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초입, 가을 같은 영화를 만나다

 

 

 

가을에 만난 영화

 

요 며칠, 계절이 서성거리더니 지난밤에는 바람이 가을을 알렸다. 때마침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가을 같은 영화 한 편을 보았다. 그리고 영화를 제작한 감독과 관객이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올해 들어 온통 일자리 이야기로 가득한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만난 영화 한 편은 마치 거친 산을 오르던 중에 만난 샘처럼 맑고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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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은 정원>은 이마리오 감독이 연출한 독립영화이다. <출처: 영화상영화면 촬영> 

 

 

독립영화

 

이번에 관람한 영화는 <작은 정원>이라는 제목의 독립영화였다. 독립영화는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엔 이미 익숙한 부류의 영화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영화와 달리 자본과 배급망에 휘둘리지 않는 특성 때문에 독립영화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래서 독립영화에는 창작자의 의도가 오롯이 드러나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대체로 자연스럽게 관객의 마음에 자리를 잡는다. 이날 관람한 영화 <작은 정원>이 그랬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잔잔하고, 소박하며 자연스러운 공감이 화면 안과 밖에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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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작은 정원>은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모두의 강당에서 상영되었다.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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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작은 정원>이 상영되는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모두의 강당입구에서 관람객들이 참석자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모두의 극장

 

<독립영화 공공상영회(인디서울2023)>는 독립영화의 저변을 확대하고 시민들에게 다양한 영상문화를 소개하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상영회를 열고 있다. 매년 3월부터 12월까지 서울 시내 공공문화시설을 공공상영관으로 선정해서 무료로 상영회를 진행하는데, 서울시50플러스 캠퍼스와 센터도 오래전부터 이 일에 참여하고 있다. 그 가운데 중부캠퍼스는 모두의 극장을 운영하며 매달 첫째와 셋째 주 월요일에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모두의 극장운영을 담당하는 중부캠퍼스 유지영 선임은 코로나19 이전부터 모두의 극장을 운영해 왔고, 코로나 시국에 중단했다가 작년부터 다시 극장 문을 열었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 들어 서울시50플러스가 일자리 중심으로 운영되고는 있지만, 시민을 향해 열린 공간으로서 시민들에게 즐거움과 풍부한 정서를 제공하는 50플러스재단 본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독립영화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부캠퍼스의 독립영화 상영관 모두의 극장에서는 실화가 바탕이 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주로 상영하고 있는데 깊이 감동하는 관객이 많고, 거듭해서 극장을 찾는 마니아들도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영화 작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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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은 정원>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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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은 정원> 상영 전에 박마리솔 감독이 인사말과 함께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모두의 극장20239월의 첫 영화로 <작은 정원>을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4모두의 강당에서 상영했다. 먼저 박마리솔 인디서울2023 매니저 겸 영화감독이 인사말을 하고 영화를 간단히 소개한 뒤 바로 영화를 상영했다.

<작은 정원>은 다큐멘터리 영화인 만큼 시나리오가 없다. 의상과 분장으로 가꾸어진 전문 배우도 없고 세트장도 없다. 강릉 명주동에서 살아가는 노인들이 출연자이고 영상 제작자이며 그들 삶터가 곧 세트장이다. 시간과 서사의 배경만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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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은 정원> 속 풍경 <출처: 영화 보도 스틸컷> 

 

 

영화가 시작되면 이내 강원도 강릉시 명주동의 노인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모임 이름이 <작은 정원>이고 영화의 제목도 거기서 가져왔다. 그 정원 속 평균 연령 75세의 노인들은 이마리오 감독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를 삼 년여 공부했다. 그러고 나서 움직이는 사진인 영화를 만들 결심을 한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어서 가능했고 즐거웠다. 그렇게 만든 극영화 <우리동네 우체부>를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 출품해 상도 받는다.

영화 속 명주동이 흰 눈에 덮이고, <작은 정원> 회원들은 다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 도전하기로 한다. 여기부터 영화는 명주동 노인들이 촬영한 영상과 함께 그들이 모여 앉아 저마다 찍어온 영상을 함께 보며 울고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촬영하는 명주골 노인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처음엔 주저하고 때로는 서툴며 자주 쑥스러워한다. 그러나 소박하고 진솔해서 마음이 끌린다. 장맛비 속 백일홍을 촬영하며 꽃과 대화하는 장면, 남편에게 털어놓는 삶의 고민과 마당 좀 쓸어달라는 부탁, 사별한 남편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 낙수 소리를 배경 삼아 들려주는 비 오는 날의 독백, 시집올 때 가져와 아직 버리지 못하는 요강, 암 투병 중인 딸 이야기, 아들 없는 시집살이 이야기, 기억을 잃어가는 노년의 삶 등 가슴에 다 담지 못할 이야기가 이어진다. 특별히 자녀와 통화하며 너에게 엄마는 어떤 사람이야?”라는 질문과 거기 답하는 전화 속 자녀들의 눈물 돋는 고백들이 인상적이다.

