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리안으로 산 지, 어느새 3년을 꽉 채운다. 그 시작은 광화문 찬바닥에 주저앉아 촛불을 들던 때였다. 촛불로는 부족하다 싶어서, 트위터라는 소셜네트워크 공간으로 뛰어들었다. 실명을 숨긴 채, 오로지 정치적 이슈와 관련해서만 하트를 누르고 알티RT;리트윗를 했다. 대형 포털 속 기사들에 부지런히 댓글도 달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즘 애들이 쓰는 인터넷 신조어들을 접하게 되었다. 10대가 쓰는 것과 그 윗세대가 쓰는 것이 조금 달라 보이지만, 3년 간 유명 신조어들의 흐름을 보면 대략 이러하다. ‘극혐(극도로 혐오한다), 아놔(어이없는 상황에서 감탄사처럼 사용), 평타취(평타는 친다-중간은 된다), 취존(취향존중), 세젤예(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를 지나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핵인싸(+인사이더;사람들과 매우 잘 어울리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 만반잘부(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 보배(보조배터리), 롬곡(눈물을 거꾸로 써서, 슬프다는 의미)에 이르기까지, 거의 외계어 수준으로 보이는 말들이다. 엊그제는 마상 입었다는 말을 접했다. 화상을 입었다는 말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우리 50+세대는 위에 나열된 신조어들과의 거리감에 이미 마상을 입었을 수도...

그런데 때에 따라선 화자話者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해주는 신조어들을 만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띵작이란 말이 그렇다. 망치로 맞은 듯 뭔가 새로운 자극을 받았을 때 머리가 띵하다고 말한다. 요즘엔 뛰어난 영화나 드라마를 두고 띵작이라 부른다. 원래는 명작의 명이란 글자와 모양이 비슷한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지만, 나는 뇌에 특별한 자극을 준 영화라는 의미에서 띵작이란 단어를 쓰고 싶다. 가만, 한국영화 띵작들을 소개하려는 글의 도입부가 인터넷 신조어 얘기로 도배되었다. 이럴 때 ‘TMIToo Much Information혹은 ‘TMTToo Much Talker란 표현을 쓰나 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독자들이 외면하기 전에.

 

지금은 영화역사관으로 다시 태어난 단성사. 우리 세대에겐 피카디리극장과 함께 추억의 영화관으로 기억된다. 그 출발은 1919년이었다. 단성사에서 김도산 감독의 의리적義理的 구투仇鬪가 상연되었다. 연극 속에 영화가 삽입된 연쇄극連鎖劇,kinodrama의 형태였는데, 한국 감독에 의해 한국 배우들이 출연한 최초의 영화로 인정받는다. 아무튼 100년 전에 첫 선을 보인 후 얼마나 많은 영화들이 이 땅에서 만들어지고 상영되었을지, 또 관객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쓸쓸히 퇴장당한 볼만한 영화들은 얼마나 많을까? 그렇다면, 철저히 나의 감동과 기억에 의지해서, 내 입맛대로 한국영화 띵작들을 뽑아내보자. 이제, 나의 친애하는 영화 벗들과 공유할 여섯 번째 리스트를 시작한다. , 지난 2회차 글에선 영화 소개를 아주 간략하게 했지만, 이번 회에선 여유롭고 긴 호흡으로 써내려가고자 한다.

 

1. 《아는 여자》 제작년도 2004/ 감독 장진/ 출연 정재영,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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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진 감독은 유머와 진지함을 기막히게 잘 버무려내곤 했다. 《킬러들의 수다, 거룩한 계보, 박수칠 때 떠나라등의 작품들 모두 거론될만하지만, 나는 아는 여자1순위에 놓는다. 로맨스물을 선호하지 않음에도 이 영화는 두 번이나 봤으니... 게다가 이 영화의 제목은 어찌나 찰떡처럼 잘 들어맞는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작명이다.

영화 속 남자 동치성, 그는 왕년에 잠시 잘나갔으나 현재는 별볼일 없는 야구선수다. 애인한테 절교당하던 날에 시한부 3개월 선고까지 받고는 술집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만취가 되는데, ‘잘 모르는여자가 접근해온다. 그 이후로 줄곧, 그녀는 치성 앞에 나타난다. 누군가 치성에게 물었다, 저 여자가 누구냐고? 치성이 답한다, “, 아는 여자.” 하지만 그녀는 10여년 전부터 줄곧 치성만을 사랑해왔고 이제는 치성에게 특별한 사람이고픈, 치성을 아는여자였다. 이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사랑 이야기가 장 진 감독 특유의 유머코드에 힘입어 펼쳐진다. 후반부엔 소리내서 웃을 정도의 포인트도 나온다. , 정재영과 이나영의 자연스런 연기조합이 또하나의 관람 포인트!

