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공개된 아이유의 신곡 'Dear my crazy soulmate' 뮤직비디오는 하루도 안 돼 조회수 300만을 넘겼어요. 그런데 주인공은 아이유가 아니었어요. 그 자리를 채운 건 80대의 원로 배우 김영옥과 나문희였죠. 곡의 부제는 '유인나에게'. 11살 나이 차를 넘어 오래 이어온 절친 유인나에게 바친 노래를, 아이유는 1961년 MBC 성우 1기로 만나 60년 넘게 우정을 지켜온 두 배우에게 맡겼어요. 촬영을 마친 뒤 회식 자리에서 나문희가 "매주 꾸준히 전화하는 사람은 언니밖에 없어"라고 하자, 김영옥은 "나이가 들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답했다고 해요.


뮤직비디오 속에는 이 관계를 함축하는 대사가 하나 있어요. 스스로 경찰서 유리창을 깨고 교도소에 들어온 영옥에게 문희가 놀라자, 영옥이 "실망했지"라고 묻고, 문희는 이렇게 답해요. "넌 내 앞에선 평생 이상해도 돼." 많은 사람이 이 영상에 마음을 뺏긴 이유는 여기에 있어요. 나이 들어서도 '이상해도 괜찮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흔치 않다는 걸 다들 알기 때문이죠.
60년 우정도, 처음엔 '동네 사람'처럼 가벼운 지인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어요. 우리는 60년 우정에 감동하면서도, 정작 그 60년의 '첫 1년'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잘 생각하지 않아요. 김영옥과 나문희도 처음엔 그냥 같은 직장에 들어온 동료였어요. 매일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고, 별일 아닌 대화를 반복하는 시간이 쌓여 60년이 된 거죠.
즉 깊은 우정의 재료는 결국 '자주 스치는 사람'이에요. 문제는 지금 4060에게 그 '자주 스치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가족과 오래된 친구는 있어도, 매일의 일상을 채워줄 동네 사람은 좀처럼 없거든요.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9월 15일 공개한 '서울시 중장년 삶의 질 지표'(서울 거주 40~64세 2,058명 조사)가 정확히 이 지점을 짚어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다는 응답은 90.3%로 높았어요. 그런데 정작 지역사회 소속감은 5점 만점에 2.72점으로, 12개 영역의 주관 지표 중 가장 낮았어요.
국내여행(80.5%), 문화예술 관람(73.9%) 같은 활동은 활발한데, 정작 여가시간이 충분하다는 응답은 27.1%뿐이었죠.
눈여겨볼 지점은 이 활동들의 공통점이에요. 여행이나 전시 관람은 한 번 마음먹고 시간을 내야 하는, 말하자면 '가끔 크게' 하는 여가예요. 반면 동네에서 매일 스치듯 쌓이는 '작고 잦은' 여가는 따로 통계에 잡히지도 않을 만큼 비어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정리하면 이래요. 위급할 때 전화할 사람은 있는데, 평소에 마음 붙일 동네는 없다는 것이죠. 가족이나 오래된 친구 같은 깊은 관계가 '비상시의 안전망'이라면, 이웃이나 취미 모임처럼 가볍게 스치는 관계는 '일상의 온기'를 채워주는 몫이에요. 지금 중장년에게 비어 있는 건 안전망이 아니라 바로 이 일상의 온기예요. 그리고 가볍게 시작한 관계도 오래 쌓이면 김영옥과 나문희처럼 깊은 관계로 자라기도 하죠. 그래서 필요한 건 거창한 인연이 아니라 그 시작점, '동네 사람'인 셈이에요.
20년만에 돌아온 예능이 던진 질문
이 흐름은 아이유의 뮤직비디오 하나로 끝나지 않아요. 예능 쪽에서도 신호가 보여요. 20년 역사의 KBS 간판 예능 '해피투게더'가 6년 만에 부활하면서 붙인 부제는 '혼자가 아니어서 좋아'였어요. 2026년 7월 첫 방송된 이 시즌은 출연자가 혼자가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 이른바 '인생 팀메이트'와 함께 무대에 올라 자신의 서사를 노래로 풀어내는 오디션으로 완전히 새롭게 짜였어요.
