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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둘째가 3년 정도 다니던 수학학원을 그만두었다. 아들이 중2쯤이었을까. 미루던 수학학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당시엔 선행학습은커녕 현행도 되어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구멍이 뻥뻥 뚫려 있던 아이를 받아 주었던 내게는 고마운 학원이었다. 큰애 때도 선행학습을 하지 않아 동네 학원에 들어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 둘째를 받아 주는 학원이 그렇게 다행스러울 수 없었다.

 

그러다 아이 고등학교가 갑자기 다른 방식의 수학 수업을 하게 되었고 학원을 옮겨야 할까 머뭇거리고 있었지만 옮기는 일이 쉽지 않은 둘째와 나였다. 그러다 최근 시험을 기점으로 학원을 옮기는 결정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원장님께 드릴 말씀에 나는 진땀이 났다. 그만두겠다는 말을 걱정하는 내게 가까운 지인들의 대답은 둘로 나누어진다. 우선은 왜 그것이 걱정인가에 대해 이해가 안 되는 경우인데 문자로 인사를 하고 나머지 결제는 송금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마지막 인사니깐 직접 가서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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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나를 보고 첫째와 둘째도 생각을 거든다. 물론 답은 정해져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직접 가서 감사했다고 인사드리고 오는 것이다. 2년 넘게 아이를 봐주신 원장님이시니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하는 데 숙제를 미루고 있는 아이처럼 은근히 마음이 불편했다. 결국 학원에 직접 다녀오겠다고 하니 첫째가 말했다. "이게 우리 집이지." 그런데 우리 집은 원래 그렇다는 아들의 말에 내 고민이 낯선 것이 아니고 쓸데 있는 고민이었다는 것에 마음이 왠지 가벼워졌다. 걱정을 하는 사람에게 그 걱정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공감은 걱정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는 이상한 힘이 있다.

 

시험에서도 처음 떠오른 답이 대부분 맞을 때가 많은 것처럼 비슷한 상황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결국 내가 매번 결정했을 익숙한 것이다. 그 순간은 더도 덜도 없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몸에 익혀진 방식이나 습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툭툭 튀어나오니깐.

 

시험 다음날 원장님을 찾아뵈었고 감사의 인사를 잘 전하고 돌아왔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끝인사가 좋았다. 역시 내게는 이편이 나았다. 이런 것에 신경을 쓰며 사느냐고 물어도 어찌할까, 오래된 내 삶의 방식인 것을.

 

살다 보면 마음을 나누던 사람들과의 갑작스러운 끊어짐으로 헛헛해질 때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무가 싹둑 썰리듯이 연이 끊어지는 날이 오더라는 것이다. 그 많던 카톡친구에도 즐겨 찾는 사람들만 남은 것이다. 언젠가부터 남겨질 사람은 남는다는 말 뒤에 숨어 사람들과의 인연을 이어가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나도 챙기지 못했던 관계의 끝은 대화의 창에서도 저 멀리 내려가 있다. 그래서 이제는 굳이 스크롤을 해서 내려가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한때는 가까이 지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싶은 마음에 잠시 허전해진다. 그러면서도 소원해진 사이에 안부를 먼저 묻는 것도 왠지 어색해졌다. 몇 년의 공백을 담을 여력이 점점 소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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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속적으로 생각과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 함께 공유한 시간이 굳어져 내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 그 부분이 사라졌을 때 쓸쓸한 공기에 가슴에 아려오는 것이다. 어느 날부터 익숙한 이름들이 나의 연락처에서 하나둘 사라졌다. 사라진 줄도 모르게 무심한 세월이 흘러갔다. 때로는 말없이 떠났다.

 

문득 이름들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면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은 왜일까. 사라진 지 한참 되었을지 모르는 이름들에 이제야 멈춰있는 것은 또 왜일까. "안녕하세요"라고 활짝 웃으며 지나온 시간 속에서 "이젠 안녕"을 고하지도 못한 채 서로에게서 사라져 버리는 것, 분명 마음 허전한 일이다.

 

짐작하지 못한 한파에 쌀쌀해진 오늘 날씨처럼, 어느 날 갑자기 끝인사도 없이 떠난 사람들의 자리엔 휑한 바람이 분다. 미쳐 못다 한 인사, "잘 지내요"라는 마음만 허공 위에서 맴돌고 있다.

 

50+에세이작가단 리시안(ssmam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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