 

 

2. 《가족의 탄생》 제작년도 2006/ 감독 김태용/ 출연 문소리, 공효진, 엄태웅, 고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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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언컨대, 이 영화는 최고의 한국영화 10반열에 오를 수 있다. 지금은 중국배우 탕웨이의 남편으로 더 유명해 보이지만, 김태용 감독은 사랑과 가족에 관한 탁월한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영화는 서로 무관해보이는 세 가지 에피소드가 교차되며 흐른다. 친구인지 연인인지 헷갈릴 정도로 남동생 형철을 사랑하는 미라. 그러나 무려 5년이나 무소식이던 형철은 어느날 문득, 20년 연상의 여자친구 무신을 데리고 돌아온다. 하여, 미라와 무신의 쉽지않은 동거가 시작되는데... 현실주의자 성경은 대책없이 사랑에 올인하는 엄마 뒤치닥꺼리에 지쳤고 남친과의 교제도 삐걱거린다. 한편 경석은 분명 사랑스런 여친 채연이 있는데도 사랑에 목마르다. 채연이 늘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신경쓰느라 정작 남친은 외로운 까닭이다. 이 세 그룹들은 각기,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린다. 그런데 모두가 한 밥상에 둘러앉고 보니, 실은 남남이 아니었다. 가족이 따로 있지 않았다. 감독은, 허구적 사랑이 아니라 현실 속 사랑을 다채롭고 섬세히 그리면서도, 결코 구태의연하지 않고 과감하게 사랑의 의미를 말한다. , 고두심이 연기한 무신, 대단히 매력적이다.

 

 

3. 《삼공일 삼공이》 1995/ 감독 박철수/ 출연 방은희, 황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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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너무 앞서 나온 탓일까? 메시지가 예리하고 매서운 탓일까? 감히 희대의 걸작이라 일컬을만한데, 너무 일찍 묻혔다. 필자의 초강력 추천작이다. 다만, 해맑고 따뜻한 영화를 선호하는 이에겐 비추천!

새희망바이오 아파트 301호에 이사 온 송희. 갓 이혼한 여성인데 음식에 집착한다. 맛있는 요리로 남편의 환심을 사더니만 결국 무시무시한(?) 요리로 남편과 헤어진 직후다. 앞집 302호에 사는 윤희는 거식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송희가 자신의 요리를 날마다 윤희에게 가져다주면서 두 여자의 만남은 시작된다. 하지만 윤희가 그 음식들을 쓰레기통에 버린 걸 알게 된 송희는 폭력적으로 윤희에게 달려든다. 그 일을 계기로, 먹이려는 자와 먹을 수 없는 자는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눈다. 서로의 과거를 듣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둘 사이엔 강한 연대감이 형성된다. 그리고 윤희는 자신의 고통을 끝낼 유일한 해결책을 송희에게 제시하는데... 지금은 영화 오로라공주2005년 제작의 감독으로 기억되는 방은진과 오롯이 배우로만 보이는 황신혜의 연기 앙상블이 관람 포인트 하나! 이미 그 시절에 요리먹방의 신세계를 스크린에 펼쳐놓은 점이 포인트 둘! 성폭력을 다루는 카메라 방식이 다소 불쾌감을 안겨주지만, ‘48년생 한국남자인 감독이 24년 전에 어떻게 이런 영화를? 그 파격이 포인트 셋!

 

 