영화 속 <작은 정원>은 이름 그대로 크지 않다. 그 정원에 가을이 오고 잎이 시들자, 그 곁에서 김장하는 모습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내 겨울이 되고 시든 풀꽃 위에 눈이 덮인다. 다시 봄이 와 <작은 정원>에 생명이 돋고 꽃이 필 무렵, 명주동 노인들이 부지런히 영상을 촬영하는 모습 위로 출연한 명주골 노인들의 이름이 하나씩 나타나며 영화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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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은 정원> 엔딩 크래딧. <출처: 영화상영화면 촬영> 

 

 

영화 <작은 정원>의 이마리오 감독과 관객이 나눈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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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 뒤에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이마리오 감독과 진행자 박마리솔 감독() 그리고 감독과 대화하는 관객들(아래)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영화가 끝나고 영화감독과 관객과의 대화(GV)’가 있었다. 관객과의 대화는 모두의 극장에서 상영되는 일부 영화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데 마침 이번 영화가 그 대상이었다.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도 박마리솔 감독이 진행했다. 영화 제작의 배경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에 이마리오 감독은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 강릉으로 내려가 명주동 작은 정원 언니들을 만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고 했다. 그들과 스마트폰 사진 촬영 공부를 계속하다가 언니들의 카메라 옆에서 조용히 동행할 결심이 자연스레 생겼다라고 했다. 그렇게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영화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고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이마리오 감독은 대화 내내 일상 용어인 듯 명주골 노인들을 언니라고 불렀다. 이 감독은 한 마디로 이 영화를 나이 들어서 내가 어떻게 살까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라고 표현했다.

대화는 솔직하고 진지했다. 영화 <작은 정원>이 이 감독의 이전 영화와 차이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귀향 후 관심의 영역과 관계의 깊이가 변화한 까닭이라고 했고, 이 영화를 찍으면서 스스로 몸에 힘을 빼고 작업하기를 배웠다고 했다. 영화 속 언니들이 각자 촬영한 영상을 한자리에서 공유하도록 한 까닭에 대해선 공감과 위로의 의미를 지닌 수업 방식의 하나라고 했다. 그리고 30~40년 동안 강릉 구도심권에서 살아온 언니들이 영화를 찍으면서 자신감과 표현력이 부쩍 자라난 점이 좋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혹시 강릉 명주동에 가 영화 속 언니들을 만나면 그들이 아주 좋아할 테니 꼭 아는 척을 해달라고 부탁하며 대화를 마쳤다.

명주동 언니들이 찍은 영상은 내용과 화면 비율, 크기, 해상도가 다 달랐다. 화면의 질도 모두 같지 않았다. 그러나 화면 속 노인과 제작자 청년, 노인 학생과 청년 선생의 신뢰감 깊은 연대가 꾸미지 않은 소박한 감동을 빚으며 영화 한 편을 완성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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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날 무렵 화면 속에서 짧은 글 하나와 빈 의자를 보았다. 그리고 생각이 시작되었다. <출처: 영화상영화면 촬영> 

 

 

영화가 끝나고 생각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인생의 노년이 가을과 같다는 비유에 익숙하다. 사람의 삶이 마치 봄에 돋아나 가을에 시들어 떨어지는 잎새 한 장과 같다고 생각해서 그런 비유를 하는가 보다. 가을이든 인생의 노년이든 때를 다해 힘을 잃고 저 내리며 작아지는 모습을 연상하게 되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가을의 아름다움과 너그러움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다. 영화 <작은 정원>은 가을을 그려내거나 특별히 가을을 배경 삼은 영화가 아니다. 영화 속엔 네 개의 계절이 모두 등장한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보고 난 첫 느낌은 가을이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가을의 감성이 마음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비록 일찍 저물어 아쉽지만, 가을빛은 따사롭고 고우며 부드럽고 잔잔하다. 그리고 가을볕이 빚어내는 열매는 넉넉하고 풍성하다.

자연의 계절은 신실하게 돌아오므로 아름답고, 인생의 계절은 오직 한 번뿐이므로 애틋하도록 아름답다. 자연 속 네 개의 계절이 저마다 계절다워서 아름다운 것처럼 지나는 인생의 계절마다 계절답게 살아감으로 사람의 삶은 아름다워진다.

영화 <작은 정원>에서 인생 가을의 아름다움을 읽었다.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매일 매일 삶의 열매를 거두고 나누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가을처럼 빛났다. 그 모습을 그려내기보다 그저 편안하게 담아낸 이마리오 감독의 시선과 손끝이 고마웠다.

영화가 끝나고 생각이 시작되었다. “인생의 계절을 계절답게 살려면 어찌해야 하나?”

영화 한 편의 힘을 절감하며,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모두의 극장에서 이처럼 아름답고 잔잔한 감동이 내내 이어지기를 기대했다.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cbsan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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