팸 투어를 했다. 가을이라 가슬가슬, 여행을 가기에 제격인 10월 중순의 남도의 맛 기행이라니 더욱 좋아 열일을 제치고 등록했다. 동네 이름을 자꾸 불렀다. 송정역 나주 목포 명하마을 광주 양림동 담양 소쇄원 그리고 광주 호수 생태원까지. 팸 투어는 Familiarization tour 즉 사전답사여행이란 뜻이다. 그 땅이 가진 진짜 이야기가 있는 곳에서 땅 냄새와 물 향기를 맡는 여행이다. 여행은 1박 2일이었다.

처음 가본 곳, 처음 먹어본 것들이 태반이어서 주제어는 ‘이런 곳도 가봄, 이런 것도 먹어봄, 이런 것도 해봄, 이런 것도 알아 봄, 이런 연주도 들어봄’ 같은 것들이 되었다.

 

처음 가본 나주, 처음 느끼는 땅 냄새

나주는 옛 전라도의 수도다. 전라도라는 지명자체가 전주와 나주를 합한 말. 나주羅州, 비단 라, 고을 주. 비단 같은 평야, 강줄기가 비단처럼 흐르는 마을이란 뜻의 나주는 금성관과 나주목 목사내아를 여행했다.

 

1. 나주 금성관과 나주목사내아관

 

나주 금성관

 

나주에는 여행객으로 처음 간 것인데 맞춤 맞게 처음 간 곳도 나그네와 손님이 묵는 객사다. 금성관은 나주목의 객사 정청으로 쓰였던 곳이다. 관찰사가 관찰 구역을 순방할 때 업무를 보았고 중앙의 사신이 묵었고 외국 손님도 묵었던 곳이란다. 금성관 초입에 외삼문인 망화루望華樓가 있다. 망화루는 가장 바깥에 있는 문으로 세 칸 규모의 2층 문루인데 문 앞에서 발바닥을 소독한다. 지붕 안쪽으로 절처럼 예쁜 문양이 찬란하다. 망화루로 들어가면 중삼문中三文이 보인다. 오래된 돌들이 깔려 있는 출입문이다. 사실 금성관 망화루 왼쪽 벽에서 돌로 된 작은 비문을 봤다. 여기가 광주학생운동의 시발점이 된 나주역이라는 것, 나주학생운동이 시작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금성관에선 한옥건축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중삼문을 들어가면서 금성관 중심건물이 다 보인다. 연회가 열린 곳이라는 커다란 마루에는 여름에 앉으면 냉장고처럼 시원했다고 한다. 그 마루 중앙에 한복을 입은 여성이 목화솜으로 실을 잣고 있다. 구름 같은 목화솜에서 한줄기 면실이 나오는 과정은 홀릴 만큼 신기했다.

 

나주 금성관 목화솜 면실 잣는 명인

 

금성관에서 나오면 고색창연한 정수루를 볼 수 있다. 정수루正綬樓의 '수'는 갓끈 수자다. 목사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의관을 정제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들어가라는 뜻이다. 정수루 위에는 큰 절처럼 종이 하나 있는데, 옛날에 신문고 역할을 한 북이다. 나주목사내아관 금학헌琴鶴軒은 현재 한옥게스트하우스로 쓰인다. 몇 백 년은 된 것 같은 나무가 쩍 벌어져 그늘을 드리운 곳에서 옛 목사관, 나주의 관리가 일하던 공간이 펼쳐진다. 단아한 마당에 형틀 하나가 놓여있다. 잘못한 이들을 잡아다 징벌하는 태형 틀이 가을 햇살 속에 엎드려 있다.

 

나주 목사내아관

 

유서 깊은 나주향교, 조선에서 유일하게 강에 등대(강등대)가 있었다는 영산포구, 나주의 대표 체험꺼리 황포돛배 타기는 해보지 못했다. 무덤 박물관, 무덤 아파트가 있는 북암리 고분군도 가보지 못하고 나주의 대표 맛, 나주 곰탕을 먹으러 갔다.

