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무장애 자락길, 다르게 보고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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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갈아타야 할 정류장, 충정로역 5호선 8번 출구(2호선 7번 출구)가 가까워지자 마음이 바빴다. 마을버스 정류장을 정확히 알지 못한 탓이다. 마침 기자가 탄 버스 진행 방향에서 서대문 마을버스 소형 02번이 오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오자 몇 걸음 거리에 마을버스가 멈췄다. 버스에 오르니 등산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 배낭을 안고 앉아 있었다. 기사한테 안산 가냐고 묻지 않아도 될 것 같았지만 물어보니 안산 자락길에 갈 수 있단다.

 

 

 

 

안산은 서대문구 한복판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295.9 미터로 낮다. 그런 지형 조건 때문인지 2013년에 자락길이 ‘무장애 숲길’로 조성되었다. 전국 최초 무장애 숲길인 자락길은 도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휴식처로, 시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그만큼 ‘무장애’는 약자를 배려한 기반, 관리, 편리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으로 판단해도 무방할 것이다.

참고) 서울의 산과 공원 http://parks.seoul.go.kr

서울 둘레(두드림)길 http://gil.seoul.go.kr

구청 푸른 도시과 : 330-1395 *.안산공원관리사무소 : 3140-8383

 

안산 공원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길이 7Km 무장애 자락길 이외도 팔각정자, 야외탁자, 화장실, 약수터, 관리사무소, 안내판, 만남의 광장, 산책로, 연희숲속쉼터, 조합놀이대, 잔디마당, 숲속쉼터, 허브원, 습지, 계류시설, 홍제천 수변마당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자락길 안내도 범례는 자락길, 등산로, 화장실, 전망대 초록숲길, 약수터, 휴게공간까지 표시되어 있다.

 

버스로 10분 정도 달려 가파른 언덕길로 들어섰다. 산이 가깝다는 예감이 들었다. 얼마 뒤 목적지인 천연동 뜨란채 아파트 101동이 보였다. 진입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안내판을 살피고 하나씩 사진을 찍었다. 이름 없는 샛길은 일부러 내려가 보기도 하고, 오가는 사람한테 묻기도 했다. 기자는 서대문구에 살기도 하지만 자락길이 좋아서 한 달에 두세 번은 걷고 있다. 늘 집과 가까운 진입로로 이어지는 연희동 서대문구청 뒷길만 다녔다. 그래서 연희동 이외 5개 동으로 둘러싸인 자락길 다른 진입로에는 관심이 없었다. 안산 자락길은 순환형으로 어디서 진입해도 한곳에서 만난다. 그래서 어디로 진입하든 한 바퀴 7km 걷는 만족감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첫 번째 만난 뜨란채 위 개방화장실을 지나고 얼마 뒤에 독립문공원 쪽에서 올라오는 중년 부인들을 만났다. 삼삼오오 나란히 진입로로 향하고 있었다. 강남구, 파주, 일산에 사는 친구들인데 모임하러 온다고 했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기꺼이 산행 후에 모임하려고 하는 이유가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무장애길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독립문 쪽에서 올라온 부인들은 계단을 걸어 본격적인 나무데크로 진입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문득 만약 누군가 휠체어를 탔다면 어디로 진입해야 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첫 번째 만난 뜨란채 위 개방화장실 근처까지 가야만 되었다.

 

기자가 아침부터 흐린 날씨에도 집을 나선 이유는 늘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진입로로 가기 위해서였다. 또 몇 년 전에 본인 블로그에 구독자가 휠체어로 가려면 어디에 있는 진입로로 가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는 사정상 블로그를 방치하고 있던 때였다. 한참 지난 뒤에야 우연히 질문을 발견하고 댓글로 서대문구청 뒷길 하나만 안내했다. 댓글을 쓰면서 본인도 궁금했고, 안타까웠다. 그래도 직접 찾아볼 생각을 못 하고 지내다가 50+ 시민기자가 되어 이참에 숙제를 풀어볼까 해서 나선 것이다.

 

독립문파크빌아파트 위쪽 길에 접어들자 북카페 쉼터 안내표시에 이어 전망대 안내판을 확인했다. 무악재역으로 내려가는 등산로 폐쇄 안내도 눈에 띄었다. 조금 더 가니 나무데크가 아닌 시멘트바닥 길이 몇 미터 이어졌다.

