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머니를 여읜 한 아들이 서당 선생을 찾아가 축문을 써달라고 했다.

그런데 선생은 실수로 장모가 죽었을 때 읽는 축문을 써주었다.

그 축문을 읽자 문상객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들은 서당 선생에게 달려가 "뭔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하고 물었다.

서당 선생은 "내가 틀릴 리가 있겠느냐? 자네 어머니가 틀리게 죽었겠지." 하고 오히려 역정을 내었다.

이에 아들은 "그렇겠지요. 스승님이 틀릴 리가 있겠습니까?

아마 저의 어머니가 틀리게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하고 돌아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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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대에게는 익숙한 교육적 상황이다.

지난 시절 선생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몰라도 모르지 않으며 틀려도 틀리지 않는' 권위자였다.

그는 교과 내용과 교육 방식을 단독으로 결정하고 선택하며

교육은 그런 선생님이 지닌 머릿속 지식을 그대로 학생들에게 복제해 옮겨주는 주입식 기술을 의미했다. 

 

현대의 교육에서는 학생이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능동적 주체로 교육의 전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생은 학생들이 주어진 과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수평적 조력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교육 이념이 상식화 된지 오래되었음에도 우리 교육 현실에서는 제대로 자리잡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청소년기의 교육은 대학 입시라는 현실적 장벽을 극복하지 못해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고,

50+세대를 포함한 성인들에 대한 사회적 교육도 대부분 취미 개발과 여가 선용이라는 일차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연극협동조합 “재미사마”의 대표 서하경 씨 
 

 

 

그런데 초등학생부터 50+까지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 사항에 걸맞는 사회적 교육을 실천하겠다고 나선 협동조합이 있다.

학생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키우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강의한다는 것이다. 
 

그 조합의 이름은 <재미사마>였다.

거창하고 진지한 목표에 비해 좀 엉뚱하고 어찌보면 한량들의 사교 모임 같은 이름이었다.

그 앞에  붙어있는 "교육연극협동조합"이라는 수식어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5호선 공덕역 근처 서울시 50플러스 중부캠퍼스 1층 공유사무실에 입주한 '재미사마'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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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경 '재미사마' 대표를 만나자마자 이름에 대한 질문부터 던졌다. 그가 가볍게 답했다.

"재미삼아 만든 이름 같죠? 맞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인생에서 재미 이상의 가치가 있나요. 재미는 우리가 내세우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리고 이를 간단히 줄이면 ''오, 늘 재미사마!"가 된다고 했다.

그것은 "오! 늘 재미삼아!"와 "바로 오늘! 재미삼아!"를 합친 의미이다.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 우리들의 연극교실 

 

 

 

"교육연극"의 내용도 궁금했다.

필자는 연극을 위한 '연기 지도가 아닐까?' 생각하며 물었다.

그러나 말 순서 그대로 "교육을 위한 연극"이었다. 좀 더 풀자면

교육에 자신이 맡은 역할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삶을 성찰하는 기회를 갖고 협업을 통해서만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는 연극적 방식을 적용한다는 의미였다.
 

 

                                                            부평 “시니어 이야기 활동가 심화 교육" 

 


필자가 좀 더 쉽게 이해를 하기 위해 이런 개념과 아이디어의 실제 적용 사례를 묻자

서하경 대표는 이제까지의 여러 활동 자료를 보여주었다.

솔직히 이제 설립된 지 일년 미만의 협동조합이 해냈다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다양한 실적이었다.

서 대표는 이미 협동조합 이전 커뮤니티 시절부터 수 년간 왕성하게 활동한 덕분이라고 했다.

50플러스 캠퍼스에서 실시하는 50대 이후의 삶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인생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의기투합하여 커뮤니티를 결성했고, 커뮤니티의 활기가 자연스레 협동조합으로 진화해간 것이다.
 

서하경대표는 이런 활동이 가능한 토대로 100여 명에 달하는 회원들의 열성과 능력을 꼽았다.

회원들의 전·현직 직업은 금융, IT, 편집디자인, 연극 등으로 다양하지만

다수의 회원이 ‘교육연극지도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공립대학교에서 실시하는 시험을 통과하여야 얻을 수 있는 자격이다.

또 회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월1회 자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 서초구 “시니어 스마트 학교” 
 

 

 

지면 관계상 일일이 거론할 수 없지만 <재미사마>의 몇몇 주요 활동을 적으면,
- 서울시 50플러스 중부캠퍼스 "우리들의 연극교실"
- 부평평생학습관 "시니어이야기활동가 심화교육"- 서울 서초구 “시니어 스마트 학교”
- 원주문화재단 "딴짓하는 주부 워크샾" 
- 남한산초등학교 "교실에서 연극하기" 등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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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남한산초등학교에서 실시했던 프로그램을 보면 "재미사마"가 실시하고 추구하는 교육 방식과 철학을 쉽게 엿볼 수 있다.

먼저 학생과 강사들이 협의하여 '녹두장군 전봉준'이라는 연극을 하기로 정한다.

강사들이 당시 시대상과 관련된 역사와 인문학 강의를 준비하여 개괄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직접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농민들의 고난을 체험해 보기 위해 주변 산으로 나가 먹을 거리를 찾아본다.

교육 시기가 겨울철이라 식량을 찾기가 쉽지 않아 학생들은 당시 농민들의 상황을 깊이 자각하게 된다.

이때 주변 환경에 대한 환경 교육을 곁들인다. 그리고 연극을 위한 대본도 학생들이 직접 쓰게 한다.

학생들은 단순한 연기를 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체험한 것들을 자신의 생각으로 풀어내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오늘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원주시 주부 대상 프로그램 “땬짓 하는 주부” 
 

 

원주 지역의 중년 주부들을 대상으로 했던 교육 '딴짓하는 주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사노동와 육아로 집안에 머물러야 했던 여성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기회를 준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객관화하는 체험을 갖게 되고 일상의 틈을 벌여 '딴짓'을 찾아본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며 세상과 교감하는 자신감을 회복한다.

'딴짓하는 주부'라는 제목부터 기발해서 재미있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 “괜찮은 혼자” 지원협약식 
 

 

 

 <재미사마>의 모든 프로그램은 '재미'라는 방식과 함께 진행된다. 

 아니 '재미'는 모든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공통 주제이자 목표인 것도 같았다. 

 

2019년 서울시 50플러스재단 공모사업에 선정된 프로그램의 이름은 "괜찮은 혼자" 이다.

1인 가구를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혼자 살고 혼자 밥 먹으면 왠지 도와주어야 할 존재거나

문제가 있는 삶으로 오해할 수 있는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지은 제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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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논어』의 「옹야(雍也)편」에서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거워하는 사람만 못하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고 했다.

어떤 일을 하는데 최고의 경지는 '재미'와 '즐거움'이라는 말이다.

<재미사마>와의 인터뷰는 한마디로 줄이면 바로 그'재미'였다.

그리고 <재미사마>의 활동 구호는 공자의 표현을 빌면 이렇게 되겠다.

"배우고 좋아하고 즐거워하라!"

 

 

 

취재: 중부캠퍼스 학습지원단 정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