 

나주 곰탕집 수육

 

나주는 장어나 홍어도 유명하지만 아무튼 곰탕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금성관과 정수루 앞 길에 곰탕집이 즐비하다. 나주 곰탕은 국물이 맑고 깨끗하다. 함께 나온 김치와 깍두기는 보통 식당에서 주는 막 무친 김치나 겉절이가 아니다. 꼭 땅속에서 꺼낸 것처럼 오래된 느낌의 김치와 깍두기는 의외로 너무 깊은 맛을 갖고 있다. 갖가지 부드러운 수육과 데일 듯 뜨거운 곰탕을 지역막걸리와 곁들어 한 그릇 다 먹었다. 식당은 그 유명한 '하얀 집.'

 

2. 목포 근대역사관과 오래된 땅굴

 

 

목포 근대역사관 옆 건물

 

목포는 알고 있기로 황현산, 김현의 태생지다. 훌륭한 비평가들이 나고 자란 바닷가 목포는 군산이나 인천처럼 항구다. 항구야말로 낯선 곳을 향해 가장 빨리 나갈 수 있는 곳, 낯선 것들이 처음 들어오는 입구다.  그러니 빠르게 일제강점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을 터. 일본 영사관 건물이 지어질 정도였으니 목포에는 일제의 수탈과 압제의 역사가 깊게 서려 있다.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일본 영사관 건물은 현재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운영 중이다. 얼마 전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배경이었던 덕에 붉은 벽돌집 앞이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다. 드라마 주인공 아이유와 여진구가 근대박물관 입구에 스틸 사진으로 곱게 서 있고 핫한 장소에서 인스타용 사진을 찍으려는 젊고 예쁜 여자들이 근사한 포즈로 건물 앞에 가득했다. 박물관은 그 엄혹한 시절, 어떻게 목포라는 땅이 수탈을 당했는지 꼼꼼하게 재현해 놨다. 건물이 영사관이던 시절 일본영사들이 쓰던 물건이 가득했는데 그 시절에도 첨단이었을 냉장고, 피아노, 재봉틀이 아직도 멀쩡했다. 각층마다 그 시절 그대로 쓰던 벽난로가 있었는데, 현재 부잣집에서 만들어 썼다 해도 믿을 정도로 비싼 티가 잔뜩 풍겼다. 2층 유리창에서는 한 줄로 보기 좋기 다듬어놓은 목포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남의 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침략국의 땅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오만하고 무례한 시선의 높이가 느껴지는 자리였다.

 

목포 근대역사관 아래 땅굴

 

근대 역사관 건물 바로 뒤 쪽에는 긴 땅굴이 있다. 예상대로 일제가 한국인을 동원해 파놓은 방어와 수탈을 위한 땅굴이다. 제법 긴 땅굴에는 현재 길을 비추기 위해 조그만 등을 밝혀놓았는데, 그 조그만 빛살을 받아먹으며 녹색의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어두운 돌 틈에서 그토록 작은 빛이라도 빛이기에 받아서 싹을 틔워 자라는 식물의 초록빛이 애잔해 보이기도, 끈질겨 보이기도.

 

3. 연희네 슈퍼

 

연희네 슈퍼 목포 1987 영화 배경

 

