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잠드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자다가도 깨어 알림을 확인한다. 누구라도 그렇다. 친구가 올린 여행 사진, 동료의 승진 소식, 누군가의 고급 레스토랑 인증샷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엿보게 되는 순간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 나만 빠진 것 같은 불안. 영어로는 이것을 'FOMO(Fear Of Missing Out)'라고 부른다.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FOMO는 단순한 신조어가 아니다. 소셜미디어가 일상이 된 시대에 우리가 집단적으로 경험하는 새로운 형태의 불행이다. 그런데 이 감정의 구조는 사실 새롭지 않다. 170년 전 플로베르가 이미 소설 한 편으로 정확하게 해부해 두었다.





“그녀는 외젠 쉬의 소설에서 가구 배치의 묘사를 공부했다. 

개인적 욕망을 공상으로 만족시키기 위하여 발자크와 조르주 상드의 소설을 읽었다…

파리는 바다보다 더 광막해져서 엠마의 눈에는 진홍빛 분위기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 귀스타브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




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1857)의 주인공 엠마 보바리는 시골 의사의 아내다. 그녀는 낭만주의 소설을 읽으며 자랐고, 그 소설 속 화려한 삶을 자신의 것으로 꿈꾸었다. 문제는 현실이 그 꿈과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엠마는 그 간극을 소비로 메우려 했다. 고급 직물, 값비싼 가구, 화려한 드레스를 사들였다. 그녀는 물건을 살 때마다 잠시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다. 욕망은 채워지는 순간 더 큰 욕망으로 대체되었다. 엠마는 결국 빚더미에 앉았고, 파국을 맞았다. 플로베르는 엠마를 통해 소비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얼마나 치명적인 환상인지를 보여주었다. 엠마 보바리는 19세기 프랑스 시골의 인물이지만, 그녀의 욕망 구조는 21세기 한국의 우리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 구조를 이론적으로 분석했다. 바우만의 《행복해질 권리》(원제 The Art of Life, 21세기북스, 2025)는 내가 감수한 책이기도 하다. 감수 과정에서 이 책을 꼼꼼히 읽으며 새삼 확인한 것이 있었다. 바우만의 진단이 우리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인생에도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사실이다. 바우만은 현대 소비사회의 핵심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명한다. 소비사회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끊임없이 생산한다. 물질적 상품뿐 아니라 사랑, 정의, 행복 같은 추상적 가치마저 상품화된 세계에서 소비는 행복으로 가는 길처럼 포장된다. 그러나 아무리 소비해도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소비사회는 구조적으로 불만족을 재생산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50-60대가 살아온 한국의 역사는 소비 욕망의 압축판이다. 1970~80년대에 흑백 텔레비전이 컬러 텔레비전으로 바뀌었고, 냉장고와 세탁기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1990년대에는 아파트 브랜드가 계급의 언어가 되었다. 어느 동네,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가가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말해주는 시대가 왔다. 2000년대 이후에는 명품 브랜드가 일상으로 내려왔다. 백화점 명품관 앞에 줄을 서는 풍경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소비는 단순한 필요의 충족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공의 증거였고, 타인에게 보내는 신호였으며,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엠마 보바리가 고급 드레스를 살 때 느꼈던 그 잠깐의 충만감을 이 세대는 집단적으로 경험했다. 그리고 그 충만감은 언제나 오래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돈이 더 많아지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의 대답은 냉정하다. 특정 시점에서는 소득이 높을수록 행복도가 높다. 그러나 한 나라의 소득이 장기적으로 증가해도 평균 행복도는 그에 비례해서 오르지 않는다. 이것이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그 이유는 사회적 비교에 있다. 내 소득이 올랐을 때 행복한 이유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의 소득이 함께 오르면 비교 기준도 함께 오르기 때문에 상대적 우위는 사라진다. 돈으로 행복해지는 데는 구조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중년 이후의 나이에 더 많이 벌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기대는 이 역설 앞에서 힘을 잃는다.

그렇다면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잉글하트의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는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행복도가 높고 삶의 만족도가 높은 나라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안정된 나라들이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이 나라의 공통점은 단순히 부유하다는 데 있지 않다. 잉글하트는 이 나라에서 자기표현적 가치(self-expression values)가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주목했다. 자기표현적 가치란 더 많이 갖는 것보다 자신답게 사는 것, 물질적 축적보다 자율성과 의미와 관계를 중시하는 가치 지향이다. 경제적 생존이 보장된 이후 인간의 행복은 더 이상 소득의 크기로 설명되지 않는다. 무엇을 갖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스털린과 잉글하트가 함께 가리키는 방향은 같다. 중년 이후의 행복은 소비로 도달할 수 없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삶을 어떻게 표현하고 가꾸느냐에 달려 있다.





“무엇을 소유해도 결국 당신은 행복해질 수 없다” 


- 지그문트 바우만, 《행복해질 권리》





엠마 보바리의 비극은 그녀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소비가 이상을 충족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FOMO 역시 마찬가지다. 타인의 삶을 스크롤하면서 느끼는 불안은, 소비와 소유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신호다. 바우만은 그 대안을 이렇게 제시한다. 삶을 자신만의 예술 작품처럼 대하라고. 소비로 타인의 삶을 모방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가꾸라고. 그것이 소비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이다. 인생의 후반부는 더 많이 갖는 경쟁에서 내려와, 처음으로 자기표현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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