4. 《김복남살인사건의 전말》 2010/ 감독 장철수/ 출연 서영희, 지성원, 백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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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파격적인 영화 한 편 더 소개한다. 일단, 청소년관람 불가다. 심장 약한 사람은 피하는 게 상책! 하지만 영화가 그려내는 이야기는 우리가 결코 피해선 안될 김복남의 현실이다. ‘무도라는 평화로워 보이는 섬에서 복남은 평화와는 거리가 먼 일상을 버텨낸다. 복남을 향한 섬의 공격- 어린 시절 동네 사내아이들의 성폭력으로 시작된 -은 그가 장성해 엄마가 되어도 그칠 줄 모른다. 남편이란 자는 집 안방에서 대놓고 다른 여자와 그짓을 하고, 시도때도 없이 복남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뼛속까지 남아선호으로 무장한 시어미는 며느리를 노예 부리듯한다.  밤이면 탐욕스런 시동생한테 강간당하고, 이웃어른들이란 자들한테선 무시와 냉대가 일상적으로 날아든다. 그래도 복남은 땀흘려 일을 하고, 양푼 속 비빔밥을 우걱우걱 먹는다. 그런 현실을 한 외지인이 목격한다. 해원, 그는 복남의 친구였다. 세련된 직장인의 외양을 갖췄지만 철저히 자본주의사회 속 부속품에 불과한 그는, 떠밀리듯 무도로 휴가를 온 것이다. 복남은 딸과 함께 자신을 섬에서 데리고 나가달라고 해원에게 간청하는데..... 부조리한 폭력 사회가 현상 유지를 하는 데엔 그 사회 최약자들의 노동과 희생과 인내가 필수적이다. 섬사람들이 나쁜 놈 옆에 더 나쁜 놈식으로 복남을 학대하는 지점에서, 관객은 저절로 주먹을 움켜쥐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삶의 유일한 희망을 강탈당한 복남이 분연히 떨쳐일어나 낫을 치켜들 때, 마음으로 함께 낫을 들지도 모른다. ! 배우 서영희의 인생 연기에는 감동하겠지만, 배성우의 미치도록 리얼한 연기엔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5. 《우리들》 2016/ 감독 윤가은/ 출연 최수인, 설혜연, 이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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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블랙의 화면 위로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오면서 시작했다가 비슷한 소리로 끝을 맺는다. 양쪽 다, 아이들의 피구 놀이 현장을 전해준다. 피구는 편을 짜는 데서 출발한다. 양팀을 대표해서 두 명이 가위바위보를 한다. 이기면 학급 아이들 중 한 명씩 자기 팀으로 데려가는 방식이다. 선은 오늘도 맨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린다. 왕따가 감내해야 할 순간이다. ‘그래도 오늘은 혹시?’하는 표정이지만, 아무도 선을 뽑아주지 않는다. 결국 가위바위보에서 진 팀이 어쩔 수 없이 선을 데려간다. 게다가 피구 놀이 중에 선은 억울하게 퇴장당한다. 영화의 엔딩에도 똑같은 상황이 등장한다. 새롭게 왕따를 당하는 지아가 억울하게 퇴장당하기 직전이다. 그때 선이 용기를 내서 말한다. 지아는 금을 밟지 않았다고! 그렇게, 영화의 시작엔 혼자였는데 마지막엔 두 친구가 함께한다. 그 둘 상황 사이엔 많은 사건과 고비들이 놓여 있었다. 열한 살 먹은 두 소녀는 지아가 전학오던 날, 첫 눈에 서로를 친구로 받아들인다. 마음이 통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그렇듯, 좋아 죽던 선과 지우는 작은 오해와 의심들로 다투기 시작하고, 급기야 서로의 비밀을 공개적으로 발설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선에게는 귀염둥이 동생이 있다. 이 꼬마는 단짝 친구와 놀다가는 꼭 여기저기 상처를 입는다. 선은 동생한테 화를 낸다, 같이 때려주라고, 맞고만 들어오지 말고. 그때 동생이 너무도 태연하게 말한다. “그럼 언제 놀아? 걔가 날 때리고 내가 걜 때리고 또 걔가 날 때리고 내가 또... 그러면 우린 언제 놀아?”

, 이 영화엔 또다른 관람 포인트가 있다. 감독이 어른들을 다루는 방식이다. 아이들 주변엔 늘 어른들이 있다. 착하고 열심히 사는 엄마, 술 잘 마시는 아빠, 종교생활에 열심인 할머니, 그냥 무난한 담임선생님,... 그들 중엔 심하게 모난 사람도 없고 아이들에게 큰 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문제에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영화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어른을 바라본다. 아이들 문제를 어른이 해결해줄 수 없다. 내가 열한 살 은영 어린이였을 때도 그랬다.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서로에게서 배우고 영향을 끼친다. 그 지점을 뚝심있게 그려내어 고맙고 신선했다. ! 어린이 배우들의 연기 역시 포인트다. 윤가은 감독은 대체 어떻게? 꼬마 친구들의 연기력을 이 지경(?)까지 끌어낼 수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