근대역사관에서 죽 내려와 다시 언덕을 올라가면 연희네 슈퍼가 있다. 영화 <1987>에서 대학생 연희(김태리)가 삼촌 한병용(유해진)의 심부름으로 시국 문서를 전달하던 그 자리다. 이한열(강동원)이 연희와 평상에서 시국에 대해 이야기하던 바로 그 자리기도. 연희네 슈퍼는 원래도 동네에 하나뿐인 동네 문구점이자 상점이었다. 이 집의 비밀은 마당 앞. 그 아래 30미터에 달하는 큰 동굴이 있다. 이 동굴도 일제 강점기에 미군의 폭격 등 전쟁에 대비해 일제가 조선인을 동원해 파놓은 곳이다. 연희네 슈퍼 앞 뒤 옆 모든 집들이 일제강점기시대의 목포근대사가 아로새겨진 곳이다. 이 동네는 일제 때는 유곽 거리로 점령군 일본인들의 유희와 환락의 장소였단다. 일본 패망 후에는 시모노세키 등에서 쫓겨난 조선인들을 품어준 곳이고 6.25 전쟁 때는 피란민들이 판자촌을 세우고 정착해 살던 곳이란다. 지금 그 집들은 옛 교복을 빌려주는 교복가게 의상 대여점이 되고 연희네 슈퍼대신 추억의 먹거리를 팔고 있는 식당으로 만들어졌다. 연희네 슈퍼를 내려오는 길에는 이제 사람이 살지 않게 된 집인지 대문 위, 작은 옥상에 갖은 꽃들만 자라고 있었다. 곧 카페나 음식점이 될 것 같은.

아무튼 옛 도시들은 다시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목포, 나주, 군산, 인천 등등 옛 역사의 도시들은 지금 도시의 과거를 새롭게 불러들여 관광지로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옛 거리는 추억의 거리가 되고 근대 문화유산이 되고 맛집들이 문을 연다. 우리들은 잊었던 지명을 새롭게 호명하면서 그 길을 여행한다.

 

4. 목포 케이블카

 

목포 케이블카

 

목포 케이블카는 국내 최고로 길다. 3.23km. 목포 시내 북항 스테이션을 출발한다. 왕복 40분 동안의 케이블카를 타면 북항 기점에서, 유달산 정상 바로 아래서, 고하도 지점에서 먹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목포 해상 케이블카는 2019년 9월 6일에 개통했으니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소문이 난 탓인지 인산인해다.

케이블카는 두 종류. 바닥이 막힌 일반 캐빈과 투명하게 보이는 크리스탈 캐빈. 목포 케이블카는 55대, 10인승이다. 휠체어와 유모차까지 쉽고 안전하게 탑승할 수 있어서 할아버지 할머니도 많고 어린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도 무진장 많다. 바닥이 다 보이는 크리스탈 캐빈을 탔다. 발아래 산과 나무와 집들이 까마득하다가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물결의 무늬까지 다 보인다. 유달산과 하얗게 솟은 바위들, 다도해의 비경과 옛 호텔과 근대역사문화가 즐비한 목포시내까지 다 보인다. 케이블카를 만들러 온 제조설비업체 프랑스 '포마사'관계자들도 '세계최고의 뷰'고 했다는 풍경이다. 그리고 멀리에 세월호, 그 물에 가라앉았던 슬픈 이름의 배가 거치된 선창과 여객선 터미널이 보인다. 우리는 편도를 끊어 유달산에서도 내리지 않고 고하도 섬으로 곧장 내려왔다. 섬에서 내리면 그물에 걸린 생선을 정리하고 있는 어부들 모습을 보면서 걸을 수 있다. 그리고 이정표마다 보이는 지명들을 읽는다. 압해, 명하, 고하, 함평나비. 동네 이름들이 왜 이렇게 예쁜가. 이젠 목포 신항 건너서 쪽빛 물들이러 간다. 나주 끝 명하마을로.

 

5. 명하마을 쪽염색

 

 

명하마을 쪽염색

 

명하마을 쪽 밭

 

