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바다, 금오도 기행

- with 여행기획학교 3기

 

 

지난 3월 23일, 서부캠퍼스의 HOT한 강좌! <여행기획학교> 3기 여러분들이

전라남도 여수로 1박 2일 '공정여행' 체험을 다녀왔어요.  

봄 향기를 물씬 풍기는 바다, 신선과 고승들의 쉼터였던 금오도 비렁길까지. 

수강생이자 여행작가 윤재훈 선생님이 직접 들려 드리는 후기입니다 :)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익숙함으로부터

 

 

마침내 여수 돌산도항을 떠나 여객선는 다도해의 큰 섬 중에 하나인 금오도 함구미항을 향해 힘찬 출발을 한다.

배 뒷전으로 은물결을 부서지고 봄바다를 산보 나온 갈매기들이 따라 오며 목청 높이 울어 댄다.

흥얼흥얼 노랫가락이 해풍을 타고 들려온다.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헛튼 약속도 없이
봄날 꿈 같이 따사로운
저 무욕의 땅을 찾아
 
정태춘, 박은옥 - 떠나가는 배 中

 

아침에 일찍 여수나갔다온 아주머니, 방풍나물 몇푸대 가져와 파는 아줌마

 

일찍 뭍으로 나갔던 아낙은 벌써 볼 일 다 보고 들어오고, 할머니들은 이 섬의 특산물인 방물나물을 몇푸대 들고 나와 아직

그 끝이 매서운 해풍을 맞고 있다.  

 

 

새벽 밭에 나갔던 아주머니들은 벌써 아침 먹었던 것이 다 꺼지고 배가 고픈지, 하꼬방 할매가 장작불에 푹 고아둔

돼지 족발을 뜯고 있다. 길손도 배가 고파 그 옆에 앉아 인근 섬의 명주인 개도 막걸리를 한 병 사 옆에 앉아 같이 괘기를 먹는다.  

 

 

송광사 터 가는 길

 

우리는 서둘러 비렁(벼랑)길로 올랐다. 다도해가 발아래 놓여 오늘따라 세숫물처럼 잔잔하고 우리의 정처 없는 발걸음도

쉬엄쉬엄 산마루로 접어든다. 제 1코스는 송광사 터 가는 길이다. 이 인근에는 세 개의 송광사가 있다.

하나는 호남의 대사찰인 순천의 송광사, 또 하나는 여기서 멀지않은 고흥 앞바다에 떠있는 섬 안에 주지 스님이 하심(下心)을

화두로 잡고 있는 송광암, 그리고 우리가 오늘 가는 흔적만 남아있는 송광사 터.

 

 

 

깎아 지르는 듯한 절벽 길로, 때로는 산등성이로, 나무 하러 다녔던 길.

그 옛날 이 섬사람들의 척박한 삶이 소매의 땟국물처럼 깃들여 있을 그 길로, 오늘은 시름없는 관광객들만 왔다가 떠난다.

따사로운 남국의 봄볕 아래 산등성이에서 염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땅 속에서 가지 끝에서 

쑥, 쑥, 밀고 올라오는 꽃망울 소리 요란하다. 

 

 

올망졸망 모여서 사는 마을은 즐겁고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돌담이 정겹다. 저 앞에 보이는 섬을 넘어가면

태평양의 너른 바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허리가 활처럼 휜 할머니는 평생 이물이 난 밭일을 끝내 놓지 못하고 지난 겨울 찬바람을 이긴 배추를 뽑고 있다. 

오늘 점심은 저것을 묵은 된장에 푹푹 비벼 바다에서 돌아온 아들, 점심상이라도 차릴 모양이다. 

 

"오마, 어쩌까 잉,
그가 뭐 볼 것 있다고 온 사람마다 다 그리가까 잉,
참말로 이상하네~에"

 

 

금오도에서 안도로 넘어와서 오늘 우리가 잘 동고지 마을의 민박집. 아주머니의 순한 눈매와 다정한 전라도 사투리를 들으며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이 섬의 명물인 <글 쓴 바위>로 향했다. 

 

진시왕의 불로초, 서불의 전설

 

섬의 명물인 <글 쓴 바위> . 붓글씨를 쓰고 음각을 했다고 하는데 제법 선명하게 남아있다.

 

구름 낀 바다는 낙조 사이에 아득한데

눈 뚫린 어느 곳에 봉래산을 찾겠는가?

