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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커피를 마시며 문 앞에 배달된 조간신문을 넘겼다.

 

담대하게, 오십

 

나는 담담하게, 오십을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읽었다. ‘담대하게, 오십’. 서울시 50플러스 재단 일자리 사업본부장 남경아 씨의 칼럼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는데, 특히 다음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어찌 보면 50플러스는 인생의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서글퍼할 필요 없다. 어떻게 안전하게 잘 내려오고 내려와서 재미있게 살 수 있을지 지금부터 준비하면 된다.”

 

흔히 인생을 산에 비유하곤 한다. 산에 오를 때는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려니 숨이 차고 힘들다. 내려갈 때는 중력에 순응하니 힘은 덜 들지만, 관절이나 연골에 무리가 간다. 인생도 젊을 때는 목표를 향해 심장이 벅차게 뛰어가느라 힘들다. 나이 들어서는 인생의 순리를 깨닫게 되니 마음은 덜 힘들지만, 몸은 노화를 겪으니까 말이다. 칼럼에서 남경아 본부장도 50플러스 세대는 지금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안전하게 하산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라고 다정하게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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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산악인도 등산보다는 하산할 때 조난 사고가 더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오죽하면 산 중의 산은 하산이라고 했을까. 평범한 사람도 하산에 더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무릎에 가해지는 하중이 커지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무릎관절을 둘러싼 근육이 발달해 무릎에 가하는 무게가 분산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근육량이 감소하면 무릎에 실리는 무게가 그만큼 증가한다.

 

문제는 이 근육을 평소에 단련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등산할 때 주로 사용하는 다리 근육은 대퇴사두근(quadriceps femoris muscle)이라고 하는 허벅지 앞쪽 근육이다. 하산할 때는 이 근육이 팽창하면서 만들어 내는 힘을 사용하는데, 운동으로 이 힘을 키우기 힘들다. 관절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근력 강화 운동에도 등산과 비슷한 런지나 스텝퍼 동작은 있지만, 하산과 비슷한 동작의 운동 없다. 프로 운동선수들도 산타기 훈련을 할 때, 절대로 뛰어서 내려오지 않는다. ‘연습이 없는 인생이 하산과 정말 닮았구나하고 무릎을 쳤다.

 

한국등산학교에서는 하산 시간을 등산 시간보다 2배 이상으로 길게 잡고 천천히 내려오기를 권하면서 무엇보다 경쟁하는 산행 습관을 버리라고 말한다. 산은 경쟁을 하거나 자기 과시를 위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보다 먼저 가기보다 자연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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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이 포천의 한 유원지에서 입장권과 모노레일 세트 표를 끊었다 한다. 왕복과 편도가 천 원밖에 차이가 없어 살짝 고민했지만, 숲길 산책도 할 겸 편도를 샀다. 다른 사람들이 왕복표를 끊길래 혹시 중간에 볼거리가 별로 없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내려오며 깎아지른 절벽과 작은 폭포, 호수를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었다. 오솔길에는 도토리가 보이고 날아다니는 잠자리까지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렇게 예쁜 길을 천 원을 더 내면서 못 볼 뻔했다니!” 기분 좋은 하루였다는 말에 나까지 마음이 상쾌해졌다.

 

산에서 내려오다 보면 또 다른 산등성이를 만나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인생이라는 큰 산에서 내려오지만, 50대 이후라는 새로운 산등성이를 오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희망과 목표를 가지고 새롭게 도전할 때도, 내 주위의 소소한 기쁨을 살피면서 자신의 삶을 돌보기를 바란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야 하산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안전하게 그러나 즐겁게. 그럴 때 우리는 오십 이후를 향해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나갈 수 있지 않을까

 

50+에세이작가단 전윤정(2un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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