쪽빛이 그렇게 좋았다. 은은한 푸른빛이 물든 천을 좋아했다. 쪽 염색의 본고장을 간다니 설렐 수밖에. 쪽 염색으로 유명한 명하마을은 나주의 끝 쪽 문평면에 있다. 중요무형문화제 제 115호 윤병운 염색장 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명하쪽빛 마을 입구엔 흑백의 작은 동네 안내도가 그려져 있다. 마을에서 쪽 염색 체험을 하러오는 이들에게 웰빙 밥상을 제공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운영한다. 염색장 윤병운 기념관은 정갈하고 넓은 마당이 있는 커다란 한옥인데 쪽 염료 만드는 과정과 쪽빛 물들이는 과정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화학염료가 대중화되면서 완전히 끊긴 전통 쪽 염색을 이어가는 사람은 현재 5대째인 아들 윤대중(쪽 염색 전수 조교)씨와 며느리 최경자(쪽염색 이수자)씨다. 여느 풀과 비슷해 보이는 쪽 풀에서 어떻게 푸른빛이 나올까, 정말 궁금했는데 쪽빛을 얻는 지난한 과정을 찍은 비디오를 약간 풀렸다. 쪽의 푸른빛은 쪽잎을 담가놓은 물에 횟가루와 양잿물을 이용해서 얻는다. 횟가루는 굴 껍데기를 태워 만드는데 그 횟가루를 얻기까지 이틀 정도의 지난한 시간이 걸린다. 굴 껍데기를 산처럼 쌓아놓고 멍석으로 덮어 아래 아궁이에서 불을 때고 연기를 내어 횟가루를 만드는 과정자체가 신비하기 그지없다. 쪽 밭에서 잎을 뜯어 물을 내고 거르고 얻은 쪽물에 3시간 담가 한조각 쪽빛 천을 얻기까지의 과정이 신비롭고 감탄스럽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고 흔히 쓰는 쪽빛, 바다색, 남색, 하늘색 같은 것은 말은 사실 하나도 똑같지 않다. 옅은 초록색, 푸른색, 짙은 파란색, 약간 붉은 빛이 도는 파란색까지도 다 쪽물에서 나온 쪽빛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 그 생각이 났다.

 

명하마을 쪽 색의 다름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 ‘쪽에서 나온 물감이 오히려 더 푸르다’는 그 말. 그 신기한 풀, 쪽을 보러 윤병운 기념관을 나와 논길 밭길을 걸어 노을 지는 쪽 밭으로 걸어갔다. 쪽이 이제 꽃을 피운 후 씨앗을 맺고 있었다. 쪽 꽃 옆에서 사람들이 꽃씨처럼 웃었고 해가 지자마자 달무리 가득 든 달이 명하마을 지붕에 솟아났다. 달무리 진 저녁 길은 얼마나 서정적이었던지.

최경자씨와 윤대중씨에게서 잘 물들인 쪽 스카프를 빨아 너는 방법을 배웠다. 검푸른 달빛 같은 내 쪽 스카프를 하나 얻어 광주로 돌아왔다.

 

광주 대광육전

 

광주 송정 쪽 웨딩의 거리에서 먹은 남도의 맛은, 육전이었다. 광주 대광육전은 테이블마다 직접 전기프라이팬을 두고 일하시는 분이 각 테이블에 앉아 전을 하나씩 구워주었다. 고기를 생것 그대로 가져와 손님 눈앞에서 밀가루 묻혀 계란 물 묻혀 직접 기름을 두르고 익히고 뒤집어서 손님의 앞 접시까지 놓아주었다. 맨 처음 육전에 굴전, 그리고 낙지전까지. 뜨겁고 부드러운 전을 하나씩 먹고 비단 같은 매생이로 끓인 떡국을 먹었다. 제대로 남도의 맛과 멋을 여행하는 밤이 저물었다.

 

이틀 째

 

1. 광주, 양림동

 

 

양림마을 골목길                                                                           양림마을 햇살 양양한 집들

 

금빛 아침. 밤에 말린 쪽 스카프를 목에 매고 아침햇살에 나서보았다. 보드랍고 다정한 천이 푸른 바다빛깔로 목을 감싸주었다. 양림 마을로 걸어가는 햇살이 하도 양양하게 밝아서 이름처럼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양림동의 '양'자는 볕 양陽이 아니라 버들 양楊이었다. '버드름'이란 데서 생긴 이름이라는데 버드름은 산 능선이 밖으로 뻗어나간 것을 의미한단다. 양림산에서 시작된 산 능선이 양파정 능선으로 이어져 광주천에 닿은 모습이 바로 버드름이었고 그것이 왕버드나무를 거쳐 '양'으로 표기되었다는 것, '름'은 발음이 비슷한 '림'을 취해 양림이 되었단다.