장건의 뗏목 길은 그대로 많이 막혔으며,

서불의 다락배는 오래도록 돌아오지 못하였네.

가을 바람은 백발을 속이기 쉬운데,

신선의 음식도 홍안을 빌리기는 어렵구나.

 

진시황을 명을 받아 동남동녀童男童女 3천명을 거느리고 장생불사의 약을 찾아 나선 신의가 있는,

아니면 돈키호테 같았던 사내, 서불徐市. 그가 우리나라를 찾아 왔었다는 기록은 서귀포를 바닷가를 비롯하여 곳곳에 남아있다.

꽃다운 아이들 3천 명 씩이나 실고 어떻게 이 세계의 바다를 떠돌았을까? 그들의 노 젓은 소리가 문득 들려오는 듯하다.

 

섬사람들의 희노애락을 함께 이어왔을 <아라 우물>

 

그 옛날 아랑처녀의 전설이라도 깃들여 있을 것 같은, 섬사람들의 희노애락을 함께 이어왔을 <아라 우물>.

어떤 날은 달이 빠져있고 또 어떤 날은 동네 처녀들의 말간 낯을 비쳐주고, 선한 사람들 목숨 줄도 이어주며 아들 낳고 딸 낳고

그렇게 오순도순 살면서 외로운 삶들을 유지해 왔을 샘터. 

 

 

첫째 날 일정을 마무리하며

 

오늘의 일정에 대해 뒤돌아보고, 또 이 학교에 거는 기대들을 들어보는 시간

 

"나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고 앞으로 어떤 삶의 기획을 하고 살건지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여행이 주는 혜택은 바로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어 즐거웠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경험의 동년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다."

 

소주 두 병만 사갔고 오지  글면 나가 돈 준 것디

 

할머니는 많이 서운한지 그 소리를 몇 번이나 연발한다.  뒤에 두고 오는 발걸음이 쉬, 떨어지지 않았다.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

 

 

낮잠을 자다가 봉변이라도 당했을까? 얼마나 어족이 풍부하면 족히 50센티는 넘을 것 같은 감성돔을

수달이 삼분의 일쯤이나 먹다 버리고 갔단다. 

낚시꾼이 곁을 지나다 이 광경을 보면, 족히 한나절 쯤은 앉아서 낚시대를 던질 것 같다. 

 

 

3코스 동백꽃 터널 왼쪽으로는 계속해서 바다가 보인다.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오늘 산과 물을 다 보았으니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면

그만큼 선한 일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사다리통 전망대에서 '여행기획학교 3기' 동기들과-

 

이 섬에서 가장 높은 듯한 <사다리통 전망대>. 창망한 바다를 바라보며 속세에서 좁혀졌던 마음들이 넓혀지는 느낌이었다. 

저마다의 얼굴에는 그 다짐이라도 하듯 한껏 밝은 얼굴들에 마음까지 시원해 보인다. 

 

엄지 척, 어촌계장님

 

이제는 여수에서 사신다는 나이 든 어머니와 둘이서 우리에게 두 끼의 식사를 지어준 어촌계장.

못내 아쉬운지 동구 밖까지 나와서 우리를 배웅해 준다. 문득 잃어버린 것들이 그립다.

"친구들 고등학교 갈때 나는 해풍과 함께 이 바닷가에서 살았어요-" 헛헛한 그의 웃음에 문득 고향친구가 생각난다.

 

3코스가 끝나는 지점에 자리 잡은 포구, 바닷물을 빠져나가고 목선만 저희들끼리 낡아가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들 선착장에 도착했다. 여객선도 도착하고 이제 우리는 섬을 떠나야 한다. 

1박 2일의 추억은 가슴에 묻어두고, 푸른 바다 물결도 이곳에 남겨두고-

 

끝으로 여행기획학교를 이끌어 주고 계시는 트래블러스맵 오택진 팀장님의 말씀을 함께 공유하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느끼며 다녀올 수 있는 여행상품을 만들어 보고,
 체험해 보는 기회를 많이 가져보길 바랍니다.
 여행기획자는 거창한 것이 아니에요.
 자연 친화, 인간 친화, 현지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여행,
 내가 정말 원하고 즐길 수 있는, 의미 있는 여행을 만들어가는 사람이지요. "

 

 

 

글·사진=윤재훈(여행작가, 여행기획학교 3기 교육생)