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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 열기가 한창이다. 모든 종목에 메달을 바랄 수 없겠지만, 아쉽게도 7월 마지막 밤,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은 멕시코를 맞아 3-6으로 패했다. 축구는 올림픽 8강에서 멈췄지만, 우리 집은 전반전과 후반전을 마친 후 여전히 연장전 중이다.

 

전반전은 대학교 1학년 5월 소개팅으로 시작됐다. 우리는 여느 연인들처럼 사소한 일로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다가 대학교 3학년 가을에 헤어졌다.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나 하나도 추스르기 힘들었던 나는 이별의 골을 찼고, 남자는 막지 못했다.

 

2년 뒤, 우리는 다시 만났다. 나는 방송 구성작가로, 다시 다른 대학에 입학한 남자는 학과 공부 때문에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학생과 직장인이라는 간극은 점점 벌어졌다. 이번엔 남자가 이별 골을 날렸고, 나는 골문 앞에서 무너졌다. 이것이 후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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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이 흘러 어느덧 서른을 앞둔 나이로 우리는 다시 만났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마루 넘은 수레 내려가는 듯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연장전이 시작되었다.

 

모든 운동경기가 그렇듯 축구에서도 지켜야 할 경기 규칙이 있다. 결혼생활도 그렇지 않을까? ‘계약 결혼으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부부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 폴 사르트르가 처음에 2년 예정했던 결혼 관계를 사르트르가 사망할 때까지 51년간 유지했던 것은 두 사람이 정한 계약 규칙을 지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이라 한다.

 

축구에서 골대 바로 앞에 있는 직사각형 지역을 골 에어리어라고 부른다. 상대 선수와 골키퍼 사이에 신체적인 접촉이 일어났을 경우 상대방 선수에게 반칙이 선언되는 골키퍼 보호구역이기도 하다.

 

우리 부부는 상대방의 골 에어리어 그러니까 심리적 마지노선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의견 충돌이 생겼을 때, 지켜야 할 선을 생각하고 감정이 앞서지 않도록 자제한다. 그 선 앞에서 일단 공을 멈춰야 한다.

 

우리 집 주방 리모델링을 하면서 식탁과 전등도 바꾸기로 했다. 남편은 대리석 식탁을, 나는 원목 식탁을 원했다. 함께 바꾸기로 한 식탁 전등 역시 남편은 단순한 디자인을 나는 화려한 디자인을 원했다. 이견이 좁혀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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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거면 나랑 왜 같이 다니지?” 남편은 자기의 의견을 무시한다고 했다. “더 좋은 것 고르려고 고민 중인 건데 왜 화를 내지?” 신중한 내 마음을 몰라주는 남편이 서운했다. 대화로 조율하려고 할수록 서로 지난 일까지 끌어들여 점점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나는 공을 멈췄다. “어떤 조합이어도 예쁠 것 같으니 하나씩 고르기로 해.” 결국, 식탁은 내가, 식탁 전등은 남편이 골랐다.

 

서로 한 골씩 사이좋게 나눠 먹은 것으로 이번 일은 깨끗하게 끝난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새로 산 원목 식탁은 너무 차갑거나 뜨거운 것이 올라가면 자국이 생기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열심히 식탁 매트를 깐다. “대리석 식탁이었으면 이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며 남편은 쯧쯧 혀를 찬다. 남편이 무심결에 얼음 든 주스 컵을 식탁 위에 그냥 놓으면, 나는 아무 말 없이 슬그머니 매트 위로 옮겨 놓는다.

 

반대로 줄이 길게 늘어진 식탁 전등에 머리를 부딪치거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 전등이 이리저리 흔들릴 때 나는 구시렁거린다. 내가 점찍었던 식탁 등이 잡지나 방송에 나오면 어머, 여기도 이걸 달았네!”하며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재확인하고 남편은 못 들은 척한다.

 

그렇다. 사실 쿨한 척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상대방의 골 에어리어 앞에서 알짱거리며 공을 굴리고 있다. 축구장에 그려진 하얀색 라인()은 내가 공격수일 때는 제약이 되지만 수비수일 때는 나를 보호해준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공격수였다가, 수비수였다가, 골키퍼였다가를 반복하며 결혼생활이란 축구장을 뛰어다니고 있다. 아직 선수 교체 없이, 시간제한 없는 연장전을 뛰고 있다

 

50+에세이작가단 전윤정(2un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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