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나이를 먹어가면서 눈물이 많아집니다. 티브이를 보다 찔찔 눈물을 짜다가 딸내미한테 들킨 적도 여러 번입니다. 장르도 불문입니다. 드라마, 다큐멘터리, 뉴스 할 것 없이 사람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로 작정한 듯합니다. 그럴 때 참 민망합니다. 오십은커녕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아빠가 티브이를 보며 눈물을 흘리다니요. 서둘러 뺨에 흐른 눈물을 닦고 바보처럼 히, 웃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것도 여러 번 거듭되니 이제는 딸도 그러려니 하고 맙니다.

 

영화 「모던 타임즈」 끝장면에서 우리의 “무죄한 희생자,” / 찰리 채플린이 길가에서 신발끈을 다시 묶으면서, 그리고 / 특유의 슬픈 얼굴로 씩 웃으면서 애인에게 / “그렇다고 죽는다고는 말하지 마!” 하고 말할 때 / 너는 또 소갈머리 없이 울었지 // 내 거지 근성 때문인지도 몰라 / 나는 너의 그 말 한마디에 굶주려 있었단 말야; / “너, 요즘 뭐 먹고 사냐?” 고 물어주는 거 / 聖者는 거지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 너도 살아야 헐 것 아니냐 / 어떻게든 살아 있어라

 

-황지우, 「聖 찰리 채플린」,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 1998

 

얼마 전, 사랑하던 형이 떠났습니다. 친구의 형이지만 저에게도 형이나 마찬가지였던 선배였습니다. 스물 몇 해 전, 새 직장에 출근하던 첫날 옆 사무실에 있던 형에게 인사를 갔지요. 형은 직장에서는 선배이고 상사였지만 제가 동생의 친구라는 것을 알고 신기해하고, 그만큼 귀여워해줬습니다. 형이 직장을 그만두기 한 두 해 전쯤에는 형이 제가 있는 부서로 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형과 같이 일하며 외국 출장도 함께 다녀오고, 밤이면 어울려 술도 마시러 다니고 그랬습니다. 형이 다른 길을 찾아 직장을 떠난 뒤 혼자 남겨진 직장은 내내 쓸쓸하고 적막했습니다.

형은 엘리트 관료에서 정치가로, 또 방송인으로, 또 가수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상처를,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잘 알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멀리서 어렴풋이 짐작만 하고 있었을 따름이지요. 그런 시간들이 흐르는 가운데 형의 마지막 소식을 들은 것이 얼마 전입니다. 형의 영정사진이 놓인 빈소에, 형이 마지막 멀리 가는 길 위에 비지스의 <Don't forget to remember>가 구슬프게 흘렀습니다. 저는 또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너 아직도 안 죽고 살아있냐?”라던 형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아직 이렇게 살아있는데...형은 무엇 때문에 그리 급하게 어디로 갔을까요.

 

멀리 가는 길 위에 네가 있다 / 바람 불어 창문들 우연의 음악을 연주하는 그 골목길에 / 꽃잎 진 복숭아나무 푸른 잎처럼 너는 있다 / 어느 날은 잠에서 깨어나 오래도록 네 생각을 한 적이 있다 / 사랑은 나뭇잎에 적은 글처럼 바람 속에 오고 가는 것 / 때로 생의 서랍 속에 켜켜히 묻혀 있다가 / 구랍의 달처럼 참 많은 기억을 데불고 떠오르기고 하는 것 / 멀리 가려다 쉬고 싶은 길 위에 문득 너는 있다 / 꽃잎 진 복숭아나무들이 긴 목책을 이루어 / 푸른 잎들이 오래도록 너를 읽고 있는 곳에 / 꽃잎 진 내 청춘의 감옥, / 복숭아 나무 그 긴 목책 속에

 

-박정대, 「장만옥」, 『시인세계』 2006 가을호

 

 

이제 영영 볼 수 없는 그리운 이들이 “멀리 가는 길 위에, 꽃잎 진 복숭아나무 푸른 잎처럼” 문득 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가벼운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눈물을 흘릴 이유가 하나 더 늘기도 한 까닭입니다. 그러나 산 사람은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랜 일터를 벗어나 요즘 제일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어떻게 사냐?”라는 물음입니다. 대답할 말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그럭저럭 살고 있다고, 어떻게든 살고 있다고” 말해줍니다. 마음이 소금밭을 헤매도 책상 앞에 앉아있어야 이런 글도 쓸 수 있습니다. 내 작은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다가 가슴이 답답해질 때도 있지요. 그러면 오래 저물지 않는 햇빛을 핑계로 혼자 낮술이라도 마시러 나갑니다.

 

사는 게 / 오체투지로 한 삼천 배쯤 밀고 왔다 / 싶은 날엔 / 나 헐거운 바랑 같은 내 몸속에 / 술이라도 몇 잔 공양하러 가겠네 / 소금기 밴 등짝에 햇살 가득 이고 / 저물녘 탁발 끝내고 돌아가는 늙은 중 되어 / 오지 말래도 악착같이 찾아가겠네 /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애오개 근처 / 잡초처럼 어두워지는 시장통 술집에 앉아 / 연신 소주잔이나 기울이겠네 / 가끔은 땀에 찌든 사람들 틈으로 슬쩍 스며들겠지 / 삶의 무게 손마디 굵은 사연이며 / 엿듣다 들켜버린 마음에게도 / 한 잔 건네겠네 / 가도 가도 끝내 길은 보이지 않고 / 이쯤에서 그만 한 생 접어도 좋을까 / 술병만 자꾸 넘어뜨리겠네 / 그러다 술도 뭐도 다 시들해지면 / 내일이면 이미 쓰러지고 없을 그 집, / 엄마 같은 여자의 무릎을 베고 누워 / 깜빡 잠이라도 들겠네 // 사는 게 / 오체투지로 한 삼천 배쯤 밀고 왔다 / 싶은 날에는

 

-서광식, 「사는게 삼천 배쯤 밀고 왔다 싶은 날에는」, 『만리동 고개를 넘어가는 낙타』 (문학의전당, 2011)

 

혼자 술을 마시며 생각합니다. ‘사는 게 뭘까’ 하고 말입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하고 말입니다. 사람마다 디디고 있는 땅이 다 다르고, 저마다 절절한 사연도 하고 많으니 불쑥 “어떻게 사냐?”고 묻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다른 이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저 또한 제게 주어진 삶을 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듯합니다. 오늘도 제가 이렇게 책상 앞에 앉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겠다고 다짐합니다. 글 쓰는 일로 종생(終生)하겠다는 생각도 공글립니다. 시간의 풍화를 견뎌낼 글들이 제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집니다.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살아있어”야 하기는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