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삶의 무대가 중년으로 옮겨지면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한다. 나는 꼰대로 보이기 싫어서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를 생활화하고 인터넷 신조어도 외우며 젊은 세대 눈치를 살핀다. 오랜만에 대학 동창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애를 쓴다. ‘라떼는 말이야타령을 원천봉쇄하고픈 마음에서 일부러 내가 화두를 던지고 대화를 주도한다. 하지만 술잔이 몇 번 돌고 나면 벗들은 자식 자랑, 돈 자랑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토크의 끝엔 으레 고향 이야기가 나온다.

 

니들이 고향을 알아? 낭만 없는 것들! 자고로 고향이라는 건 말이야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로 대동단결한다. 이쯤 되면 서울이 고향인 니들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눈앞의 안주만 깨작거린다.

 

정말 그럴까? 서울에서 나서 한 번도 이 도성을 떠나본 적 없는 나는 그리워할 고향이 없을까? 13년 만에 5월 중 최악의 황사가 서울을 덮친 날, 나는 나의 살던 고향을 돌아보기로 했다. 혜화동! 개발 논리가 군림하는 서울에서, 내 기억 속 혜화동 한옥은 50년 세월을 버텨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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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송화가 아니라도 좋아라, 고향의 꽃은 무엇이든 따뜻했다

 

간밤에 어머니는 핸드폰 스피커가 떠나갈 듯 외쳤었다. “혜화초등학교! 거기 정문 맞은편! 그리로 들어가! 거기 안쪽 골목 가운데 집이야!” 고향 가는 길, 첫걸음도 떼기 전인데 이미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대체 어딜 말씀하는 걸까?

 

아무튼 혜화동 로터리. 연극 연습을 하러 자주 오가던 곳이라 익숙한데 묘하게도 자꾸만 긴장됐다. 혜화초등학교를 향해 걸었다. 거리가 단정하다. 정말 그랬다. 내 등 뒤로 건재한 거대도시의 풍경과 확연히 다르다. 왕복 2차선 도로 양쪽으로 정갈하게 뻗은 인도, 그 위로 쭉 펼쳐진 낮은 건물과 가게들. 마음이 살짝 놓였다. 압도적이지 않고,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공간, 휴먼 스케일이라는 것 때문인가 보다. 어느새 긴장감은 사라지고 옛집을 단박에 찾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2C+여기!+기시감+정도가+아니라+딱+그것이란+느낌!+50년+전+그날을+되살려준+공간을+만났다_400.jpg
어, 여기! 기시감 정도가 아니라 딱 그것이란 느낌! 
50년 전 그날을 되살려준 공간을 만났다

 

 

혜화초등학교 정문 맞은편 길은 나를 아늑하게 안아주었다. 고만고만한 빌라들을 지나 안쪽 골목으로 들어서니 여러 갈래 길로 나뉘어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눈을 감고 나의 느낌에 집중했다. 가만히 내 가슴이 이끄는 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나도 모르게 택한 왼쪽 길. 눈을 떠보니 그곳엔 높다란 한옥이 있다. 서너 계단 위에 대문이 보였다. 내 기억 속, 낡았지만 장식 못으로 한껏 치장된 대문이 오버랩 되었다. 대문 양쪽으로는 하얀 타일로 덮인 벽이 집을 빙 둘렀다. 중간중간 문양으로 박힌 파란색 타일들 덕분인지 무척 멋스러웠다. 어느새 상상 속 내 두 발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조막만 한 손으로 문을 열어젖히고 대문간에 들어섰다.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대문간에서 젊은 아빠는 그렇게 소리쳤었다. 속바지 차림의 엄마는 연신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고무 다라이에 물이 가득 차기도 전에 엄마는 비명 소리를 질렀다. 나는 부엌문 뒤에 숨죽이고 웅크렸다. 파랗디 파란 타일이 깔린 수돗가에 엄마의 하얀 두 발이 보였다. 어린 내 심장이 조여들었다. 눈물 때문인지 두 눈동자는 흔들렸다. 그런데 어? 불현듯 어여쁜 보랏빛이 눈에 들어왔다. 수돗가 옆 화분들에 다닥다닥 피어있는 채송화 꽃들이었다.

 

그 날은 내가 기억하는 생애 첫 기억이다. 그날 스물세 살의 엄마는 명동에서 친구를 만났다고 했다. 아빠는 7세 연하의 어린 아내에게 항상 옥색 치마저고리를 입으라고 강요했단다. 새빨간 나팔바지를 입고 집을 들어서는데 하필 아빠는 근무 중 잠깐 집에 들렀고 그다음은...

 

첫 기억 속의 옛집이 기적처럼 내 눈앞에 나타났다. 비록 새것의 냄새를 내뿜은 리모델링 한옥이었지만. ‘덜커덕대문이 열리고 남자아이 하나가 나왔다. 뭐가 바쁜지 재빠르게 뛰었다. 아이가 빠져나간 골목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건물들도 길들도 아담해서 하늘과 사람이 잘 보이는 동네다. 내 고향은 꽃피는 서울, 그중에 처음은 혜화동, 채송화꽃 흐드러진 아담한 고향.

 

50+에세이작가단 정호정(jhongj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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