 자존심이 배어있는 의미 있는 행사를 재현한 그림이다.

이때 울리는 풍악이 지역마다 특색이 있는데 박물관에서 귀를 기울이면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농사 풍·흉을 예측했던 느티나무

 

 

농업 역사관에 들어오면 많은 농업유물이 전시되어 있지만,

눈에 띄는 것은 농사의 풍·흉을 예측했던 것을 상징적으로 복원해 놓은 느티나무다.

지역별 이설이 있지만 이 느티나무의 잎이 한 번에 피면 풍년이 들고 나누어 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또한 이 느티나무는 대부분 마을 입구에 서 있어서 마을을 떠나거나 들어오는 사람들을 배웅하거나

맞이하는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공간이자 휴식 공간이기도 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느티나무가 풍·흉을 예측하는 당산나무나 마을주민의 휴식공간인 정자나무의 역할을 제일 많이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맷돌(돌로 된 맷돌)                   ▲매통(나무 맷돌)                 ▲토매(흙으로 된 맷돌)

 

 

진흙으로 만들어진 맷돌 “토매”

 

농업생활관에서 농업유물을 둘러보면 도정용구(알곡을 갈아서 가루로 만드는 도구)인

돌로 만들어진 맷돌 인근에 나무로 된 맷돌(매통)과 진흙으로 만들어진 맷돌(토매)를 볼 수 있다.

돌로 만든 맷돌은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반면,

나무로 된 맷돌인 매통은 일부 사람만이 알고 있고 진흙과 대나무로 만들어진 토매(현재는 수장고에 보관)는 잘 모른다.

 

토매가 전북 김제지역에만 분포한 것을 알고 지인의 소개로 토매를 소장하고 있는 전북지역박물관을 방문했었는데,

수장고에 보관 중인 토매 2점을 발견한 후 임대 제의를 거절하고 수집 운동을 전개하여 한 점을 수집할 수 있었다 한다.

 

진흙과 대나무 조각만으로 맷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한편으로 아쉬운 점은 문헌상으로 알 수 있는 옹기로 된 맷돌과 일본 박물관에

반출된 맷돌의 원형도 있다고 하는데 조상들의 진면목을 볼 수 없어 서운하였다.

 

 

 ▲풍구(청에서 전래된 정선용 도구)                                               ▲부뚜 (전래된 정선용 도구)

 

 

이해 상충으로 보급이 지난했던 풍구

 

농업생활관 전시물 중 관심을 끄는 전시물은 정선용도구(곡식과 검불을 분리하는 도구)인 풍구와 부뚜다.

조선에서는 부뚜가 정선용도구로 널리 사용되고 있었는데 그 효과가 청에서 도입된 풍구보다 못했다 한다.

하루에 20명이 바람과 부뚜를 이용하여 알곡을 정선한 양이 풍구 한 대가 하루 정선한 양을 따라가지 못했다 한다.

 

노동력 면에서 우수한 농기구인 풍구가 조선에 잘 퍼지지 않은 이유는

명나라를 보은의 국가로 생각하던 지주들이 풍구가 청나라 제품이라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소작인들은 풍구는 정선 후 남은 짚더미에 곡식 낟알을 숨길 수 없어 사용을 꺼렸고

낟알을 숨기기가 쉬운 부뚜를 선호했다고 하니 헛웃음만 절로 나왔다.

 

 

눈이 많은 지방의 운반용 도구인 발구(현재는 수장고에 보관중임)

활강하려는 스키처럼 멋스러운 “발구”

 

박물관 설립을 준비할 때부터 많은 농업인이 농기구를 지역농협을 통해 기증하거나 방문했을 때 주저 없이 기증해 주었다.

덕분에 박물관 개관 시 총 2천여 점이 수집되어 일부는 전시하고 나머지는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투박한 농기구가 대부분이라 멋스러운 농사 도구 수집·발굴에 연연해 있을 때

어느 여행가의 울릉도 기행문을 읽던 중 사진 자료에서 스키를 닮은 “발구”사진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발구의 하늘을 나는 듯한 모습에 반하여 수집 운동을 펼쳤다고 한다.

 

 

휴가를 이용해 한 직원이 울릉도로 가서 현지 농협의 협조를 받아

나리분지의 한 농가에서 겨울철에 농산물이나 짐, 땔감 등을 운반하는 도구인 발구를 발견하였다.

그 후, 울릉도 향토유물전시관의 반대를 물리치고 극적으로 수집, 전시하였다니 농업유물을 발굴 및 수집하려는 직원들의 노력이 가상했다.

 

이 외에도 수집할 때 곡절과 사연이 얽힌 농사 도구가 많이 있는 것 같았다.

입구에 놓여있는 연자방아, 전시실에 자리 잡고있는 나무로 된 김칫독,

처음 보는 최초 농사 도구인 따비, 소 두 마리가 끈다는 겨리쟁기 등 궁금한 농사 도구들이 많이 있었으나

다른 일정이 겹쳐 다시 방문할 것을 기약하고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