 

 

 

 

비는 추적추적 내렸지만 길에서 만난 중년 부부는 아예 우산을 쓰지 않고 힘차게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비 맞은 나뭇잎도 한결 싱그러운 느낌이었지만 빗속을 뚫고 소곤소근 얘기하며 걸어가는 중년 부부한테서도 긍정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역시 저 부부도 자락길을 동네를 한 바퀴 도는 듯 가벼운 느낌으로 걷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어느새 산 중턱에 있는 너와집 쉼터 안내표시를 발견했다. 서대문구청으로부터 1키로 미터 남짓 거리에 와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직진하니 전철 3호선 홍제역까지 거리 안내판이 보여 진입로 내려가 봤다. 그때 멀리서 초록색 마을버스가 오고 있었다. 소형 09번 마을버스로 안산 자락길 진입로까지 닿을 수 있음을 처음으로 알았다. 천연동 뜨란채 아파트, 독립문 공원길에 이어 세 번째 휠체어 진입로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세 번째 화장실도 지나고 기자가 늘 다니던 서대문구청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최근에 생긴 서대문도서관과 연결된 사유의 길 입구에는 책장과 쉴 수 있는 긴 의자가 놓인 공간이 보였다.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휠체어 무료충전기와 무료 휠체어, 유모차 대여소까지 확인했다. 대여소에는 어르신 두 명이 한 조로 근무한다고 했는데 이용자는 1일 평균 3-4명으로 생각보다 적었다. 참고로 이곳 이외는 휠체어와 유모차 무료 대여소는 없다.

 

 

 

이틀 뒤에는 봉원소공원(봉원사부근) 진입로를 지선 7024 버스를 타고 직접 확인하고, 안산 숲의 자랑거리 중 으뜸인 메타세쿼이아가 있는 숲속 쉼터 쪽으로 지나 소나무 숲과 서대문구청 뒷길을 거쳐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쪽으로 내려왔다. 셋째 날에는 독립문 공원 가는 버스 지선 7737을 타고 독립문 공원에서 진입로까지 가서 확인했다. 마지막 넷째 날에 서대문구청 뒤쪽에서 시계방향으로 걸어 봉원소공원으로 내려왔다.

 

이번 취재로 기자는 안산 자락길, 진입하는 마을버스 번호와 노선까지 파악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마을버스를 이용할 기회도 없고 관심도 전혀 없었다. 안내판에 적힌 화장실 수와 위치 그리고 길바닥이 어느 위치에는 나무데크, 흙, 시멘트인지도 알게 되어 휠체어로 어디에서 시작하는 게 덜 힘든지도 안내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무장애길을 만들기까지 관청에서 노력한 흔적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홍제동 위치 쪽에 최근에 만든 넓은 쉼터는 계단 길과 휠체어 진입가능 나무데크가 각각 있다.

 

기자가 확인한 휠체어 진입 가능한 곳은 모두 다섯 곳인데 두 곳, 봉원소공원과 무악재역에서 북카페 바로 밑까지는 승용차 진입이 가능하지만, 데크까지 휠체어로 이동하는 길이 경사가 심하고 길바닥이 평평하지 않아 휠체어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안산자락길 휠체어 진입 가능 위치 안내-

 

 

인터넷에서 검색어 ‘안산, 안산 자락길’을 치면 정보가 잡화점 진열장에 깔려 있는 물품처럼 많다. 내용을 보면 일반인을 위한 길 안내가 대부분이고 ‘약자를 위한 길 안내’는 거의 없거나 있어도 부족하다. 휠체어 진입 가능한 길 안내가 명확하지 않으면 휠체어 이용자에게 자락길은 ‘그림의 떡‘인 것을 생각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반증이 아닐까 한다. 자락길을 즐기는 사람은 무장애길의 원래 취지가 무색하리만큼 약자보다 일반인이 훨씬 많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실제로도 그렇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로 인하여 예측하지 못한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면서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도 받고 있다. 그런 이유로 도심 공원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통계를 접했다. 기자 역시도 같은 이유로 안산을 더 찾고 있다. 코로나19로 앞만 보고 가성비만 따지던 팍팍한 삶에서 조금 벗어나, 늘 보던 길을 다르게 보고 느끼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이번 자락길을 취재하며 평소 몰랐던 정보도 많이 얻고, 오래된 숙제도 풀어서 50+ 시민기자로서 뿌듯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