 

 

양림동 골목길                                            

 

양림동 개비석

 

아무튼 그 밝은 양림 마을 옛 골목길에서 그늘진 허리와 목덜미를 제대로 말렸다. 광주부자 최승효 가옥을 지나 그 옛날 만석꾼집 이장우의 집, 옛집 마루에서도 가을 햇살이 밝고 따스해 비타민디를 마음껏 만들 수 있는 해바라기를 했다. 감나무 감이 주황색으로 빛나는 양림 마을 끝에서 '개비석'을 만났다. 죽은 주인을 기다리며 역에 서 있었다는 일본 시바견 비석이야기는 들어봤어도 광주 양림 마을에 개비석이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개비석은 동그랗게 돌로 빚어져 효자로 소문났다는 주인의 효자비 옆에 서 있었다. 웬만한 사람 동상이나 공덕비보다 더 다정하고 행복해 보였다.

 

   

양림동 이장우 만석꾼의 집 앞마당                                                           양림동 이장우고책 골목길                                                                        양림동 최승효고택

 

 

2. 소쇄원

 

소쇄원 대봉대 쪽

 

담양이야 모를 이가 있으랴. 소쇄원, 죽녹원, 메타세콰이어길, 이이남 미술관, 관방제림, 메타프로방스로 이미 유명한 곳이다. 먹을거리도 떡갈비, 국수까지 모르는 이가 없다. 소쇄원은 열 번을 가도 항상 좋다. 소쇄원은 양산보(1503-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난 후 출세와 성공에 뜻을 버리고 자연에 숨어살기를 택해 꾸민 별서정원이다. 별서의 '서'는 처음 본 한자인데 들 야野 자 아래 흙 土자가 쓰여 있다. 자전에는 나오지 않았다. 땅 위에 들이라니. 신비한 글자다.

소쇄원 입구 대나무는 가을에도 푸르고 입구 계곡에 헤엄치는 원앙과 오리는 차가워진 물에서도 여전히 놀고 있다. 여름 소쇄원과 다른 것은 입구에 은행을 까서 파는 이와 단감을 깎아 파는 이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소쇄원 양산보와 한복입고 산책하기                                                                                                                        소쇄원 진짜 한복 체험                                                                 

 

태어나 처음으로 한복을 입고 소쇄원을 걷기로 했다. 이곳에서 2년째 진행하고 있다는 '소쇄 처사 양산보와 함께 걷는 소쇄원 프로그램'에 운 좋게 참여할 수 있었는데. 왜 한복을 입어보기로 했냐하면 소쇄원 한복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전주 한옥마을 같은 곳에서 빌려 입는 퓨전 한복이 아니라 1550년대, 그러니까 소쇄원이 세워진 당시의 한복을 복식 전문가가 제대로 고증해 재현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옷 방에 들어가 한복을 골랐다. 여기 한복은 일단 치마허리가 가슴 아래 달려 있다. 가슴을 압박하지 않고 허리춤에 딱 맞게 묶게 되어서 온 몸이 다 편안했다. 윗도리도 치마허리를 편안하게 덮는 길이였고 두루마기도 거추장스럽지 않고 단아했다. 머리장식으로 젊은 여자들은 도투락댕기나 배씨머리띠를 했고 남자들은 옛 선비들처럼 입고 수염을 달았는데 옛날처럼 송진으로 붙였다. 옛 시절의 진짜 한복을 입고 소쇄원의 제월당, 제월당, 광풍각, 대봉대에서 양산보로 분한 철학교수의 해설을 듣는 일은 더할 수 없이 흥미로웠다.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이 행사에는 향토사학자, 건축가, 철학자 등이 돌아가면서 양산보로 분해 소쇄원을 해설해주는데 내가 간 날은 철학자(이향준 전남대 철학과 교수)가 양산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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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거문고 연주

 

제월당은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란 뜻이고 광풍각은 '비갠 후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이고 대봉대는 '봉황을 기다리는 정자'라는 뜻이다. 이름 하나마다 어찌나 뜻이 소슬하고 아름다운지. 소쇄란 뜻도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니 말을 더해 무엇 하랴. 거기에 더해 소쇄원 너럭바위 위에 단아한 자세로 자리 잡은 거문고 연주자가 중중모리, 자진모리 가락을 연주해주었다. 계곡 물 흐르는 소리와 같이 거문고 소리가 흘러가는데 바위 아래 앉아 지금 이 자리가 선경인가, 진경인가, 꿈인가 했을 정도로 신비한 시간이었다.

