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의 슬기로운 언어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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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 우리가 잘 듣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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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표현하려는 본능적 욕구와 소통의 필요에 따라 언어 활동을 한다. 쓰고, 읽고, 말하고, 듣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말하기에 주로 관심을 두지만, 사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 기능인 ‘듣기’이다. ‘듣기’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에서 음성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행위이므로 잘 듣지 않고는 잘 말할 수 없고 제대로 소통할 수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잘 듣지 못하고 산다. 그래서 사람마다 모두 불통의 시대를 개탄하고 안타까워하며, 세상 모든 조직과 문화는 소통을 과제로 삼는지도 모르겠다.

 

 

 

 

 

 

ㅣ잘 듣지 못하면

 

 우리는 사람의 귀가 두 개인데 입은 하나인 까닭이 말하기보다 듣기를 많이 하라는 뜻이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즐기고 듣기는 소홀히 한다. 마음을 다해 듣는 경청은 더더욱 그렇다. 잘 듣지 못하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니 판단할 수 없고 처한 상황에 적응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상대방과 진정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해 나갈 수 없다.

 

 

 

ㅣ우리가 잘 듣지 못하는 이유

 

 우리가 잘 듣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신체 조건이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각이 질병이나 노화로 둔감해지면 이제까지 선명하고 또렷했던 청각 신호들이 흐릿하고 뭉개진 감각으로 다가온다. 옛말에 백 번 듣느니 한번 보는 것이 낫다고 했지만 나이 들고 나서 소통하려면 사람에 따라서는 건강한 청각이 훨씬 더 소중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잘 들리지 않으니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니 분명하게 생각할 수도 없다. 당연히 분명하지 않은 생각을 말로 바꾸어 표현할 수도 없게 된다.

 

 두 번째 이유로 모르면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리 집중하더라도 모르는 외국어로 말하는 소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세대와 분야를 무한히 쪼개나가는 지금의 세태 속에서 세상의 모든 말을 이해하기는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자기 일에 집중해서 평생 살아온 시니어들에게 젊은 세대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이 바다 끝처럼 아득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 양식을 알지 못하면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변화에 대한 민감성과 알려는 노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결코 잘 들을 수 없다.

 

 세 번째로 마음이 닫히면 잘 들을 수 없다. 우리는 연륜을 더해가면서 점점 더 굳건한 자의식과 가치관 그리고 사고방식을 가진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세상을 두루 이롭게 하는데 크고 작게 이바지한다. 그러나 자신만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굳건할수록 변화하는 세상의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고, 새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사회 현상들과 담을 쌓기 쉽다. 내 안의 소리가 클수록 바깥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 법이다. 마음이 닫히면 자신과 코드를 달리하는 모든 말이 귀에 담기지 않는다. 그리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점차 잃게 되고 듣지 못하는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지게 된다.

 

 이런 현상은 흔히 짐작하듯 차이 나는 세대 사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시니어쯤 되고 보면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끼리도 젊은 시절부터 익히 알던 사고방식이나 태도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다투거나 갈라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굳고 견고해진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작은 차이를 더 크게 키워 마음을 닫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마음 바깥에 내쳐진 상대의 말은 절대 들리지 않는다. 고집스러운 노인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혜량의 덕을 갖춘 지혜로운 어른으로 살 것인지는 오직 자신의 마음을 여닫음에 달려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잘 듣지 못하는 이유로 ‘잘못된 태도’를 들 수 있다.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듣는다. 듣기 싫은 소리는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마음에 드는 소리만 들어서는 말하는 사람의 생각을 제대로 알 수 없고 충분하게 이해할 수 없다.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은 또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상대에 대한 선입견 따위로 상대의 성향이나 의도를 단정 짓는다. 그리고 상대가 말하려는 내용을 서둘러 추정하고, 나름대로 거기 대비해 자기 태도를 결정짓는다. 이미 왜곡된 시각과 태도로는 상대의 말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상대가 어떤 말을 하던 그 말을 자기 생각의 틀 안에 욱여넣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 듣지 못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듣기보다 말을 하려고 든다. 그러다 보면 상대는 충분히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없게 되고,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달리 대화가 산으로 갈 수도 있다. 또한, 말하는 상대는 자신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한다고 여기게 되므로 둘의 관계는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화자와 청자가 충분히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대화에서 상대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사람 가운데는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상대의 말이 듣기 싫거나 상대의 말 가운데 어떤 조각에 자기 생각을 심어 키워나가다 보니 상대의 말을 듣지 못하게 되는 경우이다.

 

 

 

 

 

 

 극심한 경우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아 언쟁하려 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상대가 자기와 다른 견해를 말하거나 청자 자신에 대한 비평 등을 말하는 경우 감정적으로 언쟁을 하려 든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상대방에 대해 예단을 가지고 대화할 때도 언쟁으로 이어지기 쉽다. 충분히 말하고 충분히 듣는 대화가 아니면 대화 중의 언쟁은 대부분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나열한 이런 태도로는 결코 잘 들을 수 없고, 경청의 유익인 소통과 관계 맺음을 맛볼 수 없다.

 

 잘 듣지 못하는 이유를 알았으니 이제 다음 편에서는 잘 듣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