제작진은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참가자의 사연과 관계성을 중심에 뒀다"고 밝혔죠. 20년 장수 브랜드가 부활하며 하필 '혼자가 아니어서 좋다'는 제목을 택했다는 것 자체가, 지금 이 시대가 관계에 목말라 있다는 방증 아닐까요.

취미로 시작해서 친구가 되는 사람들
일상 속에서는 이 흐름이 더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요즘 댄스학원에는 골프 대신 셔플댄스를 배우러 오는 50·60대가 부쩍 늘었어요. 한때 아이돌 안무로 반짝 알려졌다가 시들해졌던 이 춤이, 최근 유튜브와 숏폼을 타고 중장년 사이에서 다시 불붙은 거예요. 한국셔플댄스협회에 따르면 지도자 과정 지원자가 1년 전보다 약 3배로 늘었다고 해요.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이 춤을 찾는 경로예요. 대구의 한 회원은 "집 근처에 협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등록했다"고 했는데, 실제로 이 지부는 1년 만에 회원이 80명으로 늘었고 평균 연령은 50대예요. 당근 모임에서 '시니어 셔플댄스'를 검색하면 한 구(區) 안에서만 20여 개 모임이 운영 중이고, 활성화된 모임에는 100~200명이 참여할 정도로 커졌어요.
더 눈여겨볼 지점은 그다음이에요. 지부장은 "선생님 없이도 회원들끼리 찾아와 연습할 만큼 열정이 높다"고 말해요. 강습이 끝나도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 계속 만난다는 뜻이죠. 셔플댄스를 계기로 만난 사람들이, 셔플댄스 없이도 만나는 사이가 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취미가 관계로 넘어가는 순간이고, 동네 안에서 '자주 스치는 사람'이 실제로 만들어지는 방식이에요.
셔플댄스가 이렇게 동네 단위로 퍼지는 흐름이라면, 지역 기반 오프라인 모임은 아예 그 자체가 서비스로 조직되고 있어요. 지역 커뮤니티 서비스 '당근모임'은 올해 상반기 월간활성이용자(MAU)가 1,000만 명을 넘었어요. 모임 수는 전년 동기 대비 74%, 가입자는 128% 늘었고, 이용자 연령대는 40대 27%, 50대 23%, 60대 이상 8%로 사실상 4050·5060이 이 성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어요. 걷기, 등산, 독서, 외국어처럼 같은 학교나 직장이 아니라 '지금의 관심사'로 사람이 모이는 방식이에요.

혼자 신청해도 괜찮아요, 친구는 매칭해드립니다?
과거에는 고향, 학교, 직장처럼 이미 맺어진 관계 안에서 함께할 일을 찾았다면, 요즘은 순서가 바뀌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정한 뒤, 그걸 같이 할 사람을 찾는 식이에요. 이런 수요를 겨냥한 서비스도 속속 생기고 있어요. 5060 소셜 플랫폼 '시놀'은 지난 7월 또래 회원들과 함께 떠나는 '모임형 여행' 서비스를 선보였어요. 혼자 신청해도 취향과 연령대가 비슷한 회원들로 팀을 꾸려 여행하고, 여행 이후에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후속 모임까지 연계하는 방식이에요. "여행을 가고 싶어도 함께 갈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이용자들의 요구에서 출발한 서비스였죠.

방치하면 병이 되고, 쌓이면 수명이 되는 '관계'의 힘
이 흐름이 감성적인 유행으로만 읽히면 안 되는 이유가 있어요. 방치하면 실제로 커지는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5년 펴낸 연구보고서 「인구변화 대응 사회보장정책 성과분석을 위한 수요 측면 지표 연구」에 따르면, 소득이 없는 50~64세 중 '위로해줄 사람·돈을 빌려줄 사람·아플 때 가사를 도와줄 사람'이 모두 없다고 답한 비율은 2019년 8.3%에서 2023년 17.7%로, 4년 새 2.1배 뛰었어요. 65세 이상 노인(19.2%)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온 거예요.
