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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것에 마음을 주는 데 인색하다. 가까이 있는 것을 홀대하고 먼데를 바라보며 갈망한다. 내 손에 없는 것을 크게 보고 탐하는 마음을 부인할 사람이 있을까? 서울은 단조로운 일상이 일어나는 공간이라는 이유로 홀대를 받는다. 매일 닥친 일상을 헤쳐나가며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로 넘치는 곳이다. 바쁘지 않은 사람은 마치 이 도시에 살 자격이 없는 것처럼 모두 입을 모은다. 바쁘다는 말을 잘 사는 것과 동일시하는 가짜 미덕으로 나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닌지, 슬그머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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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치기도 했지만 얻은 것도 있다. 이국적 도시를 찾아서 비행기의 좁은 이코노미석에 앉아 두 다리가 퉁퉁 붓는 긴 시간을 견디지 않게 되었다. 대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서울의 속살을 찾아 나섰다. 내가 사는 초거대 도시, 서울을 애정 어린 눈으로 볼 기회를 얻었다. 서울은 작은 산과 숲, 크고 작은 공원으로 가득한 도시다. 지하철을 타면 갈 수 있는 초록숲 남산을 걸으면 덤으로 추억 여행까지 할 수 있다.

 

아련한 기억을 더듬으면 남산은 일부러 찾아가서 보는 스펙터클이었다. 열 살도 안 되었을 때 남산타워(지금은 N서울타워라고 부르지만)를 배경으로 찍은 가족사진이 있다. 온 가족이 남산으로 출동했다. 카메라가 귀한 시절이었다. 공원에는 카메라를 목에 건 사진사가 있었다. 그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특별한 순간을 기록해주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고 촬영비와 우편비를 내고 주소를 남기면 며칠 후에 인화된 사진이 집으로 왔다. 그렇게 찍은 빛바랜 사진 속에 젊은 엄마, 아빠가 있고 동생들도 있다. 사진 속 부모님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다.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사진에서 만난다. 나는 햇빛에 눈이 부신지 아니면 가족 나들이가 마음에 안 드는지, 미간을 찡그리고 있다. 과거와 달리 현재 남산은 일상 공간이다. 과거의 영광(?)과는 색깔은 다르지만, 남산은 여전히 인기를 누린다. 산책로는 점심시간이면 근처 직장인의 쉼터이고, 둘레길은 주말에는 걷기 좋아하는 이들의 놀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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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동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남산 숲길로 바로 갈 수 있지만, 5호선 신금호역 2번 출구에서 가면 또 다른 남산을 만날 수 있다. 응봉공원과 매봉산을 지나 초록 지붕이 덮인 버티생태다리를 건너면 남산 둘레길로 접어든다. 남산 품속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풍경이 바뀐다. 익숙한 매연 대신 숲이 풍기는 향긋한 내음이 대기를 채운다. 차량 소음이 들리지 않고 새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은 언제 봐도 놀랍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나무는 일제히 기지개를 켜고 저마다 존재감을 알린다. 나무는 하나하나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어 말을 걸어온다. 꽃은 나무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고 보낸 메신저다. 걸으며 숲은 살아있다는 말을 체득한다. 도심에서 무심하게 흘려보낸 계절을 숲속에서 찾는다. 하찮게 넘겼던 자연의 속삭임에 귀를 쫑긋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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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조금 올라왔을 뿐인데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서울에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는다. ‘이거 실화야?’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떠나온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한양도성길의 일부인 성곽 자락을 지나며 서울이 간직한 세월의 흔적을 더듬으며 걸음을 옮기면 어느덧 N서울타워 근처에 이른다. 숲에서 빠져나와 눈앞에 펼쳐진 시내를 굽어본다

 

, 여기 서울이었지!’ 잠시 꾸었던 꿈에서 깬다. 빼곡한 빌딩숲 풍경이 멀고도 가까이 있다. 남산 숲길은 일상 생활자에게 여행자의 마음을 선사한다. 여행자는 익숙한 생활 터전에서 거리를 두고 풍경과 사물을 낯설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두세 시간의 여유만 있으면 누릴 수 있는 이 사치를 미룰 이유가 있을까. 바쁘다는 진부한 말은 넣어두고 초록 지붕이 우거진 남산으로 고고

 

50+에세이작가단 김남금(nemon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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