 

담양 거사밥상

 

담양의 맛을 보는 시간은 더 흥미롭고 행복했는데 담양의 음식이 그 유명한 떡갈비나 국수가 아니었던 덕이다. 소쇄원 프로그램으로 연결된 밥상은 거사밥상, 처사밥상을 먹었다. 무등산 북쪽 자락에 자리한 평촌마을 '무돌길 쉼터'에서 솜씨 좋은 부녀회장의 맛깔스런 거사밥상은, 담양에 와서도 아무나 못 먹는 밥상이니, 강하게 추천한다. 거사밥상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남도의 깔끔한 밥상으로 나왔다. 버섯을 넣은 해물찌개와 대나무 많은 담양의 죽순볶음, 생선구이 한 마리 정도였는데 거문고 소리까지 들은 후라, 더욱더 고졸하고 단정한 맛이었다.

 

3. 광주 호수생태원

 

 

호수생태원 DMZ 금지된 정원                                                                 

 

호수 생태원은 소쇄원을 가기 직전 광주호에 있다. 2006년에 개장한 후 수생식물원, 생태연못, 야생화테마원, 목재 탐방로, 전망대, 수변관찰대가 있고 호수 안에는 버드나무 군락지와 습지보전지역이 있다. 오래 걷고 싶었지만 시간이 모자랐다. 그래도 호수생태원에서 전남 구례 태생의 환경미술가이자 정원디자이너 황지해의 <해우소 가는 길>과 <금지된 정원 DMZ>을 봤다. 이 두 작품은 영국 첼시 플라워쇼에서 대상과 금상을 받았다.

 

호수생태원 해우소 가는길

 

인간이 먹고 싸고 그것이 다시 썩고 밭으로 가 다시 생명을 키우는, 똥과 삶의 순환의 화장실을 영국 정원 쇼에서 선보였을 때 환호가 대단했다고 한다. 근심을 해결하는 곳 해우소, 즉 변소를 영어로 emptying your mind로 번역해 세워놓았다.

 

호수생태원 금지된 정원-침묵의 시간

 

해우소 가는 길 맞은 편 쪽에 DMZ 고요한 시간-금지된 정원이 있다. 사람의 손과 발이 전혀 닿지 않은 60년의 세월 동안 DMZ 숲속 원시림에 서 있는 보초 탑이다. 전쟁 후 녹슨 기찻길, 더 이상 가지 않는 철길에 높이 솟은 목조 감시초소에는 철조망이, 녹슨 수통, 터질 것 같은 수류탄, 그런 군사용품들이 걸려 있다. 작가는 60년 동안 침묵으로 서 있는 이 탑과 꽃길 숲길을 침묵의 시간 금지된 정원으로 만들어놓았다. 더 멍하게 슬픈 것은, 전쟁으로 죽은 병사들의 군번표로 만든 작은 무덤 같은 비석을 보았을 때. 이름 없이 군번만 모은 작품은 숲 속에 묻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모든 여행을 가능케 하고 풍부한 해설과 안내를 해준 사람은 남도 8권역 전고필 PM이다. 그는 닿는 자리마다 더 알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곳곳마다 적절하고 아름다운 시를 읽어주었다. 자연지리에 못지않게 재미있는 인문지리를 가르쳐주었다고 할까. 그리고 더욱 남도의 멋과 맛에 대해 알고 싶다면 <한국의 발견> 11권 시리즈물 중에서 전라남도 편을 읽어보라고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