국회미래연구원이 최근 9월15일에 발표한 「인구통계 Brief」 제26-4호 '중장년 1인가구의 사회적 고립 실태 및 특성'을 보면 중장년 1인가구 224만 가구 중 48.8%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고, 66.7%는 혼자 여가를 보낸다고 했어요.
보건복지부의 '2024년 고독사 사망자 실태조사'(2025.11 발표)에 따르면 그해 고독사 사망자의 62.9%가 50·60대였고요. 퇴직과 자녀 독립, 이혼·사별을 거치며 직장과 가족 중심으로 짜여 있던 관계망이 한꺼번에 흔들리는 시기, 그게 바로 지금의 4060인 셈이에요.
그렇다면 관계는 정말 삶의 질을 좌우할까요. 1938년 시작해 지금도 진행 중인 하버드 성인발달연구는 85년 넘게 724명(하버드생 268명, 보스턴 빈곤층 청년 456명)의 삶을 추적했어요. 이후 배우자와 자녀까지 더해져 지금은 1,300명 넘게 이어지고 있죠. 연구가 반복해서 확인한 결론은 다음고 같아요. 50세에 인간관계에 만족한다고 답한 사람이 80대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가장 건강했어요. 재산도, 학벌도, 심지어 콜레스테롤 수치 같은 건강 지표도 아닌 관계였죠.
중요한 건 친구의 숫자가 아니라 관계의 질이었고, 이 연구를 이끈 로버트 월딩거 교수는 "관계를 강화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고 말했어요.
동네 우정, 인사 한마디로 시작된다
결국 문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김영옥과 나문희의 60년도, 셔플댄스 모임의 새 친구들도 시작은 같았어요. 매일 스치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뭘까요.
시니어 전문 미디어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소개한 '60대 이후 동네 친구 만드는 법'으로 다섯 가지를 소개했는데, 관통하는 원칙은 하나예요. 크게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부터 시작하라는 것이에요. ▲같은 시간, 같은 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웃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기 ▲예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보다 지금 즐기는 운동이나 취미로 대화를 시작하기 ▲집안 사정이나 깊은 고민까지 캐묻기보다 가볍고 담백한 거리를 지키기 ▲주민센터나 복지관, 50플러스캠퍼스처럼 비슷한 또래가 모이는 공공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이용하기 ▲정치·종교처럼 논쟁을 부르기 쉬운 주제는 피하고 상대 말에 공감하며 듣는 태도 갖기. 이게 바로 동네에서 '자주 스치는 사람'을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에요.
김영옥과 나문희는 같은 직장에서 만난 동료로 시작해 60년을 함께 걸었고, 셔플댄스 모임의 중장년들은 낯선 사람과 스텝을 맞추며 새 친구를 얻었어요. 당근모임과 시놀에 모이는 이들은 학연도 지연도 없이 오직 '지금의 관심사' 하나로 연결됐고요.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해요. 관계를 그저 흘러가게 두는 대신, 다시 한번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쪽을 택했다는 것이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볼게요. 위급할 때 전화할 사람은 있는데 마음 붙일 동네는 없다던, 그 2.72점이라는 숫자. 부끄러운 성적표가 아니라, 아직 채워지지 않은 자리를 보여주는 지표에 가까워요.
그리고 그 자리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아주 작은 태도에서부터 채워지기 시작해요. 오늘 마주친 이웃에게 건네는 인사 한마디, 예전 직함 대신 요즘 관심사로 시작하는 대화 한 번. 그 작은 선택들이 쌓이면, 언젠가 우리도 누군가에게 "나이가 들어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라고 말하게 될지도 몰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