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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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는 동안 겪었던 크고 작은 시련과 좌절

여기 실패를 이야기하려는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이 말하는 “나의 보물같은 실패 이야기”

50+연사가 함께하는 2020 실패박람회가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열렸다.

 

 

l 웃기지만 우습지 않은 개그맨, 김미화

l 개그콘서트가 사라진 것은 개그의 실패를 말하는 것인가?

8월 18일, 55일간 퍼붓듯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햇빛이 도시의 포도 위로 쏟아져 내리는 오후 3시, 서울시50플러스재단(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는 이색 박람회가 열렸다. 실패박람회! - “나의 보물같은 실패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실패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유명인사였다. 최고의 코미디언에서 시사 진행자로 거침없이 하이킥을 하던 어느 날 그 모든 빛나는 것들을 내려놓고 농사꾼이 되어 <김미화마을>을 운영하는 김미화 씨가 주인공이었다. 아날로그 마니아 김지연 씨와 협력적주거라는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기 위해 ‘터무니있는계획’ 운동을 하는 김수동 씨가 보조 연사로 나왔다. 이날 쏟아진 실패이야기는 유튜브로 생중계되었다.

 

‘실패박람회’ 는 실패를 응원하고 재도전을 지지하는 사회적 인식변화와 코로나19위기 극복을 위한 범국민적 응원과 사회적 연대를 위해 행정안전부에서 진행하는 전국적인 행사다. 8월18일(화)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2시간 동안 방송인, 개그우먼 김미화 씨의 “실패고수전-나는 이런 일까지 해봤다”를 시작으로 20일(목), 같은 시간에 ‘시를 잊은 그대에게’로 대중에게 익숙한 한양대 정재찬 교수의 “낭만실패전-잃어버린 순수를 찾아서”, 21일(금) 국립과천과학관 김정모 관장의 “실패운수전-나에게만 없는 운빨!”등 3회가 연속으로 열린다. 모든 ‘실패이야기’는 교육연극협동조합 재미사마대표 서하경 씨의 사회로 진행된다.

 

 

 

 

 

l “나 이런 일까지 해봤다”

l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다양한 시도와 경험

실패박람회 첫 번째 연사인 김미화 씨는 ‘나에게 실패란?’, ‘나는 이런 일까지 해봤다’를 주제로 자신의 실패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코미디언은 실패 이야기에서조차 웃음을 준다. 김미화 씨는 6세부터 코미디언 꿈을 꾼 소녀였으나 TV용 얼굴이 아니라는 이유로 코미디언 꿈으로 가는 첫 번째 좌절을 맛본다. 1984년, 19세에 데뷔할 때부터 할머니, 아줌마로 연기를 시작했다. 일자눈썹을 한 순악질 여사, 쓰리랑 부부 등으로 코미디언으로서 명성을 날리기도 한다. 코미디가 하향길로 접어들며 모두들 불안해할 때, 그녀는 ‘개그콘서트’ 아이디어를 낸다. 연극무대 요소를 코미디에 접목하자는 생각이었다.

 

개그콘서트는 자신을 살리는 일이었으나 얼마 못 가 후배들에게는 자리를 내주게 되고 개그맨 전유성과 함께 앵콜 코미디를 기획했으나 거기서도 또 후배에게 밀려나고 만다. 좌절과 실망이 반복되었으나 그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코미디언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은 그녀의 인생이 전환점이 된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진행하면서 시사프로그램진행자에 대한 시중이 고정관념을 깬다. 당시 코미디언인 그녀는 언론인 톱10에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닥친다. 한때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블랙리스트 사건’, 그녀도 블랙리스트에 오르면서 방송에서 하차하고 그길로 용인으로 내려가 지금까지 17년째 살고 있다. 사람들은 시골로 내려간 그녀를 실패자로 인식하고 ‘낙향’했다고 말한다.

 

 

 

 

 

l 생-로병사

l 스스로 발견한 삶의 방향

그녀는 내비게에션에도 나오지 않는 동네로 귀향 후, “김미화마을”이라 이름을 짓고, 카페 ‘호미’도 운영한다. 그녀는 지금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그녀도 실패가 두렵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직장, 학교, 그 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개인의 실패와 달리 자신은 온 국민에게 실패자로 인식되었던 적이 있었다며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긍정은 긍정을 부르고 부정은 부정적인 기운을 부른다며 스스로 마인드콘트롤로 긍정적이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생-로병사 (生-老病死), 그녀는 생로병사를 생-로병사라고 읽으며 ‘노병은 죽지 않고 살아난다’는 뜻으로 읽는다고 했다. 유튜브로 그녀의 실패이야기를 듣던 참여자들이 상담해오는 실패담에 대해 그녀는 자신 겪은 일화를 들려주는 말로 용기를 주기도 했다.

 

한때 시사계 손석희와 어깨를 겨루던(?) 김미화가 아니고 농사짓는 김미화가 현재의 김미화다. 코미디하는 김미화가 농사를 짓는다 해서 김미화가 없는 게 아니다. 김미화는 여전히 김미화다. 실패를 두려워하는가, 그녀는 50+세대에게 질문을 하며 ‘남 위해 살지 말고 자신을 위해 살라. 실패 후 느껴지는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남의 문제에 신경 쓸 만큼 그렇게 한가하지도 관심도 없다’면서 다시 한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실패했을 때 내었던 아이디어에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게 ‘개그콘서트’였다며 50+세대도 그렇게 함께 살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l 가훈, 먼저 죽지 말자

l 복수할 사람 있지만 복수하려다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아

그녀의 말 한 마디마다 개그 본능이 여전히 생동하다는 걸 느꼈다. ‘50년을 힘들게 살았는데 앞으로 50년 왜 그렇게 살어? 기쁘게 살아야지.’ 왕년에 있던 자리는 의미없다. 지금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지금 행복하기도 벅찬데, 과거에 얽매어 불행할 이유는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살면서 억울한 일도 있었고 힘들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보다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애쓴다. 그녀가 살고 있는 김미화마을은 농부를 돕는 사회적 기업이라고 한다. 1일 장터를 열어 예술인의 공연을 보러왔던 사람들이 농산물이나 주민들의 수공예품을 살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며 함께 사는 것, 그녀는 왕년의 순악질여사의 “음메 기살어!”를 외치자며 실패이야기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