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재활병원에 계시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밥 먹었니? 엄마의 똑같은 첫 질문이다. 대충 먹었다고 하니 왜 대충 먹느냐고 잔소리를 하셨다. 올해 여든넷이 된 엄마의 목소리에 아직도 힘이 느껴져서 다행스러웠다. 목소리에 기운이 없으실 때는 온종일 마음이 쓰인다. 나를 챙기고 남편과 아이들의 안부를 하나하나 물어 봐주시는 오늘 같은 날은 얼마나 평화로운 하루인지 모른다. 

 

입원하시기 전에 엄마는 기억력이 어쩜 그리 좋으셨는지 친정 언니와 나는 엄마처럼만 나이 들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어도 나는 엄마에게 항상 챙겨야 하는 딸이었다. 그렇게 건재하셨던 엄마의 거동이 작년 여름부터 불편해졌다.

 

팔순 때 만해도 친구들과 춤을 추실 정도로 건강하셨는데 불과 3년 사이에 엄마는 지팡이 사용도 힘드시게 되었다. 재작년 처음 지팡이를 사드렸을 때는 지팡이에 의지하면 안 된다고 하시며 주저하셨다. 내 나름엔 핑크 꽃무늬가 우아하고 예쁜 지팡이를 고르고 골라 사드렸는데 그날 엄마는 눈물이 나셨다고 했다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마음이 어떠셨을지 짐작이 간다. 엄마에게 남대문 시장 한 바퀴 휙 돌다 오시는 것, 그건 낙이었고 하루하루 힘들었던 엄마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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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통화를 했을 때 엄마는 본인이 병원에서 제일 열심히 운동을 한다며 자랑을 하셨다. 자랑처럼 말씀은 하셔도 일어서서 걷겠다는 엄마의 안간힘이며 절실함이란 걸, 나는 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잘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엄마는 믿으신다. 다리가 무겁게 느껴져서 힘들긴 하셨다지만 그래도 오늘 엄마 목소리가 밝았다. 엄마의 목소리 톤이 조금 올라가니 마음이 놓였다. 안심이 되었다. 엄마 목소리는 자식들에게 그런 건가 보다. 내 목소리에도 그러하겠지. 내 표정과 목소리에 내 아들들도 때론 걱정하고 때론 안심했겠지.

 

최근에 나에게 또 하나의 이름이 생겼다. "보호자님이시죠?" 하며 병원에서 간호사가 처음 물었을 때 0.1초의 주저도 없이 ""라고 대답했다. 보호자님, 그렇게 나는 엄마의 보호자님이 되었다.

 

엄마가 입원하고 계시는 병원에서 얼마 전 예방 접종 시 보호자가 동의해야 한다며 전화가 왔다. 그런데 순간 바로 답을 못 드리고 마음이 주저되었다. 자식들의 결정이 엄마 본인의 결정보다 위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보호자님이라는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이름이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은 곧 또 다른 삶과 마주하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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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엄마의 전화를 받고 오랫동안 비어있는 엄마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엄마의 심부름도 하고 빈집도 둘러볼 예정이었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무심코 앞을 바라보았다. 엄마처럼 머리카락이 하얗고 작은 배낭을 멘 어르신이 버스 기둥을 잡고 서 계셨다. 엄마가 늘 메고 다니시는 배낭과 비슷해서 자꾸 눈길이 갔다. 엄마 배낭, 진작 예쁜 걸로 사드릴 걸 하는 아쉬움이 스쳤다.

 

언뜻 보아 연세가 엄마와 비슷하실 거 같은데도 꼿꼿하셨다. 나도 모르게 어르신의 허리와 다리에 눈이 갔다. 좋아 보이셨다. 모르는 분이셨지만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다시 시작하는 엄마의 재활이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 엄마 다리에 근육이 딴딴해지고 힘도 생겨서 지팡이를 의지해서라도 외출이 자유로워지시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은 극한 상황일 때 기가 막힌 에너지가 나온다고 한다. 엄마는 가족들이 없는 병원에서 몇 달째 엄마 자신과 싸우고 계신다. 건강이 좋아질 것 같다는 믿음은 어떤 드라마틱한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오늘도 튼튼해질 엄마 다리와 힘이 생길 허리를 상상한다. 나 역시 그러리라고 믿는다. 간절한 바람은 언제나 희망이 되고 살아가는 이유가 되니까. 엄마 집에 들어서니 마당 가득 떨어진 감나무 잎이 수북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신 오후였다.

 

50+에세이작가단 리시안(ssmam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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